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조금씩 더워진다.
오늘 아내가 보내준 사진 속 서우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신나게 밥을 먹고 있다.
통통한 팔뚝의 탄력이 사진 너머 전해진다.
문득 서우의 손목에 눈이 간다.
오동통 귀여운 작은 손목,
서우가 태어난 뒤
몇 번이고 동그랗게 손가락을 말아 두께를 재어본
아들의 손목.
내 손목은 무척 가늘다.
여자 중에도 마른 편인 아내와 비교해봐도
큰 차이가 안 난다.
보통 남자들은 손목 관절에서 팔꿈치로 갈수록
같은 굵기를 유지하다가 두꺼워지기 마련인데
내 손목은 오히려 폭이 좁아졌다가 조금 넓어진다.
상대적으로 가느다란 손목에 비해
손바닥은 크고 손가락은 긴 편이어서
손을 까딱거리면 쥬라기 공원 1편에 나온 벨로시랩터가
궁리하듯 바닥을 딱딱 두드리던 발톱이 떠오른다.
가느다란 손목은 어린 내가 갖고 있던 여러 콤플렉스 중 하나였다.
누군가 내 손목을 잡을 때마다 (주로 아빠였던 것 같다)
갖춰야 할 것이 없는 것처럼 여겨져
부끄러움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감정이 올라오곤 했다.
중학생이 된 나는 그 감정이 싫어서
손목을 두껍게 만들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 시절 아빠는 헬스장에 열심히 다니셨다.
집에는 7kg짜리 아령 두 개와
15kg짜리 작은 역기(?)가 있었다.
아빠의 조언으로 7kg짜리 아령을 한 손에 들고
손목을 까딱거리는 운동을 했다.
손바닥 대신 손목을 대고 팔굽혀펴기를 하기도 하고
성룡이 어느 영화에선가 보여준 손목으로 하다 손바닥으로 팔굽혀펴기도 했다.
(이건 너무 힘들어서 금방 포기했지만...)
묵묵히, 꾸준히 운동한 결과 갑바가 좀 나오고 삼두도 붙었다.
그러나 여전히 손목은 가늘었다.
언젠가 되겠지 하며 꾸준한 하루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반에서 일진 노릇을 하는 친구가 다른 애들과 팔씨름을 하며 놀다가
‘반장, 팔씨름 한 번 해보자.’
하는 것이었다.
당시 반장을 하며 일진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던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래~’ 하고 손을 맞잡았다.
시~작!
하고 손을 넘기는데 너무 맥없이 내가 이겨버렸다.
나도 당황하고 걔도 당황하고,
걔랑 놀던 친구와 꼬붕 사이에 있던 애도 당황했다.
“어 뭐야, 반장 팔 힘 ㅈㄴ 세네?”
약간의 침묵 뒤 그 친구가 했던 말이
뜻밖에 발견한 나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성취감과 만족감 사이에서 속으로 흐흐 웃던 나는
스르르 만족감 쪽으로 흘러갔다.
그 날부터였다.
열심히 갯수를 늘리며 노력하던 날은 가고
어제만큼만 하면 만족하는 날이 왔다.
약간의 운동 후 펌핑된 몸에 속지 않고 계속 밀어붙이던 나는 가고
빵빵한 느낌에 울끈불끈 힘을 주어 두꺼워 보이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흐뭇해하는 내가 남았다.
그런 와중에 내게 팔씨름을 진 친구는 교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운동을 했어도 당시의 나는
지금처럼 마르고 공부하는 범생이 이미지가 강했으므로
약간의 기 싸움과 허세와 퍼포먼스로 일진의 위치에 오른 그 친구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을 법 하다.
하루가 다르게 두꺼워지던 그 친구의 가슴과 팔뚝이 놀랍게 느껴질 즈음
“반장, 팔씨름 한 판 하자!”
라며 교탁으로 불렀다.
나는 그 순간 이미 결과에 대해 큰 기대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는 그 친구의 승리.
팔씨름을 시작한 직후
힘을 확 주고 나서 바로 힘의 차이를 알고는
더 버티지 않고 힘을 쫙 뺐다.
“아싸~!”
하며 기뻐하는 그 친구와 달리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 내 속에서는 분명 어떤 형태로든
패배감과 분함이 있었을 텐데
너무나도 절묘하고 재빠르게
‘쟤는 힘이라도 좋아야지. 나는 이 정도 하면 충분해.’
라고 덮어버렸던 것 같다.
그 때부터였다.
나는 상체 운동과 손목을 굵게 하려는 것에 흥미를 잃었고
그 친구는 내게 흥미를 잃었다.
반장인데 힘도 세네?
하던 호의가 학년이 끝나갈수록
무관심으로 변했던 과정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웃음과 온화함을 갖추고 있던 그 친구는
더 키운 근육과 힘을 바탕으로 더 거칠어지고 짜증이 늘었다.
그 모습을 근거로 나는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다는 이유를 만들어냈고
내가 덮었던 패배감과 분함의 상자를 완전히 묻어버렸다.
그 이후 나는 힘을 겨루는 일에 흥미를 잃고
기술적인 일을 추구했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이 즈음이다.
축구를 해보니 크게 힘이 없어도
정확하게, 남보다 먼저 움직이면 잘할 수 있었다.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읽고
그 자리에 먼저 달려가고
예측이 성공해서 다음 행동으로 이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나는 중간에 커팅을 잘했다.
조금 뒤에서 보고 있으면 상대가 어디로 공을 보낼 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공을 뺏은 뒤 어떻게 움직일지가 고민이었다.
뺏으면 누군가 바로 몸을 비집고 들어왔고
힘을 겨루는 몸싸움이 싫었던 나는
최대한 빨리 공을 처리했다.
이렇게 반복하는 날이 지나자
나는 꽤 침착하고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패스의 길이 보였다.
재미가 있었고, 또 성과도 있었다.
군대에서는 내 축구 인생에서 거의 정점에 서서
자유롭게, 행복하게 운동했다.
그러나 축구에서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선수 출신이나 학교 축구부, 체대, 그리고 30대에 접아들고 나서는 20대인 사람들과
아무리 기를 써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중학교 때의 그 일진 친구가 떠올랐다.
그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항상 최선을 다했다.
한발 더 움직이고 한층 더 집중했다.
내게는 축구로 쌓아올린 개인의 성취와 역사가 있었고
아득한 실력 차이를 절감하는 건 나뿐만 아니라 같은 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악착같이 했고
누군가는 적당히 포기하며 했다.
나는 적당히 하는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고
입을 꾹 다물고 다시 뛰어다녔다.
축구하며 내게 손목이 가늘어서 안되겠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게 의지하고 역할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축구를 하며 나는 내가 가진 힘에 대해 새롭게 느끼고 마음껏 누렸다.
그러나 축구를 하지 않을 때의 나는
여전히 굵고 튼튼한 손목에 눈이 간다.
그럴 때면 자동으로 내 손목을 말아쥐고 있는 나를 본다.
팔을 쭉 폈을 때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팔꿈치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단단하고 곧은 선이 부럽다.
이 부러움이 회사에서, 일상에서
내가 가진 다른 힘을 키우려 노력하고 가꾸면 별 것 아닌 게 될 거라는 것을 알겠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손목이 가늘고 약한데도
다른 힘이 있다는 쪽으로 좋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우가 자라며 손목이 가늘어질지 보통일지 두꺼워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요새 입 안을 찔러가며 멸치 볶음을 아구아구 먹는 걸 보면 뼈대가 튼튼해질 것 같긴 하다.
내게는 손목이었던 것이 서우에게는 전혀 다른 것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게 없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러면 그게 사람인가? ㅎㅎ
서우는 자라며 자연스럽게
잘하고 못하고,
강하고 약하고,
옳고 그름의 프레임을 받아들이며 자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스스로를 먼저 단단하게 만들어나갈 갓이다.
나는 서우가 단단해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즐겁고, 솔직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이것는 내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바람이기도 하고
아직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아들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이 기대가 서우를 억누르지 않도록
내 손목을 볼 때마다, 서우의 손목을 쥐어볼 때마다
경계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마침 여름이 오는 길목이고
손목과 거의 매일 만날 것이다.
어느 순간 나의 손목이
기대에서 관심으로,
정체에서 발전으로,
틀에서 자유로 훨훨 날아가기를.
땀 죽죽 흘리던 어느 날
땡볕 아래 푸르게, 노랗게 익어간
수박, 참외와 시원하게 만나는 것처럼
나의 손목, 서우의 손목과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