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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Aug 22. 2015

무릎을 꿇다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 근 1년 만에 해보는 동작이다. 감개가 무량하다.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어느 날, 축구하다 저릿하던 오금은 쉽게 낫지 않았다. 좀 부었구나 하던 것이 무릎 전방 통증으로 이어지고 뛰는 것은 물론이고 걷는 것까지 불편해졌다. 걸을 때면 덜걱거리고 손가락을 대어보면 끼익끼익 소리가 났다. 나중에 심해졌을 때는 계단을 오르면 오금을 사방에서 잡아찢는 것 같았고, 계단을 내려가면 무릎 관절 사이에 쇠막대기를 넣어 주리를 트는 것 같았다. 다리를 저는 것처럼 걸었다. 무릎이 해야 할 일을 고관절과 발목이 부담하며 왼쪽 하체 라인 전체가 아프기도 하고 생전 통증이 거의 없던 허리도 영향을 받았다.


무릎 하나 다치니 이제껏 당연하게 해오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양반다리는 양쪽 무릎 관절이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여야 가능하다. 반가부좌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한쪽만 구부리고 다른 쪽은 피거나, 양 발을 마주보고 넓게 구부려 앉았다.

욕실 바닥에 쭈그려 머리를 감는 것은 무릎 인대가 늘어나고 늘어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서서 허리를 굽혀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제사 때 절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엎드렸을 때 항상 발꿈치에 닿던 엉덩이는 허리 높이로 들어올려야 했다. 가장 좌절했던 동작이다. 내가 꿩도 아니고. 결혼식 날 양가 부모님께 절할 때 역시 엉덩이를 들어야만 했다. 식장에서 퇴장하던 영상에서 다리를 기우뚱 절던 내 모습이 안타까웠다. 서러운 엉덩이, 야속한 무릎.


또 걷는 동작을 다시 보게 되었다. 걷는 것은 시선, 목, 어깨, 팔, 손바닥 방향, 허리, 고관절, 무릎, 발목, 발과 발가락이 모두 작용하는 복합적인 동작이다. 무릎이 아파 부자연스럽게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걸음걸이를 살피게 됐다. 나는 뒤꿈치로 쿵쿵 내딛거나, 손바닥을 안쪽으로 두어 어깨가 구부러지거나, 가동범위를 넘어선 보폭으로 걷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정확히 알아내지 못한 무엇인가로 인해 걸음이 어색하고 엉뚱하게 힘을 쓰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우뚱 걷는 사람, 지나치게 체중을 실어 쿵쿵 걷는 사람, 온몸이 지나치게 굳어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렇게 걷고 무릎이나 발목이 성할까, 어깨가 결리지 않을까, 집에 가면 발이 퉁퉁 붓지 않을까 싶은 사람 천지였다. 몸은 그냥 주어지고 알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요가를 시작하고 더욱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내 몸 안에는 여전히 굳어있거나 부자연스럽게 써온 근육들이 많다. 그것들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작업이 재밌기도 하지만 무척 고통스럽기도 하다. 몸에 깃든 습관의 힘은 강력하다. 좀체 타고난 그대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있던 그대로 있고 싶어한다. 그것을 보아주는 일, 근육이 파르르 떨리고 오금이 찢어질 것 같은 감각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다. 몸도 마음도 살아온 대로, 해오던 대로가 편하고 달콤하다.


그러나 지금의 내 몸을 인정하고 조금씩 지금의 한계-습관이 허용하는 범위를 살짝 넘어선-를 넘어가보는 경험이 쌓여 무릎을 꿇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느낌이었지. 무릎을 굽히면 살가죽이 늘어나고 관절이 굴렁굴렁 재배치되는 거였지. 사뭇 감격스럽기까지 한 이 경험은 예전의 무릎 꿇기이되 전혀 새로운 무릎 꿇기다.


무릎 꿇기의 기쁨을 함께 요가를 수련하고, 결혼생활 하루하루 습관의 한계를 넘나들며 조금씩 어제와 다른 나와 당신이 되어가는 아내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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