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TRICITY(2), 발트해변에 겨울비 내리고

소폿(SOPOT),PETALS ON A WET,BLACK BOUGH25

보이텍 곰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발길을 돌려 소폿 메인거리로 향하였다. 비 내리는 발트해변을 보고 싶었다. 


성 조지 교회(THE CHURCH OF SAINT GEORGE). 


소폿 메인거리에 비가 내리고 있다. 


크지비 도멕(KRZYWY DOMEK). 

비뚤어진 집(CROOKED HOUSE). 


"봤어, 연짱이? 이 집이 그 유명한 '비뚤어진 집'이야." 

"비뚤어진 집은 애거서 크리스티 할머니 소설에 나오는 집만으로도 충분해. 저 집 내부는 그냥 평범하다며. 그게 뭐야. 뭔가 삐뚤어지고 비틀린 아이가 살아야 비뚤어진 집이지. 저 집은 그냥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녹아내리는 시계' 닮은 집이라고 해야 맞아."  


연짱이 애거서 크리스티 할머니 광팬답다. 연짱이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떠올렸지만 염개미는 그로테스크한 동화가 연상되었다. 실제로 '크지비 도멕'을 지은 건축가는 스웨덴 출신 작가 퍼 달버그의 동화 작품과 삽화가 잔 바신 스탠서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이 집을 지었다고. 비 내리고 날도 춥고 하여 발트해변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커피라도 한 잔 마실까 했지만, 하필 들어서 있는 커피숍이 비싸기로 유명한 다국적 커피 체인 코스타커피. 에고, 되었다. 

 

소폿 메인광장. 서울처럼 무채색 고층건물이 주로 들어서 있는 도시에서라면 모를까, 사실 비에 젖은 회색 거리라는 말이 어느 곳, 어느 도시에서든 모두 맞는 표현은 아니다. 


"PETALS ON A WET, BLACK BOUGH" (BY EZRA POUND)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해진 검은 색 가지. 그 검은 가지 위로 더 선명하게 피어난 꽃잎들. 매일 집을 오고 가는 길에 서 있던 회색 줄기의 나무는 비 내리는 날이면 존재감이 매우 확연해진다. 아, 여기 참, 나무가 있었지, 싶게 비에 젖어 까만색으로 반짝이는 나무줄기와 진한 색감으로 피어나는 잎은 매일 보던 친숙한 나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내 시선에 확연히 와 닿는 나무의 부피감이 훅, 낯설게 끼쳐오곤 한다. 비에 젖은 거리는 햇살 가득 내리 쬐는 환한 거리보다 보이는 풍경의 선명도가 마치 초점 잘 맞는 안경을 쓴 듯 그처럼 명확해진다. 비 내리면 부쩍 부각되는 내 시야 속 모든 사물의 존재감이 나는 늘 반갑다. 그래서 비 내리는 풍경을 좋아한다. 한결 같았던 풍경, 매일 무심히 지나치던 그 나무들이 문득, 참 예뻐서 한 번 더 눈여겨보고, 그래서 한 번 쯤은 쓰다듬게 되고, 그렇게 고맙고 익숙한 것들에 다시 집중하게 되어서. 


지붕의 주황색이며 간혹 보이는 조명은 또렷해졌지만, 그만큼 채도는 떨어져 좀 더 어둡고 침울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인적 없는 거리가 한 두 스푼 보탠 탓도 있겠지. 그러나 볕 쨍한 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염개미가 한없이 사랑하는 비 오는 거리 풍경. 


비 내린다고 연짱이가 사진 찍는 일을 보이콧하여 염개미가 찍은 탓에 각도가 나처럼 고지식하여서 그렇지 매우 긴 다리다. 유럽에서 가장 긴 해안 목조다리라고 광고하던데, 정말 그런지는 확인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한적하니 산책하기 좋은 길이의 다리였다. 성수기에는 지금 같은 한적함을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역시 금속으로 된 다리나 콘크리트 도개교 이런 것 말고 다리는 목조 다리여야 운치있다.  


가까이 가면 먹을거리를 주는 줄 알고 백조가 다가온다. 내게 어떤 기대를 갖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없애는 이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부담스럽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떠 있는 섬이 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처럼 적당한 거리를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엄마, 원래 백조가 바다에도 사나?" 

"호수나 강 이런 데 살 걸?" 

"엄마, 여기 소폿 해변 맞지? 소폿 강변 아니지?"  

"어린이, 여기 발트해로 유명한 동네야."  

"저기 하얗고 엄청 큰 새 백조 아니야?"  

"그러네. 근데 왜 저기 있지??"  


알 수 없는 새들의 세계.   


몸이 큰 무거운 새와 몸이 작은 가벼운 새와 주인님과 나와 기타 등등 냄새만 남은 사람들과. 

(멈머 관찰견 시점) 


유럽에서 가장 긴 해안 목조다리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연짱이는 내가 해변 이곳 저곳에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다니는 동안 단단한 모래땅을 딛고 선 채 한참을 파도 오가는 발트해를 바라보았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였니, 엄마의 물음에 그저 빙그레 웃기만. 너울지는 감정폭 넓고 그에 따른 표현 역시 알록달록 극단적인 염개미에 비해, 말수 없고 감정 기복 없는데다 표현 역시 단조로운 아이지만, 그렇다고 이국의 바다를 바라보는 정취까지 무채색이었겠나. 날카로운 통찰력과 명확한 분별력, 그리고 단단한 반석 같은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며, 연짱이가 담담하지만 굳건하게 목적이 있는 제 삶을 살아가기를. 하고 싶은 일과 제 가치관과 신념이 이끄는 일이 늘 일치하기를.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 육이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기를. 그리하여 언제나 행복하기를 매 순간 마음을 다해 바란다. 


염개미에게 '카지노 호텔'이라는 오해를 샀던 억울한 그랜드 호텔. 1920년에 지어져서 소폿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며 소폿 랜드마크로도 쓰이는 유명한 호텔이다. 쏘리염. 


대문짝만하게 써 붙여놓은 '부두.'  


비만 내려도 추울텐데 거센 바닷바람까지 더해져 귀 얼얼해질 즈음 해변에서 나왔다. 해변을 걷는 내내 매우 신기하게 여겼던 것이 발트해는 바다 냄새가 거의 안 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동해고 서해고 해변도 아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으로 바다냄새가 남실 남실 풍겨오는데, 이곳은 눈으로 봐야 바다구나, 그러지 흔한 물냄새도 나지 않아서 나도 연짱이도 매우 의아해 하였다. 바다에 녹아있는 소금의 농도나 해수 온도 또는 무슨 분포하는 해양종이 달라서 그런걸까?  


소폿 등대. 올라갈까 말까 연짱이와 여러 번 논의했지만 결론은 엽서만 사고 올라가지 말자고. 날이 맑았다면 주저없이 올라갔겠지만, 날이 흐려서 전망이 그리 예쁘지 않을 것 같다는 포토그래퍼 연짱이의 의견을 백 퍼센트 반영하여. 게다가 전망대 역할을 할 만큼 등대 또한 그리 높지 않았고.  


"아침도 부실하게 먹이시고, 비바람 몰아치는 겨울 해변에 몇 시간이나 방치하시고, 엄마 딸내미 배고파 여기서 쓰러질 것 같아효. 그럼 안되니까 와플 사주세효." 

"여기 와플은 완전 관광지 유원지 가격인데 꼭 여기서 먹어야겠어?" 

"네, 꼭 먹어야겠어효." 


와플은 폴란드 어로 'GOFR'이고 아이스크림은 'LOD'인데, 보통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가게에는 복수형인 '고프리(GOFRY)'와 '로디(LODY)' 라고 표기되어 쓰인다. 꿀꿀이 연짱이처럼 한 개로 끝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인걸까. 


해변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의 자본주의 냄새 물씬 나는 세련된 메인거리를 되짚어 소폿 중앙역으로 돌아갔다. 

이전 24화 TRICITY(1), 영웅을 원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