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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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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May 09. 2018

잠든 아들과 아내

야근이다.

집에 들어서면 아들이 배시시 웃으며 안기는 일은 어렵게 됐다.

이제 13kg이 넘는 아들을 안다 허리를 삐끗한 아내도 일찍 잠에 들었다.

세탁기에서 돌아가는 빨래의 건조를 부탁한다는 장모님의 카톡이 적적하다.


집에 들어서서 옷을 갈아입고 잠시 앉아있는다.

엉덩이를 끌며 거실을 정리하다

몸을 일으켜 세탁실을 열어본다.

탈수가 9분 남은 걸 확인하고 씻을 준비를 한다.

안방에 들어서니 아들은 여느 때처럼 이리 저리 굴러다니고 있고

아내는 가만히 자고 있다.


어둠 속에서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는데

문득 두 사람이 겪었을 환하게 빛나는 낮 시간이 그려져

불 꺼진 방이 무대인 것처럼

독백을 시작하려는 배우처럼

마음 속 내가 서 있는 자리에 하이라이트 조명이 빛나는 듯 했다.


그 자리에 서서 손을 뻗어

손이 닿지 않을 거리에 있는

두 사람의 볼을 쓸어보았다.

손바닥에 스르르 스치는 안방의 잠긴 공기,

두 사람의 날숨이 섞여 있는 봄나물 비슷한 향기가 좋았다.


거실에 나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돌린다.

씻고 나와 아내가 얼마 전 다녀온 놀이 포럼 책자에 있는

편해문 씨의 기적의 놀이터 글을 읽는다.

주어진 조형물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 만들고 부수는 놀이터,

아주 안전한 놀이터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인상적이다.

일독을 권한 아내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하고 씻으러 들어간다.


씻고 나와 잠시 책을 더 읽다가 안방에 들어선다.

서우가 움찔하자 망치로 내리친 듯 그 자리에 멈춰섰다.

다시 잠든 서우의 숨소리가 못 박힌 나를 꺼내준다.

자리에 누워 이내 잠든다.


간밤에 서우가

“아빠...”

하며 구슬프게 잠꼬대하는 소리가

가슴으로 들어와 잠이 번쩍 깼다가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번쩍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자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서우가 불렀던 아빠 소리가 여전히 맴돈다.

찬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감으며 회사에 가서 할 일을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의 눈 뜬 얼굴은 그립기만 하다.


이제 집이다.

오늘도 두 사람,

적어도 서우는 자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고요한 밤이, 하루가 또 흘러간다.


아내는 요가 갔다 막 왔고
아들은 처가댁에서 자고 있다.
반갑고 아쉬운 밤이다.
환하게 빛나는 그들의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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