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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Oct 06. 2015

생일의 재발견

결혼 후 첫 생일

지난 토요일부터 생일을 기념하며 보냈다. 이렇게까지 마음껏 누려보는 생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시간이다. 불과 3년 전의 나는 생일을 이렇게 봤다.


생일이라 조금 더 외롭거나 조금 더 신난  것뿐이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별 것 없는 날이기도 하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생생하고 펄떡펄떡 뛰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생일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날이 맞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인연에 걸맞게 내 꼬라지에 걸맞게 축하에 고마워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좋은 사람 만난 것에 신나하고 좋은 사람 못 만난 것에 아쉬워하면 된다.

나는 나대로 괜찮다. 이렇게 세상에 나왔으니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생일이라 이렇게 돌아볼 수 있으니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다.


이제 와서 보면 허세도 이런 허세가 있을까 싶다.(으악 이불킥) 그러나 분명 이땐 나름대로 분명한 주관을 갖고 쓴 글이다. 늘 이상했다. 생일도 수많은 날 중 하나일 뿐인데 왜 챙김에 기뻐하고 챙기지 못함에 슬퍼해야 하나?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어나는 대로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일이면 더욱 외로웠고, 상대의 축하에 50만큼 좋지만 100만큼 좋아하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게 싫었다. 주고 받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고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던 내가 변하고 있다. 원래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는 우리 집에서 내 생일을 까먹고 지나가는 건 흔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생일 선물에 대한 설렘은 초등학교 이후로 사그라들었다. 그러던 내가 이번엔 부모님께 연락드려 생일이니까 밥 사달라고, 챙겨달라고 말했다. 엄마가 준 신세계 상품권 10만원을 집 근처에 쓸만한 곳이 없다며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나는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말하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부모님이 주신 걸 다시 토를 달고 바꿔달라고 말할 수가 있지? 근데 그럴 수 있더라. 


이런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생전 부모에게 누리려 하지 않던 큰아들의 이상행동에 의문이 생기는 동시에 분명하게 요구하는 게 좋기도 하고 또 그렇다고 다 커서 응석 부리는 것 같아 징그럽기도 하고 등등. 그런 복잡함 속에서도 엄마와 아빠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나도 부모님에게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 2의 인생에서 메인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 무엇이 엄마와 아빠를 기쁘게 하는지 묻고 답했다. 부모님과 장인장모님, 우리 가족과 각 동생 가족들이 나중에 한 데 모여 살면 좋겠다는 그림을 그려보며 괜히 흐뭇했다. 마침내 아빠는 생전 처음으로 나(와 아내)를 소사역까지 바래다주며 바리스타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까지 나누고 훈훈하게 헤어졌다. 우리가 카드를 찍고 들어갈 때까지 아빠는 묵묵히 뒤에서 바라봐주었다. 돌아서기 전 쓸어보았던 아빠의 등이 손에 남았다.


다음 날은 처가 식구와 함께였다. 차를 타는 나를 장인어른께서는 부드러운 미소로 맞아주셨고 장모님은 한아름 먹을 것을 건네주셨다. 학사재를 둘러보고 밥을 먹고 또 카페에서 생일케이크와 마실 것을 챙겨주셨다. 카페에서 누구보다 크고 환하게 "사랑하는 우리 사위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던 장인어른의 얼굴을 마주하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새로운 가족의 기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결국엔 눈을 적시고 말았다. 그런 나를, 연애 때부터 아내를 엄청 많이 울리고 속상하게 했던 나를, 그래서 아무래도 아닌가보다 하기까지 했던 나를 두 분께서는 내색 없이 받아주셨다. 몇 번의 큰 어려움이 있던 결혼까지 단 한 번도 서운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나를 다독여주고 응원해주셨다. 


사실 이 모든 변화는 아내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아내는 오늘 나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고 함께 갈 식당을 알아보았다. 전날 밤에 미역국을 끓이고 아침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차려주었다. 아내를 만나 나는 누리는 삶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그것이 주는 기쁨과 온기를 알아가고 있다. 부모의 사랑, 장인 장모의 사랑을 느끼고 또 주고 받을 줄 알기 시작했다. 30년 간 보지 못했던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고 직접 체험해보고 있으며, 우리 가족의 좋은 점은 자부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다. 태어나 함께 한다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생일을 전후한 요 며칠간 특히 더 그렇다.


나의 결혼 생활은 정말이지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긴 여정이구나 싶다. 앞으로 아내와 함께 걸어갈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와중에 내 안에 있던 전혀 새로운 모습, 알고 있었지만 애써 억누르고 있던 인간의 모습을 알아가는 것은 풍성하고 또 깊은 감동이 있다. 이렇게 또 하루 새롭게 태어난다. 결혼 후 맞이하는 첫 생일이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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