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우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미 Mar 12. 2019

코 자니까

어제는 일요일, 공부하러 가는 날이었다.

서우와 함께 여느 때처럼 안쪽에서 놀고 있었다.

물에 타 먹는 천마차를 발견하고는 먹고 싶다고 한다.

물에 타서 먹는 걸 싫어해서 컵에 따라주고 숟가락을 줬다.

먹다가 흘릴까 봐 쟁반을 찾아서 컵을 받쳐줬다.

마침 쟁반에는 클림트의 <키스>가 입혀져 있었다.

나름 예술적인 쟁반을 놓고 먹었으면 해서 골랐는데

쟁반을 골똘히 보던 서우가 말한다.

"이거 말고 다른 쟁반 줘."

"다른 거? 그래 알았어."

색감이 마음에 안 드나, 그림이 낯설어 그런가 싶었다.

바꾸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 초록색 물결무늬가 있는 쟁반으로 바꾸는데

"코 자니까. 깰까 봐."

라고 한다.

천마차를 먹다가 가루가 쟁반에 떨어지면

눈을 감고 코- 자고 있는 사람이 깨니까 다른 쟁반을 먹어야 한단다.


기쁘고 놀라운 가운데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무엇이 울컥하는데

내 표정이 뭔가 평소에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구나 느껴졌다.

서우가 묘하게 쳐다보는 거 같기도 했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그나마 엇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감동.


움직인 것이 '감', 느낌뿐이었을까 싶긴 하지만

내 속에 있던 무엇인가 움직였다.

장모님께 말씀드릴 때 보여주신 표정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코 자니까.

가루가 떨어지면 잠이 깨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800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