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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30. 2015

2013년 9월 5일의 마음결

공항철도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니가을공기가 와락 안긴다. 숨 쉴 틈도 없이 콧구멍으로 들이닥치는 공기의 기세가 낯설지 않다. 코를 벌름거리다보니 발가락이 움찔거린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운동회의 감각이다.


운동회를 하는 날에는 유난히 피부의 감각이 예민했다. 초가을 아침의 선선한 바람이 팔뚝 살갗을 조여 닭살이 돋고 따가운 햇빛을 받는 얼굴은 할머니네 뒤켠에 열린 대추처럼 붉게 익어갔다. 흰 색 반팔티와 흰 색 반바지에 흰 운동화를 받쳐입은 나와 친구들은 깃털 달린 머리띠를 하거나 인디언 복장을 하고 확성기에서 나와 메아리로 돌아오는 동요 리듬에 맞춰 제멋대로 뻣뻣하게 팔다리를 놀리거나 뿅뿅 뛰며 군무를 추었다. 네모 각지게 줄지어 선 대열 위아래, 전후좌우로 뻗어나온 손과 발과 머리가 투명하게 쨍한 가을햇살을 받아 잘 익은 옥수수알같은 웃음을 쏟아냈다. 가을 바람은 시원한 손으로 우리들의 이마를 쓸어넘겼고 무릎까지 한껏 치켜올린 양말은 스르르 내려갔다가는 다시 팽팽해졌다. 머리 위엔 형형색색의 오륜기가 하늘을 가르고 단상 위의 교장선생님과 스탠드의 선생님들은 한데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주위 풍경이 단순하고 선명한 반면, 운동회에 참가하는 내 마음은 다소 복잡하고 예민했다. 곧잘 뛰는 지금과 달리 어렸을 때 나는 마르고 허약한 체질이었다. 얼음땡이나 다망구, 자전거 레이스 등을 즐기긴 했지만 달리기나 윗몸일으키기, 닭싸움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별로 스탠드에 줄지어 앉을 때 나는 주로 뒤쪽에 앉아 스탠드 앞에 선 담임선생님이 계주 선수들을 불러내는 것과 불려나온 아이들이 몸을 풀고 머리띠를 두르고 계주막대를 손에 쥐는 것을 보았다. 출발라인으로 이동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당당했고 한 손을 옆구리에 두고 고개를 흔들거나 발목을 푸는 긴장감이 내게도 훅 끼쳐왔다. 땅! 출발신호가 울리고 주위를 압도하는 속도가 튀어나올 때 약동하는 환호성이 스탠드를 가득 채운 뒤 운동장으로 쏘아나갔다. 막대가 건내지는 순간의 부드러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일 때 관람하는 각자의 속내 역시 함께 뒤섞이며 학교는 작은 용광로가 되었다. 


들끓어오른 기운을 숨으로 토해내며 들어서는 계주 주자들에게는 승패와 상관없는 박수와 격려가 쏟아지는 한편 비난섞인 투정과 불만이 알게 모르게 가시처럼 박혔다. 나는 가시를 돋우는 편이었다. 이길 땐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받았을 칭찬과 박수와 우러름을 갈망했고 질 땐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바꿀 수 있었던 점수와 상품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이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누가 보아도, 스탠드 뒷자리의 응원석이었고 내 손은 계주 막대 대신 가느다란 무릎을 힘껏 움켜쥐며 약간의 땀을 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음 뒤에도 갈망과 상상은 사라지지 않고 백미터 1, 2, 3등에게 주어진 공책 몇 권, 크레파스 세트를 볼 때마다 숯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몇 년인가 뒤에 나는 달리기가 점점 빨라졌고 1등까진 아니어도 팔뚝에 도장을 받을 정도는 되었다. 체력장 급수는 조금씩 올랐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반 평균보다 높은 정도가 됐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시력을 제외하고 1급을 받았으며 대학교와 군대 이후로 뛴 축구팀 내에서 체력과 실력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나 나보다 월등한 운동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났고 그 때마다 달구어지는 마음 속 숯은 때로는 허탈한 웃음으로, 때로는 거친 동작으로 피어올랐다. 세상은 넓고 운동능력이건 머리 쓰는 일이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은 백사장 모래알처럼 많다는 것을 아는 요즘에도 기사나 블로그, 책에서 만나는 세상 속 계주 대표들을 볼 때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뭐라고 해야겠다 싶은 조급증이 솟아오른다.

그럴 때 내가 선택하는 건 작고 익숙한 모임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내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인정받고 무언가 있어보일 수 있는 규모와 수준을 찾는다. 그곳에서 나는 성취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이것이 내가 자존감을 키우고 지켜온 방식이다. 그렇지만 괴롭게도 가슴 속엔 여전히 숯이 있다. 이렇게 운동회를 떠올리는 차가운 바람에 빨갛게 달아오르는 숯이 있다. 다만 바람이 숯을 달구는 것과 동시에 자의식과 습관은 재를 뿌려 숯을 식힌다. 그렇게 조금씩 굳고, 단단해져가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이 숯을 달구고 식히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커지는 그 무엇이 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차가운 바람을 맞고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여전히 움찔거리는 발가락과 희고 뜨거운 운동회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더 중요하다.

가을과 매년 오늘처럼 만날 때마다 나는 한겹 더 두꺼워진 이불 속에서 계주막대를 들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꿈을 꿀 것이다. 어쩌면 이 꿈이, 운동회의 감각이 잊혀지지 않는 한 숯은 언제고 피어오를 것이다. 어쩌면 재 한줌 날려줄 세찬 바람이 가슴 속에서 불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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