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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30. 2015

안녕. 내 방, 우리 집

2013년 5월 18일 첫 번째 출가

1.

내일이면 26년을 살던 내 방과 우리 집을 떠난다. 대학교 때 자취놀이를 한답시고 나온 1년을 제외하면 첫 가출 혹은 출가인 셈이다. 그러고보니 26년이란 숫자가 무색하다. 세상에 나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부모님의 청춘과 중년이 이룩해놓은 삶의 터전에서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다. 내 방과 우리 집에 자리잡은 모든 것들이

부모님의 지지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그 지지와 관심과 사랑은 아들인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기도 하겠으나 당신들이 바라는 가정의 모습 혹은 당신들이 그리는 집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모습들에는 분명 아들이 괜찮은 직장에 다니며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 당신들과 이런 저런 문제와 이야기거리를 나누고 풀어가는 것 역시 포함되어 있다. 평범하지만 그래서 다른 어느 것보다 강렬하게 바라는 모습이기에 이제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그림을 들고 나오는 아들이 섭섭하고 또 아쉽기도 하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에 걸친 이야기를 크게 화내지 않고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으며 결국 아들의 인생은 아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니 인생인데 어쩌겠냐 라며 하시는 말씀과 달리 이것도 챙겨야지, 저렇게 하면 좋을텐데 챙기는 마음씀씀이에 새삼스레 부모님의 큰 마음을 우러러본다.


2.

짐을 정리하며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을 두고 갈 것인가이다. 무엇을 갖고 갈 것인지의 문제가 실용적인 생활의 문제라면 무엇을 두고 갈 것인지의 문제는 이제까지의 나는 누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문제로 다가온다. 편지가 바로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받아온 모든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 모든 편지는 내가 살아온 순간을 집약해서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며,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쓰인 시점의 나를 보는 것이다. 서로 이어지지 않고 떨어져있는 섬과 같은 편지가 있는가 하면 꾸준히 주고받아 그와 나 사이에 생긴 관계의 길이 보이는 편지가 있다. 결국 무심결에 한 번 열어본 상자에서 지난 20여년을 다시 살아보았다. 그래보니 한낮에 말린 이불처럼 뽀송뽀송하게 정리되는 감정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응달에 웅크린 민들레처럼 작고 조용하게 남아있는 감정이 있다. 과감하게 인연의 끈을 잘라버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제 소화가 다 되어 인생의 거름이 되어준 추억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되새김질하며 쓰고 신 맛이 올라오는 기억도 있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는 모습이 큰 줄기는 전혀 변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또 크게 달라져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게 살았네 찌질하기도 했지만 싶어 씨익 웃는다. 일부는 모두 버리고 일부는 집에 두고 떠나기로 한다. 짐정리를 하니 삶정리가 된다. 이왕이면 가볍게,

새로운 생활에 짐이 되지 않게 되도록 다 두고 가기로 한다. 편지도, 책도, 온갖 삶의 흔적들도.


3.

삶에는 꼬리가 있다.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 나에게 딱 맞는 길이를 찾아가게 되는구나 싶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지만 삶의 꼬리도 길고 짧은 건 살아봐야 아는 듯 하다. 어느 정도 꼬리를 잘라냈다 싶은데 나가보면 또 모를 일이다. 너무 뭉텅 잘라버린건지, 너무 질질 끌고 다니는건지. 중요한 건 삶의 균형을 잡을 만큼은 꼬리가 길어야 한다는 것, 꼬리가 몸통을 흔들지 않게 과거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


4.

내 방, 우리 집은 이제 제사나 깜박하고 놓고 간 물건을 찾으러 오거나 가족들 생일이나 그냥 집이 그립거나 우연히 부천 근처에서 늦게까지 있을 때나 한 번 남은 예비군 훈련 때나 그러니까 이제껏 승화네 집, 동진이 형 집, 우동사 등에 가서 하룻밤 묵었던 빈도만큼만 드나들 것이다. 그게 내 일상, 그리고 부모님의 일상에 얼마나 혹은 어떻게 차고 비워질 지 짐작조차 못하겠으나 텅 빈 옷장, 늦은 밤 잠에서 깨어 들여다 본 방에 가득한 정적, 아침 6시 즈음 잘 다녀와라 소리가 입 밖에 나와도 갈 곳 없어 헤매이는 쓸쓸함, 다녀왔습니다 소리 하나, 밥상 수저 하나 줄어든 저녁, 손빨래하고 다림질을 기다리며 욕실에 걸려있던 주름진 셔츠가 없어 일자릴 잃은 옷걸이, 정말 소소한, 일일이 다 셀 수 없는 일상의 모습은 그려볼 수 있다. 그려보는 마음이 사뭇 저릿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일요일 오후 내리쬐던 햇빛이 그립고 창 밖에 보이는 황홀한 사계절이 눈에 선하고 꽃향기 그윽한 아파트 단지를 걷는 귀가길이 마음에 가득 찬다. 아마도 이 모든 풍경과 모습들은 빠르게,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새로운 풍경과 모습에 자리를 내어주겠지만 따스한, 푸근한, 좋은 냄새가 그리워질 때면 언제고 두 팔 벌려 꼬옥 안아주는 엄마 품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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