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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Oct 02. 2015

아내가 나의 이상을 가로막는다?

기대와 관심 #01

내가 선택한 아내가 내 이상을 실현하는데 장애가 되고,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내 가고자 하는 길에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고, 
내가 낳은 자식이 내 꿈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된다면 
이것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있겠습니까? 
이 모두가 자기에게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기> 중/ 법륜 


지인의 페북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무척 공감한다. 그러나 20대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해하는 맥락은 크게 다르다. 


군 제대 후 나의 길을 가겠다며 굳게 결심한 이후 부모님은 나의 모든 의견과 결정에 반대를 하셨다. 걱정으로 기초를 다지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가치를 얹었다. 국제개발 현장에서 순수한 마음을 불태우며 하루라도 빨리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했던 내게 부모님의 걱정은 남의 인생에 대한 간섭이었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은 이번 생에도, 전생에도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생에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부모님만큼 강력한 장애가 없다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위로를 받곤 했다.


이제 와서 보니 오히려 내가 얼마나 독선적이고 세상을 좁게 살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러저러하게 살겠다는 을 쌓은 것이 문제였다. 부모님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A가 중요한 사람이어서 B처럼 살고 싶다라는 맥락보다 B처럼 사는 것이 내게 맞다, 옳고 좋은 일이다라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내가 선택한 아내가 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 역시 그렇다. 아내를 내가 선택한 것처럼 아내를 장애로 보는 것 역시 내가 선택한 것이다. 아내는 사실 아내란 이름만 있는 게 아니라 엄마, 딸, 친구, 선후배 등등 여러 이름이 있다. 오히려 다른 이름으로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란 이름으로만 보고, '내 아내'는 이런 모양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정해놓기 시작하면 장애가 된다. 만약 대화를 해서 나의 '이상'을 소통할 수 있다면 아내는 오히려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이나 아내를 장애로 만드는 것은 내 이상을 왜 이해해주지 못하는거야 라는 고집, 떼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게 훨씬 쉽고 편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상대가 정말로 어떤지 물어보지 않고 장애라고, 틀렸다고, 그럴 리 없다고 꼬리표를 붙이고 살고 있을까? 얼마나 자주 나는 이렇다, 나의 이상은 이런 것이다라는 대화를 시도해 봤을까? 


결국은 기대관심의 문제다.


(기대와 관심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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