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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CITY(3), 비 내리는 날의 주마간산

그디니아(GDYNIA), 생활형 항구 도시 26

소폿에서 그디니아는 그단스크에서 소폿 거리보다 더 가까워서 기차에 탑승하자마자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디니아는 발트 해 세 쌍둥이 도시 중 가장 관광지와 거리가 먼 도시여서 론리에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그렇더라도 그디니아는 IC 등 장거리기차의 최종 목적지로 익숙한 탓에 나는 그디니아가 그단스크보다 규모가 더 큰 도시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론리에 언급 조차 없는 것을 의아해했는데, 항구 쪽으로 가면서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항구는 소폿 같은 관광지의 모습은 아니었고, 메인거리나 구시가 광장도 여행자의 주의를 끌 만한 것이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같은 해안도시라고 해도 박물관으로 쓰이는 배 몇 척을 제외하고는 전부 실제 운항하는 큰 선박들이 정박해 있으면서 선적을 하는 수, 출입 무역항으로 보여 활기찬 생활도시라는 느낌이 강하였다. 세 쌍둥이 도시들 중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왜 그디니아를 꼽는지 알 것 같았다. 일반적인 관광객에게 이처럼 큰 볼거리 없는 그디니아는 매력 없겠지만, 관광지 특유의 소란스러움과 북적거림이 싫은 염개미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괜찮은 선택지일 수도 있겠다. 다음에 폴란드에 온다면 그단스크 아닌 그디니아 쯤에 묵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엄마, 여기는 어, 그단스크처럼 고풍스러워 보이지 않고 소폿처럼 휴양지로 보이지도 않는데? 장거리기차 타면 최종 종착지가 그디니아인 기차들이 많아서 큰 도시인 줄 알았는데, 다는 아니지만 메인거리 걸어보니 규모가 많이 큰 도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실용적인 생활 도시인가 봐." 

"그단스크는 '단찌히' 라는 독일 이름이 있을 정도로 독일 령이었다가 폴란드 령이었다가 자꾸 바뀌니까, 작은 어촌이었던 그디니아를 폴란드에서 이를테면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항구도시로 지정해서 정책적으로 키운 것 같아. 연짱이 말대로 실질적인 항구 도시가 맞아." 

"역시! 근데 오늘은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발트해변 설렁설렁 걷자며."  

"먼저 물어봤잖소, 어린이." 


그디니아는 그단스크 북서쪽 그단스크 만을 끼고 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에서 폴란드로 반환되고 난 뒤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독일령이고 독일인이 대부분이던 그단스크 입법 의회가 폴란드의 항구 이용을 막자, 폴란드는 새로운 항구를 세울 도시로 그디니아를 택하였다. 그 결과 그디니아는 1924부터 1939년까지 그단스크나 슈체친을 능가하는 발트 해의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도시와 항구를 파괴하였으나 전쟁이 끝나자 빠른 복구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조선소가 있으며, 그단스크, 소폿과 함께 3대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그디니아는 세 도시를 잇는 중심 항구이다. 폴란드 해군의 모항이며 제조업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주로 목재·석탄·설탕을 수출하고 철광석과 식료품을 수입한다. 해양박물관과 해양학교가 있다. 


워, 폴란드 해군 모항이구나, 그디니아! 


'몰로 포우드니오베(MOLO POŁUDNIOWE)' 그러니까 남쪽 부두로 향하였다. 그디니아 남쪽 부두는 박물관으로 이용되는 함선과 코슈치우쉬키 광장(SKWER KOSCIUSZKI)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브우스카비차(ORP BŁYSKAWICA) 구축함.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유일하게 전쟁 내내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연합군 전함이라고. 1976년부터 해군 박물관의 일부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호기심에 슬쩍 올라가봤다가 박물관인 것을 보고 그냥 내려가자, 직원 할아버지가 왜 그냥 가느냐고, 여기 박물관이라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셨다. 말은 안 했지만 연짱이는 대한민국에서 이미 잠수함 체험까지 다 마친 어린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조선업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나라예요. 하지만. 


그 당시는 별 생각없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디니아든 그단스크든 조선소로 유명한 도시들이고, 자유노조연대 의장이자 공산정권에 압승을 거두고 취임하였던 유명한 레흐 바웽사(LECH WAŁĘSA) 대통령의 노조 역시 세 쌍둥이 도시가 뿌리였는데, 가 볼 것을. 늘 후회는 늦되다. 


'다르 포모르자(DAR POMORZA)'

세 개의 돛이 있는 백 년 넘은 범선으로 1809년 함부르크에서 건조되어 해양학교(Maritime School)가 항해사 교육을 위해 1929년 이 함선을 구입하였으며, 1983년부터 현재까지 국립해양박물관의 일부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브우스카비차 함선도 그렇고 다르 포모르자도 그렇고 매우 큰 선박이어서 한 화면에 다 담기지를 않는다. 지금도 어마어마한데, 다르 포모르자는 범선이니 돛을 다 펴면 지금 모습보다 훨씬 더 웅장하겠지? 


갈레온 드래곤(GALEON DRAGON). 성수기에는 승객을 태우고 그단스크 만과 그디니아 항을 유람하고 비수기에는 레스토랑으로 쓰임새가 바뀐다. 


"이건 또 무슨 해적선이야." 

"잭 스패로우 타고 있나 한 번 봐라, 어린이." 

"엄마, 여기 선상 레스토랑인가 본데. 이거 운항하는 배인가 봐."  


2019년 겨울 태국 강변도시에서 성수기에만 운항한다는 무늬만 배에 하도 여러 번 속아서. 근데 이 번에는 연짱이가 옳았다. 이 배는 아니었고 이 배와 거의 똑같은 컨셉트로 주말에 사람들 가득 태우고 그단스크 모트와바 강을 유람하는 배를 보았다. 겨울 비수기 현재 레스토랑 운영 중이라 가격 괜찮으면 생선요리나 먹어볼까, 기웃해보려고 하니, 이용하는 사람 거의 없는 식당인 것도 불안한데 게다가 선도가 생명인 생선요리를 어떻게 믿고 먹느냐고 연짱이가 펄쩍 뛰어서 한 번 쓱, 쳐다만 보고 지나쳤다. 다 큰 연짱이는 늘 98% 옳다. 


'몰로 포우드니오베(MOLO POŁUDNIOWE).' 남쪽 부두. 

주변 볼거리를 촘촘히도 설명해 두었다. 비바람이 거센데다 해변이어서 너무 추웠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다른 볼거리들을 볼 생각을 못하고 말그대로 주마간산 격으로 부두만 돌아보고 왔는데, 바로 앞에 있는 아쿠아리움이야 아무 미련도 없지만, 예전에는 해외여객수송터미널 역할을 했었고, 지금은 이민박물관(EMIGRATION MUSEUM)으로 쓰이고 있는 마린 스테이션(MARINE STATION)도 들러보고, 바로 옆 해변도 걸어볼 것을. 


그디니아는 수, 출입 선박이 드나드는 항구이기도 하지만, 폴란드에서는 유일하게 여객선이 기항하는 항구라고. 여객선 로(PASSENGER SHIPS ALLEY)는 과거와 현재 이곳을 이용하였던 여객선을 알 수 있도록 해두었다. 사진에서 잘 보이는 퀸 엘리자베스 호와 놀웨이지안 게터웨이 호 뿐 아니라 알바트로스(ALBATROS), 릴리 말린(LILI MARLEEN), 디스커버리(DISCOVERY), 퀸 빅토리아(QUEEN VICTORIA), 윈드 서프(WIND SURF) 등 유명 호화 여객선의 대리석 기념 명패가 보인다. 


폼닉 마쉬티 이 드리겐트 팔(POMNIK MASZTY I DRYGENT FAL). 돛대와 파도 기념비. 

바람 잔뜩 품은 채 거세게 날리는 돛대를 형상화한 기념비다. 항구도시 그디니아에 매우 잘 어울리는 기념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 조셉 콘라드(1857-1924) 님을 뵈옵니다. 영어 이름 말고 원래 콘라드의 풀 네임은 요제프 테오도르 콘라드 코르제니오프스키(JOZEF TEODOR KONRAD KORZENIOWSKI). 영국으로 귀화하면서 영어식 이름으로 개명하고 조금 늦게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나, 이등, 일등 항해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닌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디니아에서 만나뵙게 될 줄은 정말이지 생각도 못하였다. 고딩 때 그의 소설 '어둠의 속(HEART OF DARKNESS)' 를 읽고 참 음울하구나, 생각하여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그 유명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도 보지 않았는데.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는 폴란드 어로 되어 있어서 궁금해도 어떻게 읽을 방법이 없네. 


"엄마, 디지털이 이럴 때 좋은거야. 심카드는 괜히 장착했겠어? 우리에게는 구글번역이 있어." 


"Nic tak nie nęci, nie rozczarowuje i nie zniewala, jak życie na morzu" (FROM LORD JIM)

(There is nothing more enticing, disenchanting, and enslaving than life at sea

"바다에서의 삶보다 더 매혹적이고 환멸스러우며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도 없다." 


바다를 동경하여 선원이 되었으나, 거칠고 힘든 해상생활을 경험하고는 뭍으로 나온 후 두 번 다시 바다 위에 

있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정신 차려보면 홀린 듯 또 다시 갑판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것일테지. 내게 여행도 그러하다. 익숙한 일상을 떠나 낯선 문화권에 들어선다는 것이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니어서, 불친절을 넘어선 말도 안 되는 횡포를 겪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몹시도 추레해진 자신을 겪으면 많이 분노하고 실망하고. 그래, 다시는 고마운 일상을 떠나나 봐라, 다짐하지만, 어느 날 정신차려보면 발권한 항공권과 여권 손에 들고 또 다른 낯선 곳을 헤매는 그만큼 낯설고 그 이상 낯익은 내가 있더라. "일상을 떠나온 여행자의 날들보다 더 매혹적이고 환멸스럽고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도 없다." 정말 그렇다. 


범선인 다르 포모르자 모형인 듯. 


브우스카비차(ORP BŁYSKAWICA) 구축함 모형인 것 같다. 


"엄마, 이 구축함 모형 엄청 고퀄이야. 갑판 위에 있는 포하고 거의 다 움직여."


연짱이는 정말 공대 오빠 같은 데가 많은 청년이어서 배 모형에도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극성 맞은 현지인 아이들 모두 지나갈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가 만져보고 돌려보고 한참을 여기 있었다. 굉장히 잘 만든 모형인 것이 갑판 위 대부분의 것들이 움직인다. 


"엄마, 다른 곳도 가 볼거야? 나 배고프고 다리 아프고 힘들어서 막 화가 나." 


오후가 되자 비는 거의 그쳤지만 대신 날이 굉장히 쌀쌀해졌다. 동유럽 비 내리는 겨울날 칼바람 불어닥치는 바닷가였으니 더 추웠을 것이다. 연짱이는 배가 고프면 화를 낸다. 최악은 배 고프고 추운데 졸릴 때. 그럴 때 아이는 폭주한다. 춥기도 춥고, 걷기도 많이 걸었고, 허기도 져서 더는 돌아볼 의욕이 나지 않아 그디니아 중앙역으로 향하였다. 이 때는 너무 고되고 지쳐서 탐구심이 바닥이었는데, 카슈브스키 광장(KASZUBSKI)에 있는 벤치 위 노부부 동상도 보고, 오르워보 부두(MOLO ORŁOWO) 긴긴 다리도 더 걸어보고, 해변에 발자국도 더 남겨보고 올 것을. 다시 생각해도 아쉽디 아쉬운 그디니아 주마간산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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