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신학 그리고 철학과 과학의 조화
아테네 학당 (인문학과 신학 그리고 철학과 과학의 조화)
로마를 찾는 여행객에게 바티칸은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이다. 바티칸 궁 안에 위치한 ‘라파엘로의 방 stanze di Raffaello’은 시스티나 예배당과 함께 가장 유명한 명소이다. 1508년경 라파엘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으로 ‘서명의 방’이라 불리던 그의 방에 총 세 개의 프레스코 벽화(파르나 수스, 성체 논의, 아테네 학당)를 그렸다. 오늘은 그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인 아테네 학당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테네 학당 The School of Athens’은 1510년~1511년 무렵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이다. 프레스코 Fresco라 하면 ‘a fresco’ ‘방금 회를 칠한 위에’라는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용어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벽화를 일컫는다. 프레스코는 기원전 약 3000년에 미노스 문명의 중심지인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의 벽화가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인류 회화사에서 아마 가장 오래된 그림의 형태로서 중국, 한국의 불교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벽화도 프레스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아테네 학당의 배경 좌우를 보면 예술과 지혜를 상징하는 아폴론과 아테나의 대리석 조각상이 있다. 그리고 그림 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총 54명의 학자들이 서로 토론하거나 깊은 사색에 빠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특징인 둥근 아치 형태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 그림은 빼어난 원근법의 적용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많음에도 산만하지 않고 웅장함과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인문학자들이 그림 상단부에 위치하며, 하단부에는 주로 피타고라스, 유클리트 등 자연과학을 연구한 학자들을 그렸다.
그림 중앙에 그려진 플라톤은 우주와 인간 본성과 작동원리를 다룬 그의 역작 ‘티마이오스’를 옆구리에 끼고 손가락으로 이상을 뜻하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현실주의자로서 자연계와 과학의 탐구를 상징하듯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다. 두 사람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두 진리의 본질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흥미롭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을 모델로 그려졌음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의문점을 가질 수 있다. 왜 라파엘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플라톤의 얼굴을 다빈치로 그려 넣었을까?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플라톤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유추해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의 상징인 스콜라 철학의 근간을 이룬 사상가였던 반면에, 그 당시 르네상스 시대는 플라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다루어졌던 시기임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플라톤의 철저한 이성적 사고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은 르네상스 시기에 일어난 가톨릭의 변화와 코드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림 오른편 아래에 그려진 유클리트를 보자. 그는 지금 땅바닥에 종이를 펼쳐놓고 그의 발명품인 컴퍼스로 열심히 기하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김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불변 진리의 명언을 제공한 주인공이며, 기하학을 잘 모르더라도 우리는 수학책 안에서 ‘유클리드 호제법’이라 불리는 최대공약수로 만난 적이 있다. 유클리트 뒤편으로 천체와 지구본을 들고 있는 두 노인이 있다. 천체를 든 노인은 천 년이 넘도록 서양의 모든 사람들에게 천동설을 믿게 한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이며 지구본은 든 학자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자라투스트라이다.
자라투스트라 오른편에 검은 모자를 쓴 미소년, 라파엘로 자신이 그려져 있다. 라파엘로는 다른 학자들과 달리 우리(관객)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이 그림을 더욱 자세히 보면 라파엘로 외에 우리와 눈을 마주치는 인물을 한 명 더 찾을 수 있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녀는 라파엘로의 연인인 마르게리타이다. 그녀는 그림 ‘라 포르나리나’의 모델이며 라파엘로가 지극히 사랑했던 여인이다. ‘라 포르나리나’는 빵집 딸이라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라파엘로는 교황청의 막강한 권력자인 메디치 비비에나 추기경의 조카와 약혼을 한 상태라 천한 신분인 마르게리타와의 사랑은 비밀리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그림은 1518~1519년도에 제작되었고 올해 7월 넥서스의 Ngff에서 상연되었던 영화 “The Great Beauty”의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이밖에도 플라톤 왼편으로 그의 제자들 앞에서 설명에 열중하는 소크라테스와 알렉산더가 있다. 그 아래 열심히 무언가를 책에 적고 있는 학자는 피타고라스이다. 그림 중앙 아래쪽에 턱을 괘고 있는 심각한 표정의 사람은 최근에 다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이며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하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6세기경의 학자로 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인간은 세계를 실체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특정 시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사건들이다. 모든 것은 흐름 속에 있다. 강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흐름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화면의 중앙 아리스토텔레스 아래에 반라로 계단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는 노인이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이 노인의 이름은 디오게네스이다. 개들이 잠을 자는 통 속에서 생활했기에 그의 별명은 그리스어로 ‘개가 사는 통’이라는 뜻의 퀴닉이었다. 그는 세 가지 사상을 세상에 설파하였다. 첫째인 아스케시스(askesis)는 가능한 한 작은 욕망을 가지도록 훈련하는 것. 둘째, 아나이데이아(anaideia)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아우타르케이아(autarkeia)는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와 알렉산더 대왕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물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다 이루게 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귀를 긁적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거, 좀 비키시오. 당신이 해를 가리지 않소.”
위 그림을 살펴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라파엘로는 어째서 가톨릭의 중심인 바티칸의 궁전에 가톨릭 성화가 아닌 그리스 철학자 들을 그렸을까? 가톨릭의 입장에서 그리스 철학은 이교가 아닌가? 아마도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통하여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그리고 종교와 인문주의의 화해와 조화를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더욱이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진 르네상스는 중세까지 이어진 오로지 ‘신’을 향한 관심에서 ‘인간’으로 관심이 바뀌는, 다시 말해 신학 중심의 세상에 그리스 인문학이 다시 부활을 하는 시기였다. 그렇기에 라파엘로는 심지어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자라투스트라까지 그려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테네 학당 사본이 넥서스커뮤니티의 북카페에 걸려있다. 넥서스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았으면 한다. 함께 아테네 학당을 보면서 서로 대립하기 쉬운 종교와 인문학, 철학과 과학의 화해와 조화를 꿈꾸었던 라파엘로의 생각을 마음속에 가져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식창조, 지식순환, 지식 환원을 통한 삶의 참 행복 추구”라는 핵심 가치를 지닌 넥서스인의 힘찬 르네상스를 꿈꿔 본다. “넥서스 학당”안의 우리 모두는 삶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이기에... 201406180404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