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답게 현존 최고의 MR 헤드셋을 만들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안녕하세요, 뉴욕 사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안토입니다.
애플의 비전프로가 드디어 미국에서 출시되어서 바로 구매해 봤습니다. UX디자이너인 만큼 비전프로에 대한 기대가 높았는데요, 일주일정도 실생활에서 사용해 본 결과, 결국 환불을 결심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애플일하는 직원찬스를 받아 25% 할인받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음에도 단점이 너무 많아 결국 환불결심을 했습니다. 정가로 주고 구입하신 분들은 더더욱 그럴 것 같네요.
전 비전프로를 작업용으로 주로 사용하려고 구매했는데요, 애플스토어의 30분짜리 데모가 아닌, 실제 일주일 동안 사용해 보면서 느낀 점을 여러분들께 알려드리려 합니다!
1세대 치고는 MR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비전프로는 아이트래킹과 핸드트래킹으로 마우스를 대체합니다. 그 뜻은 어떤 버튼을 클릭하고 싶다면 그 버튼을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집게손가락과 엄지로 집으면 클릭이 되는데요, 높은 정확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VR/AR모드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제가 기차에서 작업 및 유튜브 시청을 하는 모습인데요, 주변 환경을 보고 싶을 때, 혹은 남들과 떨어진 개인공간에 들어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비전프로는 맥북의 화면을 공유해서 크게 MR환경에 띄울 수 있는데요, 전 이게 가장 좋은 기능인 것 같습니다. 특히 자유자재로 화면 사이즈를 키워서 큰 화면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은 집중하기에도 너무 좋았고, 또한 VR 모드로 들어가서 산 꼭대기에서 작업하는 환경을 만드니 너무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VR모드로 들어가면 키보드가 안 보이면 어쩌나 걱정하실 수도 있지만, 디지털 크라운을 돌려서 AR/VR의 비율을 미세하게 조절이 가능해서 키보드까지는 보이는 정도로만 VR을 켜시면 됩니다.
사실 MR기기의 가장 큰 태생적 한계는 주변시선, 그리고 야외에서 사용했을 때 정상인(?) 취급을 받기가 어렵다입니다. 아이폰, 맥북, 에어팟, 아이패드 모두 처음 출시되었을 때 야외에서 사용한다고 부끄럽거나 주변시선이 걱정된 적은 없었는데요, MR기기들은 웬만한 깡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 시선이 무조건 신경 쓰입니다..
전 오큘러스도 소지하고 있는데요, 비전프로가 가장 야외에서 휴대하였을대 패션적으로 이질감이 없습니다. 이게 착용하고 돌아다녔을 때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아직 야외착용은 못하겠더라고요..), 목에 두르고 돌아다녔을 때의 얘기입니다. 참고로 이쁘다는 얘기도 아니고요, 가장 이질감이 적다-입니다 ㅎㅎ..
메타 퀘스트는 목에 두르면 IT 광신도처럼 보일까 봐 가방에 넣고 다니지만, 비전프로는 목에 둘러도 어느 정도 스키장패션..?으로 퉁칠 수가 있어서 뉴욕 길거리에서는 목에 두르고 다니는 중입니다. 간혹 알아보는 분들이 계시긴 하는데 MR기기 치고는 무난하게 휴대가 가능한 점이 매력이라고 느껴지네요.
애플의 전자기기들은 단순히 기계를 넘어서 (가끔은) 하나의 패션아이콘이 되곤 합니다. 아이팟과 줄이어폰이 처음 나왔을 땐 너도나도 따라 해서 애플 줄 이어폰을 주렁주렁 달고 다녔죠. 에어팟도 초반엔 얘기가 많았지만 결국 무선이어폰 중에선 그나마 가장 무난한 IT패션 아이콘이 되었고요. 카페에서 알루미늄 재질인 맥북을 열고 멋있게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신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항상 패셔너블한 기기를 만드는 걸 중요시하는 애플인지라 패셔너블하게 만들기 굉장히 어려운 MR기기를 이렇게까지 디자인적으로 풀어간 부분은 저도 높게 쳐주고 싶네요.
그리고 무조건 패완얼. 지디가 두르고 다니면 힙하겠죠..? ㅋㅋ 조만간 연예인분들의 착용샷도 기대해 봅니다.
현존하는 MR기기 중에선 가장 장점이 많은 기기인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제가 환불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들이 있는데요, 이제 단점을 알려드리려 합니다.
대한민국은 안경의 나라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시력이 나빠서 저 같은 경우도 몇 년 전 라식수술을 받았는데요, 시력교정술 받아 보신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안구건조증이 가장 힘들잖아요. 눈이 쉽게 뻑뻑해지고, 건조해지면 일시적으로 시력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 들죠? 인공눈물이 필수인데요, 비전프로를 한 시간만 사용해도 눈이 건조해져 일시적으로 시력저하가 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래도 4K 디스플레이 두 개가 눈 몇 센티 앞에 위치하다 보니, 눈이 굉장히 쉽게 피로해집니다. 전 비전프로를 반품하려는 이유 중에 이게 가장 큽니다.
제 눈은 소중하니까요..
전 비전프로를 작업용으로 구매했다 보니 하루에 6-8시간 착용할 각오로 구매를 했습니다. 물론 더 편한 헤드밴드도 포함되어 있어 그걸 사용하면 조금 더 편해지긴 하지만, MR기기 특성상 기기 전체를 눈 주변에 밀착시켜서 사용해야 빛도 안 들어오고 화면도 깔끔하게 보이는데요, 이마, 볼 주변이 아립니다.
또한 기기가 무게가 있다 보니 팔자주름을 누르게 되어 팔자주름이 더 진해지는 느낌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전 이 이유도 환불하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루 8시간 사용하면 진짜 빨리 늙을 것 같습니다.
얼굴 노화는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니까요..
비전프로는 배터리 수명을 2시간 반으로 늘리기 위해 외장형 배터리를 채택했는데요, 이게 아무래도 줄에 연결되어있다 보니까 팔이나 다리가 줄에 엉켜 책상 위에 둔 비전프로가 날아갈뻔한 적이 많았습니다.
애플케어가 $500 정도 하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기에 구매를 하지 않았는데요, 이번주 내내 떨어뜨릴뻔한 적을 몇 번 마주하며 곧바로 애플케어 구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몇 번 떨어뜨리면 앞 유리는 무조건 파손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추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상당수 해결되겠지만, 지금은 너무 불편합니다.
우선 카카오톡 알림이 비전프로 내에 뜨지 않습니다.
아직 비전프로 앱스토어에 카톡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애플워치처럼 아이폰의 알림을 모두 릴레이만 해주어도 상당히 편해질 것 같은데, 전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비전프로에 설치되어 있는 앱 알림만 뜨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카카오톡을 확인하려면 비전프로를 착용한 상태에서 아이폰을 사용해야 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이폰의 FaceID가 작동하지 않는다. 비전프로로 아이폰을 열 수가 없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애플워치는 착용만 하고 있어도 아이폰 잠금이 풀리는데요, 비전프로도 Optic ID (홍채인식)이 있음에도 이게 아이폰 잠금해제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FaceID가 실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밀번호로 풀어야 하는데, 이게 매번 5초 이상 걸리기 때문에 매우 번거롭습니다.
아이폰 잠금을 해제해도 문제가 더 있습니다.
AR기기의 최대장점은 주변환경을 그대로 볼 수가 있다는 점인데요, 비전프로를 착용한 채 카카오톡을 사용하려고 아이폰을 들여다보면 화면이 너무 뿌옇게 나옵니다. 읽기가 조금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래 비전프로로 보는 시점을 스크린캡처 해보았습니다.
이 스크린캡처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나오는데요, 이건 거짓입니다. 실제 보이는 건 이 사진보다 훨씬 퀄리티가 떨어집니다. 애플에서 캡처는 이렇게 퀄리티 좋게 할 수 있으면서 실제 보이는 뷰는 이 퀄리티로 안 나온다는 게 약간은 사기당한 느낌입니다.
추후 카메라도 업그레이드되면서 더 또렷하게 보이는 날이 오겠지만, 1세대 카메라의 퀄리티는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또 기대했던 용도는 게임이었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을 즐겨하기 때문에 맥 화면공유 기능을 사용해 롤을 해보았는데요, 화면 크기가 크기 때문에 우선 몰입도는 장난 아닙니다. 그리고 딜레이 및 렉도 거의 없어서 게임하는 것 자체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화면이 아주 약간 어둡습니다 ㅜㅜ 화면밝기도 맥북이나 아이폰처럼 쉽게 되지 않고, 설정에 들어가서 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고로 밝게 해도 게임화면이 살짝 아쉽게 어두워서 불편했습니다. 맵을 파악 하는데 더 면밀히 관찰해야 했고, 그냥 답답해서 중간에 모니터로 옮겨야 했습니다. 아직까지 디스플레이와 배터리의 한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좀 더 밝았으면 좋겠네요.
전 3D 아바타인 페르소나 (Persona)로 회사미팅을 참석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페르소나 기능은 비전프로의 3D 카메라를 이용해서 만드는 3D 가상 아바타이며, 비전프로로 페이스타임이나 화상채팅앱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 가상 아바타가 뜨게 됩니다. 많은 분들께서 페르소나 기능을 싫어하시지만... 전 사실 완성도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표정도 디테일하게 구현이 가능하고요, 벌써 visionOS의 1.1 베타버전에서는 페르소나의 완성도가 조금 더 올라간 모습을 보아 추후 업데이트로 점점 더 완성도 높은 페르소나가 구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회사의 구글밋이나 줌 같은 화상회의에 사용하려면 SSO로 로그인을 해야 하는데요, 아직 SSO지원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슬랙 같은 앱이 네이티브로 아직 없을뿐더러, 사파리로 로그인을 하려 해도 로그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제 회사는 SSO에 Okta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Okta가 비전프로 버전을 만들지 않는 이상은 로그인이 불가능합니다. 줌은 비전프로 앱도 있고 SSO 로그인 옵션도 보이지만 제가 테스트를 해볼 수는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 회사는 구글밋을 사용하기에 아직은 비전프로 호환이 안됩니다.
물론 맥 화면공유로 모든 작업이 가능은 하나, 구글밋같은 화상회의에 들어갈 땐 비전프로에서 야심 차게 선보인 페르소나로 미팅을 들어가는 것을 기대했으나, 그게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냥 스키고글을 착용한 제 모습을 보게 되어 회사미팅에는 착용이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1세대 제품 치고는 대단한 기기는 맞습니다. 하지만 MR기기 자체가 아직 진화가 덜 되었습니다. 저처럼 업무용으로, 하루 6-8시간 사용하는 용도로는 상당히 부적합한 제품이며, 시력저하 및 팔자주름 노화진행이 너무 걱정되어 반품한다는 총평 남겨드리며 리뷰를 마칩니다.
확실히 신기한 경험인 것은 맞으나, 전 아마 2세대나 3세대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사용해 볼 것 같네요.
일단은 제 애플 스튜디오 디스플레이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