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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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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Dec 04. 2018

육아휴직이 끝났다

세 달 간의 육아휴직이 끝났다.

찐하다면 찐하고, 아쉽다면 아쉬운 시간이었다.

서우는 함께 지내면 지낼수록 참 똑똑하고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부모인 나와 아내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크겠지만

타고난 고유의 품성이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온다.


100일 남짓한 시간, 나는 서우와 더 친해졌을까. 아니면 최소한 익숙해지기라도 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궁금한 것이 많고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 투성인 아들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틀이 강한 내게 점점 버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나는

아마도 서우처럼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틀에 얽매이지 않은 화끈한 행동력을 가졌을지 모른다.

나는 무대에서 열과 성을 다해 노래를 부르거나 연기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볼 때면 눈물이 난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많지만, 나는 어지간한 일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게 다르다고 할까.


나의 테두리가 생기게 된 기원을 추적해보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 부모님께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여쭤보면 돌아오는 것은 일반적인 감상이거나 

언뜻 듣기에도 당신들의 흐릿한 기억과 희미한 감각으로 편집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빈약한 단서를 갖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잠깐 흥미로울 뿐이었다.


과거의 불분명한 진실을 찾아보는 것보다

지금의 명확한 사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내게 더 중요하고 실질적이라고 배워가고 있다.

내가 가진 틀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조건에서 더 고집스러워지는지, 

어떤 모양으로 서우에게 강요하고 화를 내고 있는지 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틀의 모습을 알아가는 게 감정적으로 힘들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아들에게 나도 모르게 화가 버럭 나거나, 알고서 화를 낸다. 

처음에는 내가 화를 내면 서러워하며 울먹이던 서우가

요즘에는 눈에 화를 담아 쏘아 보낸다. 

거울처럼 내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사실 서우는 조금만 누릴 수 있게 놔두면 스스로 만족하고 다른 거리를 찾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이 정도면 충분히 놀았다, 이만큼 어질렀으면 됐다, 밥 먹을 때 음식을 자꾸 흘리는 것은 놀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씻으러 갈 시간이 됐으니 하던 것을 멈추고 지금 가야 한다 등등..

말이 늘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자 이제 유예기간이 끝났다고 선언하듯

세 살 아이에게 어른의 기준을 대어놓고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으니 서우나 나나 힘들 수밖에 없다.


육아 휴직 기간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내가 아이의 누리는 행동을 품어줄 수 있는 여유가 적은 것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그게 내 안의 어린아이를 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내와 가족, 주변 사람들의 누리는 행동을 봐주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아 가는 것은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아침에 나를 부르며 깨우는 아들과 밤에 나를 부르며 잠드는 아들 사이에 

폭신폭신한 카스텔라가 놓인 것처럼 따뜻하고 위로받는 날이 무척 많았다.

소중하고 또 소중한 이 시간을 화를 내고 싸우는 데 쓰기보다 안아주고 웃는 데 더 많이 쓰고 싶었다.

3개월 해보니, 그것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부터 새 직장에 출근한다.

아마도 당분간은 육아휴직처럼 아들과 아내와 온전히 붙어 지내는 시간이 오기는 어렵지 싶다.

그간 나는 무엇을 했고, 어떤 것을 배웠는지 정리하고 싶었는데 게으른 품성은 어쩔 수가 없다.

그저 부끄럽고 모자란 내 현재 모습을 기록하고 희망찬 내일을 한 번 더 그려볼 뿐이다.


육아휴직 3개월 간 함께 지지고 볶으며 시고 짜고 달고 맵고 쓴 맛을 함께 만들어 간 아내와 아들에게 무척 고맙다.

앞으로 더 멋진 삶을 함께 요리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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