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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르크(2), 백미는 성모 마리아 채플

말보르크 촘촘설렁기행문, 하이 캐슬(HIGH CASTLE) 23

하이 캐슬은 동, 서, 남, 북쪽 동 네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회의장, 공동실, 대 식당, 채플, 기숙사 등이 위치한다. 북쪽 동(NOTH WING) 1층에는 성 앤 채플실(그랜드 마스터의 매장지)과 회의실이 있고, 그 외 동, 서, 남쪽 동이 있으며 안뜰에는 2층으로 된 회랑(ARCADE)과 우물이 자리한다. 서쪽 동 1층에는 아치형 천장으로 이루어진 챔버와 주방이 있다. 지휘관들의 숙소는 그 주방 위에 위치하며, 사제(기사)들은 동쪽 동 1층의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 안타깝게도 하이 캐슬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하이 캐슬 안뜰에 위치한 우물. 여기는 우물까지 용맹해. 마시면 용맹해지는 우물이었다. 거짓말이라니까요. 


말보르크 하이 캐슬. 


하이캐슬 코너룸. 중세에는 식품저장고로 쓰였던 공간이지만, 현재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컬렉션을 전시해두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중세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사라졌다가 19세기 다시 등장하였다. 염개미는 볕이 잘 드는 방에 기존의 큼직한 창문 외에 조붓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 두 개 쯤 내어 살고 싶은 소망 하나 품고 산다. 


이곳 스테인드 글라스의 대부분은 라이프치히 출신의 독일 스테인드 글라스 화가 하젤베르거(Haselberger)가 제작하였다. 1891년에서 1893년까지 그는 66개의 고딕 스테인드 글라스 여닫이 창을 만들었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36개의 여닫이 창문에는 예수의 생애, 사도, 여러 성인, 구약의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하이 캐슬 회의장(CHAPTER HOUSE). 

하이 캐슬 북쪽 동의 서쪽 절반 만큼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중요한 문제가 논의되는 장소로, 국내 및 외교 정책에 관한 문제가 이곳에서 결정되고 해결되었으며, 이 홀에서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가 선택되었다. 내부는 프로이센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할 때 파괴되었다가 19세기 말 콘라드 슈테인브레히트(CONRAD STEINBRECHT)가 재건하였다. 그러니까 현재 나와 연짱이와 같은 관람객이 보는 모습은 슈테인브레히트가 복원한 모습이다. 한 번 쉬지도 앉지도 않고 보고 듣는 강행군에 지친 연짱이가 미들 캐슬에서도 본 똑같은 회의실을 왜 또 찍냐면서 귀찮다고 방 전체를 찍어주지 않았다. 나쁜 놈. 


공동 식당. 7개의 가느다란 기둥이 아치형 천장을 지탱하고 있다. 식당 외 교육 공간이기도 하였다는데, 그래서인지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다. 이 홀은 이어진 복도도 그렇고,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까지 말보르크 성에서 가장 긴데, 이유가 적이 침입했을 때 마지막 보루로 시간을 끌기 위해서라고 오디오 가이드가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유사시 말고 평상시 머나 먼 화장실 어쩔, 이라며 연짱이가 끼룩 끼룩, 웃었다. 현재의 내부 모습은 역시 슈테인브레히트가 19세기 말 복원한 것이다. 


미들 캐슬에서도 보았던 중세난방시설. 난로 위 부조 귀엽다. 밥은 따뜻한 데서 따뜻하게 먹어야 체하지도 서럽지도 않지. 


염개미의 형편없는 기억력. 이 가고일은 일정한 거리 그러니까, 60M 마다 또는 70M마다 부조되어 있어서 회의실이면 회의실, 식당이면 식당, 화장실이면 화장실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도록 의도된 것이라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은 기억이 어렴풋하다. 


기숙사 회랑 복도. 


"엄마, 나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머리도 아파.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걷고 보고 걷고 보고 했잖아. 미들 캐슬하고 하이 캐슬하고 챔버 용도와 구조가 비슷해서 뭘 찍었는지도 헷갈려. 앉아서 좀 쉬자." 

"많이 힘들어? 로디 먹고 싶은대로 사줄게." 

"엄마는 무슨 아이스크림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거면 땡큐."  


땡큐겠지. 다만 한 두 스쿱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문제지.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성 앤 채플(ST. ANNE'S CHAPEL)이 나온다. 이를테면 무덤 예배실이며, 출입문에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성십자가(TRUE CROSS) 전설이 부조되어 있다. 같은 문으로 들어가고 나왔는지 기억이 흐릿한데, 성 앤 채플은 두 개의 출입구가 있다. 


성 앤 채플. 그랜드 마스터의 무덤 겸 예배실. 사진은 밝게 나왔지만 전혀 밝지 않다.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들어오는 빛이 참 은은한 곳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인 브룬스윅의 루터(BRUNSWICK OF LUTHER) 치세 중 동쪽으로 확장되었다가 1344년 그랜드 마스터의 영묘로 지어져 성 앤에 헌정되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하고 무덤이 같이 나오도록 찍어주고 싶은데, 우리 카메라로는 각도가 안 나와." 


하이 캐슬 회랑. 어느 쪽 동에 있는 회랑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간 중간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슨 용도의 방이 나온다. 대부분 굉장히 어둡다. 한 번은 당연히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갔는데, 어둠 속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관리인 오빠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놀라서 넘어질 뻔 하기도. 겁쟁이 염개미가 진심으로 흠칫, 놀라는 바람에 관리인 오빠를 피식, 웃게 했었다. 


안으로 들어서기 전 부조들이 예뻐서 연짱이에게 부탁을 하였더니, 어두워서 사진이 전부 흔들린다고 온갖 짜증을 다 냈던 곳이기도 하다. 나쁜 놈. 


당연히 성모 마리아 관련 부조려니, 하였다. 


성모 마리아 채플. 

13세기 말 말보르크 성 건설 초기부터 있었다고. 1309년 튜튼 기사단 수도를 말보르크로 옮기면서 건물 절반 정도만 차지하였던 채플을 증축하였다. 연짱이도 나도 성모 마리아 채플에 들어갈 즈음 매우 지쳐있었는데, 채플실 들어서자마자 지금까지의 관람 노동의 피곤을 잠깐 잊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금지줄이 채워져 있어서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힘들어서 사진 찍기 싫다고 짜증내던 연짱이가 군말 없이 사진을 찍어주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다녀본 큰 성당의 제단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경건한 울림은 결코 소박하지도 작지도 않았다. 평온한 마음으로 가만히 서서 기도하고 한참을 서 있다 나왔다. 


"엄마, 여기 말보르크 성 엽서에 나오는 곳이야." 

"그럼. 말보르크 성은 성모 마리아에 헌정된 성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곳이니 당연하겠지. 말보르크 성의 백미야, 여기가." 


외부에서 본 성모 마리아 채플. 

성하고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는 폴란드 국기가 파란 하늘하고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채플 외벽에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이 부조되어 있다. 1340년 즈음 성 동쪽이 확장되면서 성모 마리아 채플이 증축되었다. 8M 높이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은 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 조각품이었다. 풍부한 여러 색채로 되어 있으며, 40년 후 베네치아 장인들이 부조를 컬러 모자이크로 덮었다. 600년 이상 동안 성모 마리아는 말보르크 성과 말보르크 마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랬던 이 아름다운 성 전체를 제 2차 세계대전이 삼켜버렸다. 탑과 채플은 파괴되었고 부조는 조각조각 부서졌다(말보르크(1)의 사진 참조). 1960년대 재건축되었지만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없었다. 마침내 2007년 5월 말보크 가이드 협회(SOCIETY OF MALBORK GUIDES)의 주도로 설립된 마스터 데이 재단(MASTER DEI FOUNDATION)의 기여 덕분에 성모 마리아 부조의 재건이 가능해졌다. 부조의 재건은 "말보르크 성의 성모 마리아 교회 보존 및 건설"이라는 제목의 말보르크 성 박물관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각 동마다 방들은 너무 많고 돌아볼 시간은 부족하고, 그 넓은 공간들을 거의 뛰어다니며 관람하느라 성모 마리아 채플을 나올 무렵 연짱이와 나는 매우 지쳐 거의 탈진상태였다. 


"엄마, 나 발바닥 너무 아프고 허리도 너무 아파."  


연짱이도 나도 충성도 높은 관람객이어서 관람 끝까지 자본주의 오디오 가이드 님에게 충실히 낚여드렸다. 주머니가 가벼워 호박장식품은 구입하지 못하였지만, 자본주의 오디오 가이드 님이 마지막으로 권하는 기념품 숍에서 엽서 한 다발과 마그넷을 구입하였다. 기념품 숍을 끝으로 말보르크 성 관람은 끝이다. 숍 끝에 난 문으로 나가면 말보르크 성 바깥이어서. 


오후가 되면서 점점 차가워진 날씨 탓에 바람도 차가워져 손 시려운 연짱이가 투덜거리면서 찍어준 말보르크 바깥 쪽 성. 내가 고딕양식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붉은 벽돌 때문인 것도 있다. 연짱이도 나도 붉은 벽돌의 색감과 붉은 벽돌이 주는 심정적인 안정감을 좋아한다. 우리 아기돼지 삼형제네 막내 돼지인가봐, 연짱이가 큭큭, 웃었다. 입바람이 센 늑대가 아무리 후욱, 불고 또 불어도 절대 날아가지 않는 튼튼한 막내 돼지의 빨간 벽돌집을 사랑하는 개미와 베짱이. 


이대로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면 쉬운 하루였겠지만, 붙잡을 새 없이 가고 없을 시간이 안타까워 땅거미 지는 구시가를 걷고 걸었다. 어두워지면서 슬슬 들어오는 조명으로 구시가는 한층 근사해졌지만, 나와 연짱이는 너무 지쳐있었다. 


"엄마, 진짜 너무 한 것 아니야? 기차에 앉아 있던 40분씩 두 번 하고, 로디 먹느라 앉아 있었던 10분 정도 빼고, 오전 10시부터 지금까지 거의 6시간 동안 한 번 안 쉬고, 밥도 안 먹이고, 계속 걸어다니고 사진 찍게 부려먹기만 하고. 뭘 좀 먹고 어디 앉아 있자, 좀." 


연짱이가 결국 울분을 토했을 정도로 종일 강행군이었다. 뭐 얼마나 남을 것이라고 그토록이나 아이를 혹사시키고 나 역시 혹사하였을까, 그 때는 생각했었는데, 많이 보고 많이 남긴 하였으니 후회는 없다. 그단스크에 다시 가게 되면 좀 더 여유로운 일정으로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싶다. 지금까지 본 여러 성들 중 그대가 최고였어요, 캐슬 말보르크. 다시 만납시다.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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