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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30. 2015

할머니 보내드리고

2012년 7월 17일의 마음결

조용하다. 연수 때 쌓인 피로가 3일장을 치르며 머리 꼭대기까지 찼는데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고 잠을 잤더니

조금씩 체력이 돌아오는 느낌이다. 너무 어려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던 외할머니 장례를 치를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위 말하는 '어른들'의 세계에 나 역시 '어른'으로서 지난 3일을 보냈다. 그 세계는 정말 '세계'라고 할 만큼 이제껏 내가 살아온 시공간과 동떨어져 있었고 매 순간 꿈을 꾸는 듯 현실감이 희박했다. 침통한 표정을 짓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고 환히 웃기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에도 묘한 기시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눈 감으면 혼곤히 의식이 멀어지고 발소리 듣고 반사적으로 일어나 조문객 맞이하는 시간이 반복되자 내가 서 있는 것인지 누워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 세계엔 한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오며 마주하지 못했던 동생의 맨 얼굴이 있었다. 별 말이 없어도 동생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눈빛으로 이런저런 일을 나누어 했던 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어린 시절 토실토실 탐스러운 볼과 얼굴로 뒤뚱거리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안고 뒹굴고 놀던 내 동생이 이렇게 컸네 하며 교대로 쪽잠을 자던 시간이 좋았다.


그 세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벽녘 깜빡 졸다가 향 피우고 잠 깨러 나가보면 여전히 술 마시고 화투 치고 담배 피우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아빠 혹은 작은 아빠 회사의 직원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뭐랄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마시며 밤새도록 놀아도 좋은 그런 곳을 찾아왔던 사람들인 것 마냥 한 줌 회한도, 슬픔도 찾을 수 없는 그들의 얼굴이 내게는 참 이상했다.


그 세계는 또 언제든 갑작스러운 감정의 태풍이 불어닥치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평정의 잔잔함이 들어서는 어지러운 곳이었다. 고인의 자식들과 이어져 고인을 아는 사람들 중에는 진심으로 위로하고 안타까워하는 분들고 있었지만 우는 분은 드물었다. 그러나 고인을 직접 알고 알아온 분들은 한결같이 울었다. 그 울음은 아빠와 작은 아빠의 가슴 속 빗장을 젖혔고 들썩거리는 어깨와 비져나오는 흑 소리는 내 가슴 속 빗장을 젖혔다. 이제껏 내 눈 앞에서 아빠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걸 본 적은 없었다. 그런 아빠는 입관식에서 염할 때 한 번, 화장터에서 화장할 때 또 한 번 어깨를 들썩이며 우셨다.


엄마는, 고모들이나 작은 엄마보다 먼저 울었다. 입관식 하기 5분 전, 화장하기 10분 전 이렇게. 그러고 나서 입관식을 하거나 화장할 때 우는 고모와 작은 엄마를 다독였다. 엄마는, 할머니와 감정적으로 쌓인 것이 많았다. 그 아픔과 분함, 답답한 마음은 원인이 된 사건이 일어난 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마음 속에 깊이 상처로 남아있다. 참고 또 참아온 엄마는 할머니를 원망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쓰러지고 병원에 계실 때 찾아온 할머니 친구분이 할머니가 자주 엄마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더란다. 당신께서 큰 며느리한테 큰 실수를 했는데 그래도 큰 애가 입이 무거워서 이제껏 단 한 번도 그걸로 떠든 적이 없는 게 당신은 너무 고맙다고, 그런데 그게 너무 미안해서 손자들 보러 가고 싶은데 집에도 찾아가기 꺼려진다고, 그게 아쉽다고 그러셨단다. 산책 가자고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밖에 나온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하며 갑작스레 엉엉 울었다. 비가 내렸고 우리는 다시 식장으로 돌아갔다.


아마 내가 모르는 이런 순간들이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작은 아빠와 할머니, 큰 고모와 할머니, 작은 고모와 할머니, 작은 엄마, 고모부들과 진희누나, 진영누나 등 손자 손녀들과 할머니. 이렇게 각자에게 고인을 돌아보고 고인과 자신을 다시 보고 또 자신과 가족을 다시 보기 위해 사람들은 장례라는 틀을 만들었나보다. 


할머니는 화장해서 화성 추모공원에 모셨다. 안내해주신 분이 납골함이 들어갈 자리를 보여주는데 크지 않았다. 가로세로높이 모두 3~40cm 남짓한 공간. 하얀 납골함이 공간에 담기고 덮개가 덮이고 네 귀퉁이를 드릴로 꽉 잠그고 상판돌을 얹는 데에는 불과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 사람이 살아온 83년의 세월이 마침내 이 작은 공간에 담겨진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했다. 그리고 추모공원에 모셔진 수많은 사람들의 세월이 또 여기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아득했다. 그 수없는 관계과 역사와 감정들. 그것들은 염을 하며 마지막으로 할머니 이마에 손을 대었을 때 전해지던 차가움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이며 해탈주를 중얼거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할머니 좋은 곳으로 보내주시라고 기도하고 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 내 안의 어떤 것과 이어져 있고 또 할머니 영정사진을 보고 우는 엄마가 이상한지 엄마 왜 울어? 라고 재차 묻는 진희누나 조카 지우가 할머니 영정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어떤 것과 이어져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너희는 실감이 나냐? 라고 묻는 아빠에게 실감 안나 정말. 이라고 답하며 그간 묵힌 빨래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몸을 씻고 잠을 자는 이 모든 행동이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실감은 매년 제사 때 할머니 집에 가면 먹을 수 있었던 식혜 맛이 그리울 때, 초가을 추석이 오기 직전 한 소쿠리 가득 쪄서 입안 가득 옥수수알을 채우고 오물거리던 때가 생각날 때, 명절에 모시러 갈 어른이 없다는 걸 알 때, 그리고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그 어느 때 벼락처럼 때로는 향기처럼 어쩌면 공기처럼 그렇게 오고 또 가겠지.


당신의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우는 아빠에게서 미래 나의 모습을 보고 당신의 아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외할머니 곁에 같이 묻어달라는 엄마에게서 장례를 치르는 아빠의 모습이 겹친다.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 사람은 그렇게 죽는 것. 


조용하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지만 

여느 때와 다른 특별한 

한 사람의 죽음과 

그리고 

오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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