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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CITY(1), 영웅을 원해?

소폿(SOPOT), 양지만 알고 싶겠지만 24

"엄마, 오늘은 겨울바다 보러 가는 날이지?" 

"응, 그단스크하고 그디니아, 소폿은 발트해변도시로 유명하거든. 거기가 어떤 곳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늘은 그냥 설렁 설렁 발트해변 돌아다니자. 여기까지 왔는데 발트해는 보고 가야지."  

"오랜만에 겨울바다 보겠네." 


정확히 말하면 비 내리는 겨울바다, 겨울비 내리는 발트해변이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창문 커튼을 열어보니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다. 나는 태울 듯 볕 강렬하고 사람 밀고 쓰는 여름바다는 질색하는 터라 바다를 면하고 있는 도시는 언제나 여행지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하지만 사람 드문하고 고즈넉한 겨울바다, 특히 비 내리는 쓸쓸한 겨울바다는 예외인데, 굳이 시간을 들여 그 풍경을 찾아가지는 않지만, 겨울 여행 일정에 바다 가까운 곳이 포함되어 있고, 일정 중 비가 내린다면 일부러 겨울바다를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오늘이 하필 그런 날이네. (좋아서) 히죽. 


오늘 가려는 소폿을 포함하여 그단스크, 그디니아 이들 세 도시는 발트해변에 면해 있고, 그 중 그단스크와 그디니아 사이에 놓인 소폿은 해변 휴양도시로 유명하다. 그단스크와 그디니아까지는 뱃길, 도로 및 철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세 도시는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고 있어 세 쌍둥이 도시(TRICITY)로 불린다고. 


오전 9시 1분 그디니아 행 지역선을 타고 여섯 정류장 쯤 지나서 소폿에 내렸다. 기차 창문으로 스쳐 지나는 비에 젖은 잿빛 건물과 잿빛 보도를 보고 있자니 비 내리는 말보르크 성은 참 음울하고 서글펐겠구나, 싶었다. 오늘이 말보르크 성 가는 날이 아니어서 감사하였다. 


소폿 역. 

여름 성수기에는 발트해변을 찾아온 마음 가벼운 휴양객들로 북적일 것이다. 여행을 앞둔 캐리어가 설레임이 아닌 까만 고뇌로 보이는 나그네와 굳이 비 내리는 울적한 겨울바다를 보겠다고 찾아온 이방인 아줌니가 아니라. 


소폿 관광명소를 보여주는 안내표지판. 폴란드 어 '몰로(MOLO)'는 표지판에 적혀있는대로 '부두' 라는 뜻의 일반 명사인데, 처음 저 단어를 보았을 때 나는 '할라 타르고바'의 경우처럼 소폿의 해변 혹은 선착장만을 지칭하는 고유지명인 줄 알았다. 연짱이와 염개미의 오늘의 목적지는 부두와 플라자(PLAZA), 그러니까 해변이다. 그리고 그리로 가는 길에 소폿 명물 중 하나인 '비뚤어진 집'이 있다. 


소폿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마주한 소폿의 첫 인상은 뭐랄까 '정체불명' 이었다.  내가 가 본 유럽의 도시들은 도시마다 중심이 되는 메인거리가 있고 그 메인거리에 메인광장이 있었다. 그것은 소폿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소폿을 내가 '정체불명' 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다름아닌 메인거리의 이름 때문이었다. 나는 고유지명의 의미나 의의를 별달리 궁금해하지 않는 편이다. 당연하지 않나. '잠실'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진 동네 이름은 그리 많지 않고, 대체로 독특한 지형의 특징을 따라 부르거나 해당 도시의 기념비가 될 만큼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짜 혹은 사건 자체나 위인의 이름를 따서 짓거나, 또는 이를테면 '창덕궁'처럼 랜드마크가 될 만한 유적이나 건물 이름을 따서 부르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행정적 편의대로 거리나 동네 이름이 부여된다고 생각해왔으니. 


염개미의 본명 역시 염개미가 태어난 며칠 후 지어져 오늘날까지 염개미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별다른 의미 없이 불리고 있기도 하고. 그건 마치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고 한 것 뿐인데, 왜 홍시맛이 나냐고 물으시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올런지요," 하고 같은 맥락 아닌가. 그런데 소폿의 메인거리 이름은 어찌 하여 이런 이름인지 진심으로 궁금하였다. 어찌하여 너의 이름은 몬테 카지노(MONTE CASSINO)인거냐. 


"엄마, 기차역 출구 안내표지에 있는 메인거리 이름 봤어? 무슨 '카지노'야. 여기 휴양도시라고 하지 않았어? 휴양하러 온 사람들이 막 카지노하고 그러는 덴가?" 

"아무리 그렇다고 무슨 거리이름까지 사행성 조장이겠어."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내심 불안한 염개미였다. 아이에게 그런 풍경이나 보여주자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겨울날 굳이 이곳까지 왔나 자괴감도 들고.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착각이었다. 카지노로 유명한 모나코의 휴양지 몬테 카를로와 이탈리아 지명 몬테 카시노가 섞여 만들어진 대환장 착각. 소폿 메인거리의 정확한 이름은 '보하데로브 몬테 카시노(BOHATEROW MONTE CASSINO)' 그러니까 '몬테 카시노의 영웅들(THE HEROES OF MONTE CASSINO)' 이며 현지인들은 이 거리를 '몬치악(MONCIAK)'이라고 부른다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무슨 폴란드 도시의 거리 이름을 이탈리아 지명으로 짓느냐고요. 오늘은 아무 생각없이 발길 닿는대로 발트해변을 거닐고 싶었지만, 염개미는 궁금한 건 또 못 참는 이라는 크나큰 함정이 있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이탈리아 몬테 카시노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과 독일군의 격전지 중 하나였다.연합군은 1943년 말 이탈리아 시칠리를 함락하고 로마에 입성하고 싶었지만, 로마 입성을 가로막는 독일군의 방어선 '구스타브 라인'의 중심에 몬테 카시노가 있었다. 몬테 카시노는 529년에 세워진 베네딕토 수도원이 자리한 고지였는데, 그곳에서 폴란드군을 비롯한 영, 미, 프, 캐, 인도, 뉴질랜드, 튀니지, 알제리, 북아프리카군 등이 참여한 치열한 전투가 4차에 걸쳐 치러졌다. 그 과정에서 베네딕토 수도원을 비롯한 몬테 카시노의 유서 깊은 유적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고. 3차 전투까지 버티던 독일군은 결국 1944년 5월 4차 몬테 카시노 전투에서 폴란드 제 2사단에게 패배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연합군이 승리한 전투였지만, 사상자 수나 퍼부은 화력소비의 면에서는 연합군의 피해가 훨씬 컸던 전투였다고. 


그러니까 소폿의 메인거리 이름은 폴란드군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 중 하나를 기리기 위해 붙인 건데, 아니, 그걸 왜 하필 소폿 메인거리이름으로 하였느냐고요. 


소폿 메인거리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는 곰 '보이텍 곰(MIS WOJTEK).' 


"곰이 극사실주의 곰인데, 여기 곰은. 리얼한 손톱 발톱 봐라." 

"무슨 극사실주의 곰이야. 옷 입고 있는 극사실주의 곰이 어디 있어. 게다가 옷도 뭔가 제복 같은 느낌이잖아, 엄마." 

" . . . . . . .  어휴 . . . . . 이 곰돌이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곰이래." 

"뭐어?" 


1941년 6월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이후 소련의 포로에서 풀려난 폴란드 병사들은 연합군에 합류하여 폴란드 제2사단을 구성하였다. 한 편 병사들은 전장에서 고아가 된 생후 3개월 시베리아 불곰을 구하였는데, 새끼곰에게 '전장에서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보이텍'이라 이름 지어 사병 계급을 부여하고, 폴란드군에 입대시켰다. 보이텍은 병사들과 함께 전장을 이동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무거운 중장비 운반을 돕는 등 마스코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보이텍의 활약은 몬테 카시노 전투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보이텍은 엄청난 힘으로 폴란드 제 2사단 병사들에게 탄약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곰이 그러니까 제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하고 같이 나치군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기록을 보면 보급부대에서 보급품이나 중장비, 포탄 운반을 했다고 되어 있어. 실제로 부대에 잠입한 스파이를 잡았다는 기록도 있고. 전쟁 중 여가시간에는 폴란드 동료 병사들하고 같이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 . . . 아니 먹었다고 되어 있고."  

"아니, 곰한테 맥주도 모자라 담배를 먹였다고?" 

"어린이, 제 2차 세계대전은 20세기 초반에 일어났어. 함께 사는 동물을 '반려'라고 부른다거나 동물보호법이나 동물권이란 게 존재하는 21세기가 아니라고. 게다가 전시였고 군대잖아, 저기는." 

"그럼 그건 그렇다고 하고 보이텍 곰돌이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누구랑 함께 살고 있냐고?" 

"폴란드 제2사단 병사들 모두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가지 않았대. 전후 폴란드는 소련의 영향을 받는 공산주의국가가 됐으니, 소련의 포로였다 풀려난 병사들은 그런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겠지. 전우들이 모두 스코틀랜드에 정착하기로 결정하면서 보이텍도 그곳 에딘버러 동물원에 남게 되었다고 해. 그러다 1963년 22살 되던 해 죽었대." 

"그게 뭐야. 사람들하고 같이 살아서 야생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으니 어쩔 수 없었던거래? 목숨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에서 오지게 써먹고, 결국 태어나 3, 4년 말고는 생애 전부를 동물원에 갇혀 살았던 거잖아."  


보이텍은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였어도 자유로웠던 전시가 더 좋았을까, 아니면 자유 없고 답답하지만 안전한 동물원이 좋았을까. 이런 생각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사람 손에 키워져 돌아갈 곳 없는 곰에게 전쟁이 끝난 후이든 전쟁 중이든 선택할 수 있는 기회 따위 애초부터 없었을테니. 곰돌이 '보이텍'은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소폿 출신 에바 라코프스카-에가(EWA RAKOWSKA-EGGAR)라는 여성이 지역신문에서 몬테 카시노 전투에 참가한 곰 보이텍에게 헌정된 한 전시회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이슈화되었다. 그녀는 전시회를 관람한 뒤 '몬테 카시노의 영웅들' 이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는 그녀의 고향마을 소폿에 보이텍의 동상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보이텍의 동상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자 재단을 설립하였고, 결국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인 2019년 9월 1일 보이텍의 동상이 소폿의 몬테 카시노 거리에 세워졌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곰의 영웅적 활약상이라며 사람들 사이에서 두고 두고 회자되겠지.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그 사람들은 평생을 동물원에 갇혀 살다 쓸쓸히 죽었을 보이텍의 마지막 역시 알고 있을까. 전쟁은 그것을 일으킨 당사자인 인류 뿐 아니라 자연에게 그리고 자연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물에게 그보다 더 잔혹할 수 없는 재난이고 악몽이다. 소폿을 돌아다니는 내내 제복 입은 곰이 눈에 밟혔다. 


보이텍을 뒤로 하고 겨울비 내리는 발트해변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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