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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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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May 17. 2018

무지개가 뜨는 마음

회의를 들어가려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오.

카카오톡 영상통화다.

영상통화가 온다는 건 서우가 울고 있고 잘 달래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빈 회의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는다.

화면이 뜨자 얼굴이 상기된 서우가 보인다.

어?

하며 잠시 화면을 보는 듯하더니

이불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운다.


아내의 말로는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우야, 아빠야.

우루루루루루~

방정을 떠니 다시 쳐다본다.

잠깐 눈을 마주치던 아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본다.


서우야, 더워서 깼어?

아니면 무서운 꿈을 꿨어?

아니면 배고파? 배가 아파?


말을 거는 사이 서우는 다시 울기 시작하고

당황한 나를 두고 서우가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엄마가 스마트폰 방향을 조절해서 다시 시야에 들어온 아들.


문득 자주 하던 놀이가 생각나서 화면에서 얼굴을 스르륵 뺐다.

그리고 다시 화면으로 스르륵 얼굴을 보이자 서우가 웃기 시작한다.

집에서 자주 하는 숨고 쫓기 놀이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서우가 아주 사랑스럽게

“아~빠, 아-빠, 아-빠”

한다.

“그~래, 서~우, 서-우”

하며 답하는 마음에 꽃이 핀다.


어느 정도 기분이 풀어진 듯 보였고,

예정된 회의 준비를 위해 서우에게 인사했다.

“서우야, 아빠 이따 집에 가서 다시 보자.

그때까지 엄마랑 잘 놀고 잘 쉬고 있어.

빠이~빠이~”

그러자 이잉 거리며 화면에 손을 뻗는 아들.

아이고...


혀를 내밀고 눈을 크게 뜨고 콧구멍을 벌름거리자 다시금 배시시 웃는 아들에게 인사한다.

“서우야, 아빠 저녁에 가서 신나게 놀자. 알았지?”

하는데 이번에는 화면을 잡지는 않고 가만히 있는다.

직접 곁에 있지 못하는 아쉬움과

전화를 끊고 다시 울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걱정이 함께 올라왔다.


회의를 들어가서도 서우의 울고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서우는 자다가 왜 울었을까?

우는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을까?

화면 속 아빠와 현실의 아빠를 서우는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 걸까?


궁리하다 보니 나도 모르고, 나중에 서우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도 기억하지 못할 질문이구나 싶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서우를 보는 내 마음속에 어떤 풍경이 펼쳐졌는지,

화면 속 서우 대신 현실의 서우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기록하는 것이구나 싶다.


우는 서우를 보는데 속에서 먹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다가

나의 재롱으로 방긋 웃는 서우를 보니 해가 다시 나고 선명한 무지개가 마음에 떴다.

서우의 세계에서는 더 거센 폭풍우가 불다가 한없이 눈부시게 쨍한 해가 나지 않았을까,

온 세상을 뒤덮을 만큼 크고 영롱한 무지개가 떠 있지 않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망설임 없이 칼퇴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엄마, 외할아버지와 나를 기다린 아들은 

내가 버스에서 내려 자기 앞에 서자 흘긋 보더니 곧바로 버스에 정신이 팔려 오~! 오! 하더라.

이 자식... 내 자식...

부슬비는 거의 그쳤는데 내 마음엔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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