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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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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May 15. 2018

이 닦기 싫어하는 아들

어찌 하오리까

서우의 이가 거의 다 났다.

푹 익히거나 말랑거리는 음식을

잇몸으로 뭉텅뭉텅 씹어 넘기거나 통째로 삼키는 시절은 지났다.

당당하게 물고 뜯고 씹어서 즐긴다.

멸치볶음, 오이 무침을 아주 좋아한다.

물김치 속 네모 깍뚝 무와 하얀 배추도 좋아한다.

꿀꺽꿀꺽 물김치 원샷은 덤.

먹는 것의 감동을 알아가는 나이. (사진&음식 by 서우맘)

입 속에 들러붙는 김도 주위의 도움으로 계속 시도하고 있고

잘근잘근 씹어도 씹히지 않는 질긴 나물과

매운 양념이 된 빨간 김치류는 속도 조절을 해주고 있다.


문제는 이가 막 나기 시작할 때

그럭저럭 손가락으로 닦던 이를

요즘은 거의 닦지 못하고 있다.

입 안에 손이나 칫솔이 들어오는 걸 어찌나 싫어하는지

고개를 휙- 손으로 탁, 이로 앙 물며

이를 닦이려는 온갖 시도를 차단한다.


그래서 서우 앞에 내 칫솔을 가져가 닦는 모습을 보여주면

칫솔을 달라고 하더니 자기가 내 이를 닦아주려고 한다.

아~ 시원하다 하하. 자~ 이제 서우도 닦아볼까?

하면 다시 고개를 휙- 손으로 탁, 이로 앙 문다.


입을 크게 벌릴 때 양쪽 아래 어금니에 갈색 점이 보인 것 같아 마음이 초조하다.

윗쪽은 아예 보지도 못했다.

이러다 이 썪고 나중에 엄청 고생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먹히질 않는다.

나는 계속 시도하고 서우는 계속 거부한다.


어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서우가 한 손으로 내 눈 주위를 움켜쥐려고 손을 확 내밀었다.

겨우 피한 나는 서우야 하지 마, 아빠 아파!

라고 말하고 손을 계속 저지했다.

서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내 눈을 할퀴려 들었다.

나는 서우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눈을 마주보았다.


서우는 눈을 피하지도, 깜빡이지도 않고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러자 서우가 눈으로 하는 말이 너무나 또렷이 들렸다.

“아빠. 아빠도 싫은 거 내가 계속하니까 싫지?

나도 그래! 이 닦는 거 싫어!”


서우는 내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을 정확하게 되돌려줬다.

이를 잘 닦아야 한다는 ‘미명’ 하에

서우의 싫은 감정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당해봐야 비로소 알았으니

만약 서우가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참는 아이였다면

싫은 감정은 흐르지 못하고 고스란히 속에 쌓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되돌아왔을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칫솔을 내려놓았다.

“그래 서우야. 아빠가 미안해.

너 싫은 거 억지로 하는 걸 모르고 계속 강요했네.

서우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아빤 계속 했을 거야.

그래도 아빠는 서우가 나중에 이가 썪으면 엄청 엄청 고생할까봐 걱정되서 그런 것도 있었어.

오늘은 일단 이 안 닦을게.

그리고 아빠가 더 재밌게 이 닦는 법을 고민해볼게.”


서우의 눈빛에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이는 어른의 의도를 정확히 안다는 것이다.

말과 표정을 어떻게 꾸며도

그 속에 담긴 진짜 의도를, 행동의 동기를 읽을 줄 안다.

어쩌면 어른이 꾸민다고 하지만

아이의 순수한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나의 실력이 모자란 것을 강요로 채우면 반드시 반발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큰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이제까지 모르고 강요했을 순간과

앞으로 모르고 강요할 순간이 두렵다.

(그리고 서우의 이가 썪는 것도 두렵다...)


서우가 자기 의견을 정확히 표현하는 아이여서 고마운 한편,

정확하게 표현해도 내가 듣지 못하고

그 과정이 반복될 때

서우의 마음에 새겨질 체념과 무기력이 무섭게 다가온다.


이가 썪는 것을 예방하는 것과

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이 닦는 일처럼 귀찮고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해야 하는 일에 먼저 가 있지 않고

아이의 귀찮고 싫음에 나란히 서서

유심히 귀를 기울이고 다정하게 눈을 마주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이를 닦는 것에 붙는 해석이

강요가 아닌 스스로 하는 것,

싫은 것이 아닌 개운하고 상쾌한 것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우가 엄마랑 아빠랑 나란히 서서 치카치카하는 모습을 그리며 싱긋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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