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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30. 2015

출가개미

2015년 4월 8일 두 번째 출가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 듣고 

몇 해쯤 만나지 않아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저는 지금 앞으로 2년간 살게 될 집, 거실의 소파에 게으르게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짐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화장실에는 칫솔도 놓지 못했고 씻고 나와서 발을 탁탁 두드릴 깔개도 없습니다. (아, 명주가 선물로 준 깔개가 생각났다. 이따 깔아야지) 당연하게 놓여 있던 작고 사소한 물건들이 내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실감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지냈던, 작고 사소한 우동사의 일상이 들어앉은  마음속 어딘가를

간헐적으로 울컥 올라오는 '지금을 사는 감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동사에 들어오기 위해 집을 나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울었습니다. 고깃집에서 아빠도 함께 외식하는 자리였습니다. 고기를 구우며 독립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엄마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아들자식 키워봐야 나갈 궁리만 한다고 니 좋을대로 니 마음대로 살아보라고 소리도 질렀습니다. 그 순간 엄마의 아쉬움, 서운함, 미움이 내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만약 작은 틈이라도 생겨 엄마의 감정이 스며들어오면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더욱 담담하게  나는 엄마와 아빠 덕분에 이렇게 잘 컸고 이제는 나이가 서른이 넘었으니 부모님 어깨에 메인 부담을 덜고 싶으며, 독립은 내게 오랜 테마고 숙원이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알맹이는 같지만 껍데기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몇 주에 걸쳐 하다보니 상황이 변하고, 감정은 흘러 지나가고, 생각은 다른 면을 비추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30여 년 나의 작고 소소한 일상을,  그때까지의 나를 만들어 준 우리 집을 떠났습니다.


입주 첫 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401호에 올라가니 환영팻말이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밭에 일하러, 놀러 갔었습니다. 짐을 대충 부리고 밭에 엄마, 아빠와 함께 갔습니다. 길이 질어서 엄마는 약간 투정을 부렸지만 그래도 같이 가주었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흐뭇하고 자랑하고픈 마음이 들었어요. 술 한 잔 하고 가라는 권유를 물리치는 아빠의 쑥스러움이 서운했습니다. 엄마는 너도 아까 그 여자애(성희)같이 밝고 활달한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했고 나는 차를 타고 시동을 걸고 창을 열어 인사하는 엄마와 아빠에게 사귀는 사람(지금의 아내)이 있다고 했습니다. 차가 멈추고 정토회 사람이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자 아빠는 쯔쯔 혀를 찼고 앞집 동갑내기 여자애와 차 한잔 해보라고 권하던 엄마가 진작에 말하지 그랬냐며 타박했습니다. 밝고 빛나는 날이었습니다.


밝고 빛나는 날로 시작된 우동사에서의 생활은 

'해주는 것'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고민하던 것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가볍게 받아가는 과정, 

구성원 간 이런 저런 일들을 듣고 '해결'하려던 것이 '그렇구나' 하게 되는 것으로 왔다갔다 하던 날들, 

집에서도 회의하고 고민하고 늦게 자던 나날과 느긋하고 방에 홀로 있고 일찍 자던 나날이 교차하던 일상, 

언제나 먹을 것이 가득하던(=요리해주는 사람 있음) 냉장고와 

언제나 먹을 것이 없던(요리해주는 사람 없음) 냉장고가 한 곳에 있던 저녁,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언제나 손수 먹거리, 입을거리, 볼거리를 챙겨주던 손길, 

어설프게 도도하고, 어중간하게 애교부리는 아주 크고 이쁜, 나의(우리의) 첫 번째(아마도 마지막) 고양이 난이와 그의 털이 뛰놀던 요와 이불, 

늦게 오면 한숨을 내쉬며 방에 들어오고, 일찍 오면 웅크려 누워 있던 하얀 경남 추리닝의 준효 형이 있던 방,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늦은 밤까지 관계 문제를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리고 닦던 여자방, 

침대 옮길 때 말고 들어가 본 기억이 없는 부부방과 유용하게 쓰던 그 앞 수납장, 

우동사 입주에 가장 큰 뽐뿌가 왔던 스크린과 소파가 있던 2층 공간과 이불을 털고 말리던 테라스, 

지는 해와, 노을이 둥그렇게 번지던 둥그런 하늘과, 비 온 뒤 무지개와, 뜨는 달과 별이 있던 지붕 위,

군대에서 배운 밀대걸래질로 반짝반짝 윤을 내던 거실바닥과

마음의 작용과 실제가 무엇인가, 나의 마음과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가 밤새 이야기하던 거실 테이블,

방 창문을 열어 쓰레기통과 빨래통에 던져넣던 하루의 흔적,

그리고 쑥쑥이 전과 후의 402호, 들큰한 여자기운과 오랜만에 놀러가는 (TV 있는) 친척집 기운이 물씬 풍기는 302호

그리고,

우동사와 연애 사이의 경계를 오고가던 상황과, 감정과, 생각과, 행동과 인식 모두가 서려 있는 구석구석 눈길, 손길, 냄새, 입맛, 소리로 다가온 모든 공간이었습니다. 


우동사에서 보낸 짧은 시간과 작은 공간은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런 나의 집을, 나의 삶을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의 나를, 이대로도 좋은 삶을 떠나는 것이어서 퍽 아쉽고 슬픕니다. 계속 머물러 있고 싶어요.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까지의 나를, 이대로도 좋은 삶을 떠나는 것은 아주 설레고 흥미롭습니다. 연애 중 헤어질 위기에서 매번 반복되던 패턴을 벗어나고자 나의 꼬라지를 인정하고 일요일 공부를 가기 시작한 것은 고정되어 있는, 고정되어 있고 싶은 나를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찾는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결혼은 아마 더 길고 더 오랜 여정이 되겠지요. 그 길 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구를 만날지, 지은 인연이 어떻게 돌아올 지. 지금을 사는 감각으로 살아가다보면 자연스럽고 애쓰지 않는 인연으로,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관계로 만나게 되겠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우동사 식구들과 함께 살았던 것은 큰 복입니다. 정말 고마워요. 따뜻하고 풍요로운 일상을 베풀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또 봐요. 우리 식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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