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6일의 마음결
오늘은 음력 8월 1일, 우리 서여사님의 쉰네번째 탄신일이다. 동생이 저녁을 사겠다 해서 옻오리를 먹으러 갔다. 계양구 어디쯤으로 가는 길은 참 좋았다. 탁 트인 경치가 시원했다. 죽 돌아보니 산 높이가 고만고만하다. 이제껏 가본 곳 어디를 보아도 바다 쪽으로 가면 산의 키가 점점 작아지는 걸 보니 아마 산은 바다에서 태어나 육지로 가나보다.
오늘도 내륙으로 구도의 길을 떠나는 산을 지나치며 우리 생명 모두가 태어난 그곳, 바다로 향한다. 식당 이름은 고래섬이었다. 고래섬! ㅇㅇ농원, ㅇㅇ회관 등 재미없는 이름을 예상했는데, 아니 예상할 것도 없었는데 뜻밖에 만난 크고 넉넉하고 시원한 이름에 속이 다 청량해졌다. 식당에서는 이미 한바탕 놀이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외에서 아저씨들은 족구 한 판, 아줌마들은 노래 한 판. 순하고 예쁘게 생긴 커다란 백구와 눈을 마주치니 자기 좀 만져달라고 난리다. 이따 밥 먹고 만져줄게 눈인사하는데 감자꽃같은 미소를 띤 아줌마가 우리를 맞는다.
"예약하셨죠? 이쪽으로 오세요"
옻오리는 훌륭했다. 요즘 참 먹을 복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아주 훌륭했다. 국물을 떠 마시는데
찜질방에 있는 천연 숯가마니 원적외선이니 나온다는 방에서 흐읍 숨 들이킬 때 혀에 와 닿는, 뭔가 몸에 좋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런 맛이 아주 진하다. 고기는 살이 많았고 푸석하지도, 질기지도, 비리지도 않았다. 부추가 한 가득 담겨있었고 꼬불꼬불 풋고추는 달큰했다. 파김치는 혀를 붙들었고 마늘쫑은 입을 다시게 했다. 위를 다 채우고 십이지장까지 찼다 싶을 즈음 식사가 끝났고 근처 아라뱃길에서 잠시 걷기로 했다.
엄마가 팔짱을 꼈고 우리는 동생과 아빠보다 조금 앞서 걸었다.
"어제 아빠가 들어와서 갑자기 막 울더라"
엄마는 단도직입적이다. 가슴에 칼이 꽂히는 것 같다.
"뭐?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들어와서 갑자기 막 울더라고.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할머니 생각이 났나봐. 추석도 오고 하니까. 그리고 또 하는 말이 자기가 이때까지 가장으로서 해 놓은 게 없는 것 같다고. 그게 참 후회된다고 하면서 막 울더라."
가슴에 꽂힌 칼이 뱃속에 들어간 오리까지 찔렀나보다. 놀란 오리가 파닥거리는 듯 뱃속이 울렁거린다.
"... 어제 술 드시고 왔어?"
"어제 동창회 했데. 그런데 소주 한 병만 마시고 9시에 도망왔데. 그러고 집에 와서 막 그러더라. 자기가 너무 회사만 신경쓴 거 같다고, 그래서 노후나 이런 거 준비 하나도 못해서 후회된다고. 미안하다고."
오리가 식도까지 차 오른다. 금방이라도 꽥꽥 울음이 나올 것 같다.
"그 얘길 듣는데 가슴 쪽 여기가 쭉 꺼지는 거 같더라. 엄마는 그런 얘기 들으면 그래. 요즘에 회사도 잘 안되고 아빠가 많이 힘든가봐. 그런 거 생각하면 엄만 요새 아빠가 어디 아프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그러면 어쩌나 하고."
조심스레 숨을 크게 내쉬었더니 그 틈에 오리가 날아갔는지 마음이 조용하다. 어디까지 갈 거냐고 동생이 부른다. 똥 마렵다는 합리적인 이유도 엄마가 여기까지 왔는데 소화도 안 됐고 좀 걸어야지 하자 대장으로 다시 쑥 들어간다.
"웬일이래?"
아빠가 엄마랑 둘이 사진을 찍어달라 하신다.
?
"웬일이래??"
그렇게 사진 찍는 아빠 얼굴이 참 편해보인다. 두 분이 자연스럽게 웃는 사진을 보니 한 쌍의 청둥오리 같다.
"재현이 너도 와. 같이 찍자"
"응~"
"아니 좀 아들 어깨에 손도 올리고 좀 할 것이지 아빠가 되어갖고 말이야!"
엄마가 아빠 가슴팍을 야물딱지게 팍 치고 아빠는 히히히 웃는다. 하나 둘 셋 하는데 슬그머니 어깨에 얹히는 어색함.
차를 타고 돌아가는데 아, 해일이다. 붉은 해일이 하늘 가득 세상에 덮쳐오고 있었다.
"이야- 온 세상에 불 붙은 거 같아"
"응 정말 그러네"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불의 파도를 타고 그 너머 어딘가로 날아가는 오리 가족 한 쌍을 본 것도 같다. 옻나무 가지 하나씩 물어 퉁퉁 불은 입으로 아픔도, 괴로움도 불 붙은 하늘에 꽥꽥 뱉어내며 날갯죽지 서로 기대고 날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마음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