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를 본 아들이 말했다
서우와 집 근처 산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여러 단지에 있는 다양한 놀이터를 들러서 각종 놀이 기구들을 섭렵하던 중이었다.
초록색 미끄럼틀을 타던 서우가 갑자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윙~
전기톱 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헬맷과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초록색 미끄럼틀을 독차지하지 못하고 다른 형과 누나들이 노는 것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서우 꺼야.”
를 여러 번 외치던 서우에게 다른 관심거리가 생겼다.
왜 놀이터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써야 하는지 아직 납득하지 못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에게 속 시원한 답을 해주지 못하는 (다 같이 쓰려고 만든 거야, 나눠서 함께 놀아야지, 서우가 놀 때는 서우 꺼고 다른 사람이 놀 땐 서우 꺼야.) 아빠는 합심하여 전기톱을 찾아 나섰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줄 알았는데 꽤 먼 곳에 있었다. 처음에는 소리만 들리더니 어디선가 나뭇가지들이 뭉텅뭉텅 쓰러지는 게 보였다. 이윽고 한결 가벼워진 나무 아래에서 붉은 전기톱을 휘두르는 사람이 보였다.
“서우야 저기야 저기. 윙~ 하면서 나뭇가지 떨어지는 거 보여?”
전기톱이 나뭇가지에 살짝 닿자 후드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 마!”
서우가 갑자기 외쳤다.
하지 마? 나뭇가지 자르지 말라고?
“하지 마!”
서우는 다시 말하고 또다시 말했다.
“서우는 나뭇가지 자르는 게 싫구나. 사실 사람들이 좋으라고 자르는 거야. 길쭉하게 가지가 나오면 사람들이 지나가기 불편하거나 가지에서 뭔가 떨어지면 맞을 수도 있거든. 보기에 깔끔한 걸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고.”
곰곰이 듣던 서우가 건너편 인도에 길게 늘어진 가지들을 보더니
“저것도 잘라?”
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를 수도 있어.”
“하지 마! 자르지 마!”
나는 괜히 다급해져서 맞는 말인지도 모르고 말을 덧붙였다.
“서우야. 나무는 맘마를 잘 먹으려면 뿌리가 깊고 튼튼하게 자라야 해. 그런데 저 나무들은 뿌리가 자랄 땅이 별로 없어. 그래서 가지가 많으면 나무가 맘마를 배부르게 먹기 어려울 수 있어. 저렇게 가지를 잘라주몀 맘마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기도 해.”
“하지 마! 가서 하지 마!”
가서 하지 말라고 하란다. 아들에게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나무가 잘리는 게 싫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선택을 했다.
“서우야. 나무 자르는 거 보기 싫으면 우리 다른 데로 갈까?”
아빠는 사실 나무 자르는 거 하지 말라고 할 자신은 없어. 내 선택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거란다. 가지치기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자전거 위에서 서우는 몇 번인가 더 ‘하지 마!’를 외치며 뒤를 돌아봤다. 나는 차마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우는 이내 다른 놀이로 옮겨갔지만, 나는 새벽 2시까지도 아들의 외침이 귀에 울려 결국 글을 남기게 되었다. 앞으로 내 안에 답이 없는 아들의 물음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답이 아닌 물음으로, 혹은 답이 없음으로 답해야 할까? 아빠는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조바심, 두려움이 앞선다. 이것의 정체를 보아나가는 것이 첫걸음일까 그저 짐작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