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빵 박물관, 양 손에 반죽덩어리라니 미안해 19
외국인은 나와 연짱이 뿐이어서 체험 조교 언니가 중간 중간 영어로 빠르게 설명을 하고 넘어가는데, 굳이 영어 설명 없어도 눈치껏 다 할 수 있다.
자리에 앉으면 생강빵 반죽 덩어리와 생강빵 틀이 자리 당 하나씩 놓여있다. 먼저 생강빵 틀에 기름칠을 해야 반죽이 들러붙지 않고 잘 떨어진다. 그런 다음 생강빵 반죽 덩어리 겉에 묻어있는 밀가루가 하나도 없이 끈적해질 때까지 반죽 덩어리를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치대야 한다. 반죽이 생각보다 단단하여 손가락 아픈 나한테는 버거웠기 때문에, 연짱이가 내 것까지 다 해주었다. 다른 테이블은 엄마들이 아이들 것을 다 해주는데.
"아, 정말, 우리집은 뭐 이래. 다른 집은 엄마들이 아이들 반죽 치대서 주는데, 우리집은 어린이가 반죽 치대서 엄마 줘."
"미안하다, 연짱이. 양 손에 떡도 아니고 양 손에 생강빵 반죽이라니."
생강빵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염개미는 손바느질을 정말 못해서 사소하게는 떨어진 단추 다시 다는 것부터 옷 솔기 터진 것까지 연짱이가 엄마 몫까지 도맡아 한 지 오래 되었다. 바느질도 그렇고 생강빵 반죽까지 미안하긴 한데, 뭔가 너무 웃겨서 말하던 연짱이도 나도 엄청 웃었다. 맞은 편에서 생강빵 반죽 치대던 언니가 양 손에 반죽 덩어리를 들고 조물락 조물락 치대는 연짱이를 보더니 빵, 터져서.
연짱이 생강빵 틀은 예쁜 문양 들어간 큰 하트. 위의 진저브레드맨 틀이 염개미 틀. 나는 연짱이 틀도 엄청 예뻤는데, 연짱이는 내 틀이 더 예쁘다고. 틀이 예쁘든 어쨌든 반죽은 연짱이가 다 했다는 슬픈 사실을 연짱이 자리에 다소곳이 놓인 내 것과 연짱이 것, 두 개의 반죽 덩어리가 말해준다. 연짱, 지못미.
반죽이 끈적해졌으면, 다음 단계는 끈적해진 반죽을 밀대로 밀어야 한다. 아무래도 쿠키 반죽이어서 생각보다 반죽이 뻑뻑하다. 우리나라 수제비나 칼국수 반죽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 다음 다 민 반죽을 틀에 넣고, 손가락으로 틀 모양에 맞게 꾹꾹 눌러주고, 내 것이라는 표시를 하면 된다. 내 것 표시는 너무 복잡하고 작으면 구운 후 잘 안 보이기 때문에, 간단하고 명확하게 해야 잘 알아볼 수 있다. 진저브래드맨은 내 것.
연짱이 고유 마크. 빵떡처럼 보이지만, 하트 틀 위에 반죽을 눌러 입힌 것이다.
최선을 다 해 몰입 중인 연짱이. 연짱이 옆 폴란드 어린이는 엄마와 함께 웃고 즐기던데, 우리 한국 사람에게 체험 즐기기는 사치다. 나도 연짱이도 정말 정색하고서 전투적으로 몰입했는데, 옆에서 본 체험 조교 언니들은 얼마나 웃겼을까.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넣은 반죽을 틀에서 살살 떼어내면 이 모양이다. 테이블 마다 하나씩 놓여 있는 칼을 가지고 볼록한 틀 모양대로 오려내면 되는데, 나는 이것도 잘 못하여 연짱이가 다 해줬다. 그리고.
여기서 끝났으면 나와 연짱이가 열혈 한국인이 아니겠지. 내 틀과 연짱이 틀에서 떼어내고 남은 자투리 반죽을 뭉치니 원래 하나씩 나눠주었던 반죽 덩어리만 한 게 마음에 걸려, 연짱이가 정말 빛의 속도로 하나 더 만들었다. 담당 조교 언니는 손이 보이지 않게 분주한 우리를 잠깐 보다가 웃겼는지 웃으며 물어보았다.
"너네 한쿡사람이랬지?"
언니의 물음을 듣고 연짱이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엄마, 내가 장담하는데, 남은 반죽 덩어리 아깝다고 생강빵 하나 더 만든 거 우리가 처음 아니야. 한국 사람들 와서 분명히 여러 개 더 만들었을 거라고 확신해."
그러하다.
나와 연짱이가 관람한 시간대가 생강빵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마지막 시간대이고, 우리가 마지막 그룹이어서
체험자들이 만든 생강빵이 다 구워지면 그대로 퇴근하려는지, 언니들은 이미 사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우리가 하나 더 만드는 바람에 언니들 퇴근이 늦어졌을려나. 내가 미안해요, 했더니 언니가 웃으며 전혀 아니라고는 하였지만, 미안하였다. 언니, 모든 한국인들이 우리처럼 극성맞은 건 아니라우.
생강빵이 구워지는 동안 박물관 1층을 둘러보았다.
사진 왼쪽 맨 끝과 맨 끝에서 두 번째 자리가 연짱이와 내 자리. 술 취한 디오니소스 님도 아니고, 뭐 저런 남사스러운 꼴을 하고 있는 거니. 지금 보니 못 마땅. 아, 디오니소스 님일지도.
나와 연짱이가 앉은 자리가 끝인 줄 알았다면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위 사진 속 테이블이 끝인 줄 알았다면 또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체험 프로그램 공간은 꽤 넓다.
생강빵 박물관 체험 프로그램에는 어른이나 커플 참여도 많았지만, 아이들도 꽤 많이 온다. 부모와 함께 오는 아이들 때문에 이런 공간이 있나 보다. 아직 어린이 테를 채 못 벗은 연짱이 어린이가 재미있어한 공간이었다.
"헨절과 그레텔을 꼬드긴 과자로 된 집이 생강빵집이었던거야?"
"어, 그럼 엄마는 마녀한테 바로 붙잡혔을 걸."
꿀과 생강즙이 흐르는 생강빵 화덕.
생강빵 박물관 2층으로 가볼까요.
생강빵 박물관 2층은 근대 생강빵 상점 풍경을 보여준다.
과자와 초콜릿 집.
이게 생강빵으로 만든 집이었다면 염개미는 바로 걸려들었을 걸. 과자집 뒤로 보이는 아랍 풍 모자를 쓴 인물이나 배 모형은 중세 토룬이 한자동맹에 속한 무역 도시였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스와 강(WISTUŁA)이 흐르는데다 유럽 무역의 교차로에 위치한다는 이점 덕분에, 토룬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풍요로울 수 있었고, 또한 생강이나 계피와 같은 향신료 역시 타 도시에 비해 들여오기 쉬웠을테고. 15세기 폴란드 역사가 얀 드우고쉬(JAN DŁUGOSZ)가 묘사한대로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 그리고 비스와 강처럼 토룬 거리를 감아돌았을 생강빵 향. 어쩌면 중세의 토룬 자체가 권력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과자와 초콜릿 집의 유혹이었을지도.
"손님, 저희 상점은 수 십 대를 이어 생강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전통있는 곳입니다. 선물용도 있고 근 단위로도 구입하실 수 있어요. 뭘 원하시죠?"
사진 속 저울 위에 놓여 있는 생강빵은 모형 아닌 진짜 생강빵인데, 관람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히 모형인
줄 알고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친다. 하지만 염개미와 연짱이는 보았다. 생강빵이 구워지는 동안 생강빵 애니메이션을 보려고 전시룸에 앉아 있는 우리를 지나쳐 간 직원 오빠가 저울 위 모형인 줄 알았던 생강빵을 한 손 가득 들고 가서 먹던 모습을. 나와 연짱이가 놀라서 쳐다보니 오빠는 몰랐니, 하는 얼굴로 씩, 웃었다.
그 오빠를 보면서, 연짱이도 나도 자연스럽게 1층에서 본 영상을 떠올렸다. 중세 생강빵집 주인 아줌마가 자기네 생강빵을 구입하라고 선전하는 영상이었는데, 폴란드 어 영상이었지만 손을 허리에 올린 자신만만한 태도며 빠르고 힘찬 말투만 봐도 엄청나게 공격적인 마케팅을 구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 연짱이, 저 아줌마 지금 '우리집 생강빵은 어, 백작님도 와서 사 드시고, 어, 공작님도 와서 사 드시고, 어, 심지어 왕도 와서 사 드셔, 이거 왜 이래!' 라고 말한다."
"악, 그게 뭐야, 엄마. 싱크로율 백 퍼센트야."
그 말이 그토록이나 재미있었는지 연짱이는 며칠을 두고 웃고 또 웃었다. 생강빵을 처음 대하는 염개미와 연짱이 같은 이방인은 말 할 것도 없고, 박물관에서 일하는 토룬 토박이 오빠에게 조차 생강빵은 그토록이나 맛있는 먹을거리였으니, 영상 속 중세 생강빵 장수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던 거다.
"생강빵 선전 영상하고 엄마 말하고 싱크로율 백이라서 생각할수록 웃겨 죽겠어."
"메두사냐, 그것만 하겠니."
연짱이네 학교 자유게시판에 어떤 아이가 아이 컨택만으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는다는 말도 있던데 사실이냐고 물었던 모양인데, 댓글에 또 다른 아이가 "메두사냐" 라고 답했다고, 연짱이가 말한 걸 듣고 내가 며칠을 두고 웃었던 기억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DNA 에 개그 코드가 심겨져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을 나는 참 자주 한다. 댓글 학원 다니냐고 물었던 사람들, 나도 하고 싶은 말이다.
"참, 그리고 손님, 저희 상점은 카페도 겸하고 있습니다. 생강빵하고 같이 뭘 마시고 싶으시죠? 커피? 홍차? 아니면 우유? 말씀만 하세요."
상점 옆에 마련된 카페 공간에서 갓 구워낸 생강빵과 홍차를 마실 수 있다면. 환상적이었겠다.
20세기 초반 현대적 생강빵 상점의 진열 풍경일 것이다. 방물장수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팔았던 우리나라 '동동구리무' 처럼 방판도 가능하 . . . 지는 않았겠구나. 선물용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체로는 갓 구워 따뜻하고 신선한 생강빵을 원하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을테니.
대를 이어 생강빵 상점을 운영하였던 상인의 집무실 풍경. 향신료를 들여오는 무역업도 겸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았다.
박물관 안에 있던 생강빵을 실어나르는 용도로 보이는 트럭과 연짱이.
"엄마, 저거 모형 아니야. 어떤 언니가 트럭 문 열고 안에 들어가서 사진 찍는 것 봤어."
"어, 그래? 그럼 너도 얼른 가서 찍어."
"뭘 챙피하게 그래."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폴란드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이 트럭 안에서, 그리고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게 내심
부러웠던 연짱이는 내국인 관광객들이 폴란드 어 설명을 들으면서 박물관 내부 투어하느라 뜸할 때, 재빨리
다시 와서 사진을. 어린이 쪽으로 훨씬 많이 기울어 있는 청년 연짱이.
"엄마, 엄청 알찬 하루였어."
연짱이에게 보람과 만족스러움을 안겨준 알찬 생강 박물관 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