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말보르크(1), 성모 마리아의 성(CASTLE)

말보르크 촘촘설렁기행문, 미들캐슬(MIDDLE CASTLE) 22 

밤새 촉촉히 비가 내렸는지 숙소 창문으로 보이는 도로는 젖어 있었지만, 날은 말끔히 개어 있었다. 걱정거리며 잡티 하나 없는 얼굴처럼 참 개운하고 기분 좋은 맑은 아침. 말보르크로 향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연짱이의 보호자로서 생면부지 미지의 곳을 향해 간다는 부담감 때문에 언제나처럼 우리나라에서 기차편을 미리 예매해 왔지만, 사실 말보르크는 그단스크 교외 정도의 거리여서 장거리노선 뿐 아니라 지역선이 수시로 운행되는 구간이다. 그단스크에 체류 중이라면 말보르크까지는 굳이 예매가 필요하지는 않다. 


40분 만에 말보르크 역 도착. 지역선을 이용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지역선을 타면 1시간 가량 걸린다고 들었다. EIP든 EIC든 IC든 장거리 기차들은 작은 간이역에는 서지 않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더 빨리 간다.   


말보르크 역은 간이역이 아니다. 지역선은 물론이고 장거리노선인 IC, EIP, EIC 모두 서는 위풍당당 큰 역이다. 


말보르크 역은 역사(STATION BUILDING)가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1891년 옛 독일 스타일로 지어진 말보르크 역은 최근 몇 년 동안 개조를 거쳐 아름답게 복원되었다. 역이 건설된 것은 1891년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전 베를린과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 지금의 칼리닌그라드)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프로이센의 경제적,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이 작업은 중단되었다고. 베를린은 결국 1857년 말보르크를 통해 쾨니히스베르크(칼리닌그라드)에 연결되었으며, 말보르크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중요한 교차로로 성장하였다. 역 내부의 말보르크 주변 도시들의 문장이 특히 아름답다. 말보르크 역은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였고, 건물 내부는 대부분 살아남았다. 매표소 위 폴란드 국장(붉은 바탕에 흰 독수리 문양)은 프로이센의 국장(문장)을 덮기 위해 덧칠한 것이다. 폴란드 국장은 1295년 처음 제정되었으며, 현재 볼 수 있는 형태의 국장은 1990년 제정되었다. 빨간색 방패 안에 금색 부리와 발톱을 가진 하얀색 독수리가 그려져 있고, 독수리의 머리 위에는 금색 왕관이 씌워져 있다. 


폴란드 비드고시치, 그단스크, 토룬, 독일 베를린 등의 시 상징(문장) 역시 볼 수 있다. 흑곰이 그려져 있는 것이 독일 베를린 시 상징(문장)이다. 그단스크 시 문장은 빨간색 방패 안에 황금색 왕관과 그 아래 두 개의 흰 십자가가 들어 있는 형태인데, 내가 알고 있는 그단스크 문장하고 다른 것 같아서 찾아보니 사진 속 문장에는 없는 "NEC TEMERE" "NEC TIMIDE" 라는 라틴어 어구도 함께 있다. 영어 번역은 "NEITHER RASHLY NOR TIMIDLY." "경솔(무모)하지 말 것이며 두려워하지(겁내지) 말라." 내게도 꼭 맞는 말이라. 


튜튼 기사단 상징은 흰 바탕에 검은 십자가 문양인데 십자가 가운데 사진의 검은 독수리 문양이 들어 있다. 안타깝게도 튜튼 기사단의 검은 십자가는 독일 나치 문장으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사진 각도 매우 삐뚜름하지만 그럼에도 외관까지 참 예쁜 말보르크 역. 각 도시의 중앙역은 '도시명 GŁOWNY' 라고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보르크 역에는 그저 '드보르제츠 콜레요비(DWORZEC  KOLEJOWY)' 그러니까 '기차역'이라고만 되어 있다. IC나 EIP, EIC 와 같은 장거리기차가 정차할 만큼 큰 역인데 왜 '중앙역'이라고 안 되어 있지? 역 내 표지판에는 '말보르크' 라고 표기해두었던데. 


와, 사진으로만 보던 그 말보르크 성이 눈 앞에! 사진 속 중앙 건물이 성모 마리아 채플이다. 성모 마리아가 부조되어 있는 면이 정면으로 보인다. 


"말보르크 성 입장 전에 성에 대해 다시 읊어줄게."  

"언제는 안 했던 것처럼 그래, 새삼스럽게. 들을테니까 읊어봐, 엄마."  


옆으로 노가트(NOGAT) 강이 흐르는 말보르크 성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큰 요새였으며, 150년 동안 튜튼 제국의 수도였다. 성의 기원은 13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309년부터 1457년까지 말보르크는 튜튼 기사단의 소재지이자 중세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의 수도였다. 약 21헥타르의 표면적을 가진 말보르크 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성이며, 중세 후기 방어시설이자 주거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된다고. 50년 이상 이루어진 보존 작업 동안 말보르크 성 전체를 이전의 영광 즉, 1945년 전쟁 피해를 입기 전으로 복원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 프로젝트는 주로 튜튼 기사단의 심장인 성모 마리아 채플을 재건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이에 따라 성 동쪽 벽에서 볼 수 있는 말보르크의 상징, 그러니까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동상 역시 재건되었다. 튜튼 기사단에 의해 지어져서 폴란드 왕에 의해 폴란드 령으로 귀속되었다가, 이후 프로이센(독일)의 지배를 받고 1차 대전 이후 독일령이었던 바람에 2차 대전 때는 독일을 공격한 소련에 의해 거의 부서졌다가, 2차 대전이 끝나고 폴란드 령으로 귀속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말보르크 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말보르크 성은 독일어로 '마리엔부르크(MARIENBURG)' 인데, '마리아 타운'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라고.성은 마리아 교회와 세 부분의 성 본채(HIGH CASTLE, MIDDLE CASTLE, LOW CASTLE)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각각은 해자로 분리되고 여러 겹의 자체 방어시설로 보호된다. 성의 핵심인 하이 캐슬(HIGH CASTLE)은 외벽과 함께 안뜰을 빙 두른 4채의 건물로 이루어져있다. 하이 캐슬의 북쪽 동(NOTH WING) 1층에는 성 앤 채플실(그랜드 마스터의 매장지)과 회의실이 있고, 그 외 동, 서, 남쪽 동이 있으며 안뜰에는 2층으로 된 회랑(ARCADE)과 우물이 자리한다. 서쪽 동 1층에는 아치형 천장 챔버와 주방이 있다. 지휘관들의 숙소는 그 주방 위에 위치하며, 사제(기사)들은 동쪽 동 1층의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 안타깝게도 하이 캐슬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하이 캐슬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낮은 곳에 위치한 미들 캐슬은 그랜드 마스터의 궁전과 함께 의무실, 그리고 미들 캐슬에서 가장 큰 공간인 대 식당(GREAT REFECTORY)을 포함한 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채의 독립된 별채를 포함하는 로우 캐슬은 아우터 캐슬(OUTER CASTLE)로도 불리며, 미들 캐슬 북쪽의 좀 더 넓은 지역을 아우른다. 여러 건물들 중 별채(작업장, 마굿간, 양조장 등)와 카르반(KARWAN) 즉, 대포와 전투 수레용 병기고, 그리고 노가트 강 기슭의 곡물창고, 묘지, 정원이 전부 로우 캐슬에 속한다. 


염개미는 원통형 망루에 열광한다. 오디오 가이드를 장착하면 이 즈음부터 오디오 설명이 나온다. 외국인 어른은 오디오 가이드 포함 45 즈워티이고, 연짱이는 그나마 학생 할인이 되어서 35 즈워티. 


"지금까지 지불한 입장료 중 가장 비싸, 엄마. 그러니까 아주 옹골차게 봐야 돼!" 

 

두 주먹 불끈 쥐고 결의를 다지는 연짱이와 함께 본격적으로 옹골찬 성 탐방을 시작해 볼까나. 


말보르크 성이 아름다웠던 이유 중에는 날씨가 5할은 하였다고 생각한다. 맑게 갠 하늘과 성은 유독 잘 어울렸다. 맑고 비교적 온화한 날씨 덕분에 말보르크 성의 사진은 모두 연짱 포토그래퍼 작이다. 


말보르크 성은 지어진 당시 유럽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였다고. 지금은 푸른 풀이 나 있는 깊은 골이 예전에는 물이 가득한 해자였을 것이다. 13세기에 지어진 이후 방어용 외벽이며 바깥 쪽 성을 계속 확장하여 짓기도 하였지만, 워낙 외세에 의한 부침이 많은 폴란드여서 성이 오늘날 이만큼 아름답게 유지되려면 안팎으로 참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입장료 명목으로 삥 뜯은 돈이 이 아름다운 성의 복원과 유지에 오롯이 알차게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1945년 소련에 의해 거의 다 부서진 말보르크 성. 포탄 자국 때문에 성한 데 찾기 어려운 건물들하며 성모 마리아 부조가 아예 사라진 성모 마리아 채플하며 넝마가 따로 없다. 부수는 건 소련이 다 하고 복구는 폴란드가 다 하고. 우리 엄마 정여사님 말씀대로 사고치는 놈 따로, 뒷수습하는 분 따로. 폴란드 입장에서는 종전 후 공산화에 소련 침공의 상징이나 다를 바 없는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까지 아주 미운 짓이란 미운 짓은 골고루 저지른 소련이니 어느 한 군데 예쁠 수가 있겠나. 


해자로 둘러싸인 이 다리를 건너 아우터 캐슬의 아치형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본격 말보르크 성이 나온다. 이 즈음부터 나는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막 뛰었다. 


미들 캐슬로 들어서는 출입문. 


아우터 캐슬이든 미들 캐슬이든 들어서려면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한다. '마리아 타운'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 곳곳에서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또는 성모 마리아 부조를 볼 수 있다. 


미들 캐슬로 이어지는 해자 위 다리에서 본 풍경이다. 옆면이기는 하지만 고딕 스타일 계단식 박공장식 봐라. 나는 고딕양식이 정말이지 너무 좋다. 오디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담쟁이 덩쿨에 가려진 성벽 아가일 패턴은 불 탄 벽돌과 그렇지 않은 벽돌을 지그재그로 쌓아서 만든 것이라고.   


"엄마, 나 이 사진 정말 좋아. 지붕 모양 때문에 하늘 색감이 더 예뻐 보이거든." 

"그러네요." 


미들 캐슬. 

붉은 벽돌로 지어진 것부터 고딕양식 건물인 것까지 염개미 취향에 딱 맞는 완벽한 성이었다. 


"엄마, 지붕에 낸 창문이 꼭 기사의 투구처럼 보여." 

"그러게. 굉장히 단정한 투구 같네. 폴란드 기사든 튜튼 기사든 투구를 쓴 기사들 모두 하나도 안 다쳤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역사는 없겠지, 엄마. 아무튼 전쟁은 없어야 좋지만." 


미들 캐슬. 


이 문을 들어서면 말보르크 성 미들 캐슬의 관람이 시작된다.  


말보르크 성의 미들 캐슬에는 대 식당(GREAT REFECTORY), 주방과 요리실, 성 바돌로메 채플, 중세난방시스템, 무기전시실 그리고 의무실 등이 있다. 


부채 모양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는 대 식당(GREAT REFECTORY). 

사진 오른쪽 아래 보이는 것이 중세시대 난방시스템을 보여주는 중세 스토브 그러니까 난로다. 말보르크 성의 난방시스템 중 미들 캐슬의 대 식당에 있는 난방시스템이 가장 규모가 크다고. 대 식당 바닥 아래 반쯤 돌로 채워진 거대 오븐이 있고, 이 지역에서는 귀한 연료인 목재를 태워 발생한 열은 열이 지나가는 통로를 통해 대 식당 곳곳에 있는 직사각형 금속 덮개가 달린 스토브로 내보내어졌다. 스토브 덮개의 개폐 정도로 홀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지붕에 달린 굴뚝의 크기 역시 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절되었다. 


설명이 어설퍼서 그렇지 나무를 때서 발생한 열을 보내는 통로와 통풍구 시스템이 매우 효율적이어서, 3시간 30분 동안 나무를 때서 나온 열로 '대 식당' 이라고 부를 만큼 너른 홀이 단 20분 만에 섭씨 22.5까지 

올라갔으며, 난방 후 통풍구 덮개를 닫았다 다시 열면 식었던 홀의 온도가 다시 올라간다고. 더 이상 나무를 때지 않아도 그 열이 3일이나 지속되었다고 하니, 정말 효과적인 난방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연료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13, 14세기 난방시스템과 21세기 난방시스템 사이 몇 백 년의 간극은 별반 없구나 싶은 게, 쉽게 말하면 공기를 데우는 현대 서양식 중앙난방시스템과 똑같거나 열의 지속시간을 따져보면 오히려 중세 난방시스템이 더 훌륭하면 더 훌륭하거나. 


우리나라의 경우 나무 연료를 태워 발생한 열이 고래를 지나 바닥 구들장을 직접 데우는 온돌방식 난방시스템

이 처음 등장한 때는 삼국시대, 그러니까 중세도 아닌 고대였다. 삼국 중 고구려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 백제로 그리고 신라로 전파되었고, 21세기 현재 대부분의 가정집 난방 역시 연료만 기름이나 가스로 바뀌었을 뿐 온돌방식이다. 천연두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의 발명 이외 고대, 중세나 지금이나 인류의 생활은 신분제 폐지 말고는 큰 줄기 면에서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종이와 인쇄술, 전기의 발명으로 인류가 좀 더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경천동지할만큼 중요한 발명은 인류 4대 문명 발생 이후 철기시대를 지나면서 거의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뭐 그렇다고요. 


폴란드 벽화에는 여성 성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튜튼기사단의 전투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이 작아서 잘 안 보이지만 '말을 탄 마리아(VIRGIN MARY)' 문양이다. '마리아 타운'을 세운 튜튼 기사단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문양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중세난방시스템을 보여주는 난로. 


미들 캐슬의 다른 동(WING)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미들 캐슬의 동쪽 동 지하에 위치한 호박예술품 전시실. 

발트해의 호박은 유명하여 그단스크 뿐 아니라 그단스크와 인접한 리투아니아 도시들 역시 호박이 지역 특산품이다. 특히 중세 튜튼기사단에게 호박은 상업력의 원천이었다고.  


호박갤러리 내부. 


호박전시실답게 내부 조명 역시 호박빛이다. 여기서부터 염개미는 오디오 가이드의 정체를 의심하였다. 호박갤러리는 일반인에게 판매하지 않는 예술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판매하든 판매하지 않든 쉽게 말하면 보석공예품인데, 왜 욕심이 안 나겠나. 더구나 그토록 예쁜데. 그런 마음이 드는 내 귀에 오디오 가이드가 속살거린다. 


"굉장히 아름답지? 유명한 예술가들이 만든 아름다운 호박예술품은 여기 말고 우리 기념품 숍에도 많으니까 잊지 말고 꼬옥 들러봐." 


정말 진짜 기념품 숍에 아름다운 호박제품들 많으니 들르라고 낚는다고, 오디오 가이드가. 비싼 입장료도 모자라 호박보석공예품으로 마지막까지 관광객들 주머니 탈탈 털어가는 오디오 가이드 님, 그리고 말보르크 성 관계자분들. 비싼 입장료도 호박구매유도도 다 좋으니 성만 지금처럼 아름답게 보존하여 주소서. 


호박 자체가 이미 보석인데 호박으로 만든 보석함.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거니, 막 한탄하였던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의 경우 국가보물이어서 내가 아무리 부유한들 살 수 없었겠지만. 


연짱이가 열광하였던 체스판과 체스말. 체스도 잘 못 두면서 왜 그런지 체스판에만 열광. 


미들 캐슬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한 계단. 무기전시실로 통한다. 


튜튼기사단 상징. 검은 십자가는 변형을 거쳐 나치의 상징으로 악용되었다고. 


중세 무기들. 


"칼 손잡이가 멋지네." 

"멋지면 뭐 해, 엄마. 포즈난미술관에서도 말했지만 멋져봐야 사람 죽이는 도군데." 

"그러네 . . . 근데 신장이 큰 남자들이 쥐었다고 해도 칼이 많이 크고 긴데 저게 정말 살상 무기였을까? 이순신장군의 큰 칼처럼 상징적인 지휘용 칼은 아니었을까?" 

"그렇다기에는 칼이 찌르기에 적합하게 가늘고 뾰족하잖아, 엄마. 살상용도였을 것 같은데." 


"안그래도 갑옷이며 투구며 방패며 전부 금속이라 번쩍거리는데, 거울방에 놓여있으니 수은빛 면도날 같은 섬뜩한 느낌까지 드네." 

"그러라고 일부러 거울방에 둔 것 같은데. 우울하고 소름돋으니까 빨리 나가자, 엄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가졌더라도 염개미와 연짱이에게 무기류는 그저 수은빛 살상 도구에 불과하다. 


말보르크 성의 아우터 캐슬과 미들 캐슬 그리고 하이 캐슬 사이에는 겹겹의 성벽과 해자와 다리가 놓여 있다. 각각의 캐슬은 튜튼기사단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아우터 캐슬은 미들 캐슬을, 미들 캐슬은 가장 안쪽의 

하이 캐슬을 보호하는 역할까지 하였던 요새이기도 하다.  


네 분의 동상 뒤로 보이는 건물이 하이 캐슬. 튜튼기사단의 고위 간부들을 위한 공간과 성모 마리아 채플이 있는 말보르크 성의 가장 안쪽 심층부이다. 


튜튼기사단 역대 단장이셨던 네 분의 그랜드 마스터. 


사진 속 아치형 출입구는 말보르크 성의 하이 캐슬로 이어진다. 


와, 말로만 듣던 도개교. 말을 탄 성모 마리아 박공이 이끄는대로 말보르크 성 가장 깊숙이 자리잡은 하이 캐슬로. 

이전 21화 토룬(4), 안녕, 흐린 '도룬'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