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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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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Apr 09. 2019

응가할 거야

"응가할 거야"

짧은 이 말 한마디에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듯 반응한다.

"그래! 가자!!"

서우의 대변 의사 표시에 조건반사 반응이 몸에 새겨졌다.

밥을 먹다가도, 누워 잠을 자다가도, 신나게 뛰며 놀다가도

응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정지되고 모든 신경과 세포들은 오직 아들의 응가를 위한 태세로 전환한다.


서우에게도 응가의 무게는 쉬의 무게보다 훨씬 무겁다.

'쉬할 거야!'라고 외치면 '그럼 쉬하러 가자'라거나 '펭귄한테 쉬 주자' (펭귄 모양의 입식 소변기)라고 하면

으레 '아니~ 이따가 할 거야'라고 놀리듯 외치곤 한다.

정말 놀려고 그럴 때도 있고, 쉬가 마렵긴 한데 참을만해서 그럴 때도 있다.

그러나 응가할 거야라고 할 때의 눈빛은 사뭇 진지하다.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하는 얼굴에는 여유가 없고 심지어 다급할 때도 있다. 

꾸욱- 손에 느껴지는 아들의 악력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마침내 변기에 앉으면 이제 응가의 시간이다.

일단 서우를 변기에 앉히고 난 뒤 바지와 양말 등을 벗긴다.

나도 욕실 의자를 당겨서 서우와 마주 앉는다.

빨개둥이가 된 아랫도리가 토실토실하고 허벅지는 근육도 제법 잡혔다.

서우는 내 손을 끌어다 자기 허벅지 위에 올려놓게 한다.

내 손은 긴 편이라 아들의 허벅지를 거의 다 덮는다. 

잠시 손을 빼서 다른 일을 할라치면 냉큼 다시 손을 가져와 허벅지 위에 놓게 한다.


그러다 갑자기 내 손을 확 잡는다.

숨을 참고 얼굴이 부풀어 오른다 싶더니 빨갛게 달아오른다.

끄으으으응

힘을 주는 시간이 길어지면 살짝 부들부들 떨기도 한다.

그러다 서우 다리 사이, 변기 속으로 쑤욱- 풍덩! 떨어지는 거대하고 길쭉한 응가를 본다.

내 경우에는 1년에 몇 번 볼까 말까 한 

길쭉하고 두껍고 매끄러운 밝은 황토색의 바나나 응가.

3-4초 남짓한 시간,

서우 하루 응가량의 50~70%가 이때 다 배설된다.

그것도 한 덩어리로!


큰 일을 치르고 나면 서우는 꼭 물어본다.

"냄새 나?"

"응 조금 나. 응가니까."

"(얼굴을 찡그리며) 이-. 선풍기(환풍기) 틀어줘."

만약

"아니 잘 모르겠어. 오늘은 많이 안 나."

라고 하면 재차 물어본다.

"냄새 나?"

두세 번 더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나는 대체로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라 열에 예닐곱 번은 환풍기를 튼다.


그러고 나면 이제 마주 앉아 놀기 시작한다.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크게 뜨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아한다.

거꾸로 해도 그렇다.

서우가 손뼉을 칠 때 그 궤적 안에서 나도 손뼉을 치면 타탕탕 하면서 엇박이 되는데

리듬감이 생긴다 싶을 즈음 내가 수직으로 샥- 손뼉 치는 걸 피하고 자기가 헛손질하는 걸 재밌어한다.

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면 손으로 샥 치려고 하는데 

그걸 피하며 박치기처럼 머리를 배로 들이밀면 까르르 자지러지며 웃는다.


한 놀이가 끝나고 다른 놀이가 시작되는 사이,

가만히 서로 눈을 마주 보는 고요한 순간이 있다.

가만-히.

바위에서 물방울이 서서히 맺히고 부풀어 오르다 마침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똑- 떨어지는 그 사이,

슬금슬금 입가와 눈매에 번지는 웃음과 

살금살금 놀 준비를 하는 손과 얼굴을 살피는 눈빛을

서로에게 주고받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지나면 나는 참을 수가 없어져

아들의 얼굴을 껴안고 이마를 비비거나 뺨을 어루만지곤 한다.

아들은 곧바로 내 얼굴을 밀치며 장난을 시작하지만

나는 이 순간이 잊히지 않고 소중해서

아들과 마주 앉는 응가의 시간이 참 반갑다.


물론 변기에 오래 앉아있는 게 항문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서우에게도 여러 번 이야기해주었지만

자기도 나름대로 응가에 대한 원칙(?)이 있어서

뱃속에 잔여감이 있는 걸 싫어해서 있는 똥은 다 빼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응가의 양이 대단하다.

매번 감탄하게 된다.


엉덩이를 씻고 변기 물을 내릴 때 함께 응가의 상태를 살핀다.

오늘은 토마토가 나왔네, 저건 당근인 것 같아 등등.

자기가 먹은 것이 나온 것을 관찰하고 직접 물을 내린 서우는

화장실을 나서서 당당히 이야기한다.

"서우 응가 잘했어요."


함께 마주 앉아 응가하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하루에 한 번 있는 이 시간마저 평일에는 누리지 못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내일이 그 매일이 아니게 되는 때가 올 것이고

일상이 우리의 것이 아닌 서우의 것이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뻗치면 

하루, 10분, 10초, 1초의 무게와 깊이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삶에 감사하는 마음은 딱 그만큼 일어나는 듯싶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서우의 응가에 감사한다.

내겐 너무 향기로운 아들의 응가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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