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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30. 2015

아빠가 입원한 주말

2014년 4월 22일의 마음결

지난주 금요일 아빠가 코골이 수술을 하셨습니다. 통 잠을 깊게 못 주무셔서 낮에도 꾸벅꾸벅 졸고, 주말에는 잠이 계속 쏟아지는 등 일상에 불편한 점이 많아 적지 않은 나이에도 수술하기로 하셨어요. 코골이 수술은 코 부위를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편도선과 목젖 주위 부분을 절개하는 수술이더라고요. 큰 수술은 아니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아빠가 고혈압도 있고, 요즘 살도 많이 쪄서 걱정이 되었어요.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고 어제 퇴원하셨습니다. 저는 주말에 병원에 갔다 왔어요.


병원에서 본 아빠는 이틀간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하였습니다. 까만 수염보다 흰 수염이 더 많이 나신 걸 보고 있는데 침대 위쪽 환자 카드에 적힌 63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빠는 한 갑자를 다 돌고도 3년이나 지났었네요.


엄마와 함께 갔는데 셋이 대화하며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한 가지 주제로 서로 돌아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가도 어느 새 엄마는 자기 이야기를 나에게만 합니다. 요즘 연주하는 곡은 어떤 노래고, 공연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말해주고 등등 아빠와도 충분히 나눌만한 이야기인데 시선은 나에게로만 향하는 걸 봅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 말을 받아 아빠에게 돌리고 아빠는  한두 마디 하시는데 엄마는 그 말을 냉큼 자르거나 뺏어와서 다시 이야기를 하네요.


이렇게  보인다,라고 엄마에게 말하려는 걸 참고 묵묵히 들었습니다. 추임새도 넣고, 아빠에게 말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고요. 그러다보니 나름 세 사람 사이에 대화가 꾸준히 흐릅니다. 그 흐름 속에서 엄마의 아빠에 대한 감정과 아빠의 무심한 듯, 신경쓰는 듯 알듯 모를듯한 표정이 유독 도드라졌어요. 


화제를 잠시 돌려 엄마가 해준 이야기의 진위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인즉슨, 아빠가 엄마에게 6백만 원의 현금을 돌려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명목은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살 초기자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동안 월급을 다 갖다바친 걸 감안해서 400만 원을 주고, 병원비 200만 원도 같이 줘라. 나머지 잔액은 내가 알아서  마련하겠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엄마가 말을 전하며 웃기도 하고 그런 돈을 갑자기 어떻게 주냐는 등 푸념을 하기도 합니다. 아빠에게 물어보니

"에이 꿈이지 뭐. ㅎㅎ"

라고 하는데 가슴이 짜르르 해져서 침대 시트만 바라보았습니다. 제대로 된 걸 사려면 3천만 원이라나요.


그러다 엄마가 공연하러 먼저 나가셨어요. 그렇게 나가는 엄마를 보며 

"어쩌면 저렇게 잘 맞을까, 참 신기하네."

"색소폰?"

"응. 잘 하기도 하고 참 ㅎ"

아빠도 분명 뭔가 있으실 거야라는 말은 너무 많이 해서 오늘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토요일은 시간이 잘 갔어요. 그런데 일요일 아침에 자는 중 엄마가 설사병이 나서 병원에 못 가겠다고, 집에서 쉬셔야겠다고 하네요. 그럼 그러시라고, 혼자 가겠다고 했습니다. 다시 잠들었는데 엄마가 방문을 열더니 학원에 연습하러 간다고 하는 거예요. 순간 설사병 나서 병원은 못 가는데 학원은  간다고?라고 쏘아붙이려다 고개를 베개에 묻으며 가까스로 참았습니다. 엄마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때에 할 수 있으니까, 설사가 나더라도. 그렇지만, 하지만..!


깜빡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엄마가 갈비탕을 끓여놓고 나갔습니다. 어제 점심으로 갈비탕을 먹으며 '엄마가 해준 갈비탕이 제일 낫다'라는 말을 기억했나 봅니다. 먹을 것 앞에서 한없이 단순해진 나는 식당에서 볼 수 없는 큼직한 덩어리를 삼키며 베개에 묻었던 화도 함께 내려보냈습니다.


늦잠을 자고 갈비탕을 마음껏 먹느라 병원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아빠는 점심을 드시고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있을 때와 비교해 확실하게 대화가 줄더라고요. 폰을 만지다가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는 말을 하고 짧게 답하고. 

"엄마는 학원 갔어?"

"응 연습하러 가신데"

뜬금없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고는 설사병 이야기를 끄집어낼랑 말랑하다 겨우 삼켰습니다. 


다시 또 폰을 만지고 책을 읽고 누워서 잤다가 일어나 TV를 보다가 느리게 시간이 가는 중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학원 갔다가 이제 집에 왔어. 병원이야?"

"응 병원에 있어요."

"아빠는 뭐하셔?"

"지금 주무셔"

"그래. 그럼 아빠 저녁 드시는 것까지 보고 올 거야?"

"응. 아니. 저녁 드시는 거 보고 바로 검암으로 갈 거야."

"여기로 안 오고 바로 간다고?"

"응 짐도 다 가져왔어."

"그래 알겠어. 잘 가"


다른 무엇을 먹을 기회를 놓쳤나 아차 싶은 가운데 집에 들렀다 갔으면 어땠을까, 몇 주만에 간 건데 밥이라도 한 끼 더 먹고 가면 어땠을까, 병원에서 검암으로 가는 길에 순댓국 한 그릇 밖에서 먹으며, 덜 익어서 슬몃 비린내가 나는 순댓국(특)을 입속에 우겨넣으며, 집에 조만간 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몇 주 뒤.


사건도 없고 특별할 감정도 없던 주말이 알게 모르게 마음에 남긴 파장이 길고 또 저릿해서 가라앉은 마음으로 돌아와 별  말없이 이불을 펴고 잤습니다. 법인과 집 구입 이야기보다 중요한 무엇인가  가슴속에 남아서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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