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미 Jan 31. 2016

이 순간이 참 좋다

1.

어제는 1월 25일인 동생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동생은 빠른 87년생으로 86과 친구이며 올해 서른 하나 혹은 서른이 되었다. 그렇다면 분명 작년에 서른 혹은  스물아홉으로 분명히 30이라는 숫자가 인지가 됐을 텐데 유독 올해 놀랐다. 재민이가 서른이 넘었다고?


터질 것 같은 볼따구를 자랑하던 유년기의 동생을 나는 매우 사랑했다. 기껏해야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내가 발가벗은 동생을 꼭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 증거로 남아있고 이번 생의 초기 기억 중 동생과 함께 한 시간은 탱글탱글한 아기 엉덩이처럼 부드럽고 앙 깨물고 싶은 느낌이 든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데면데면해졌다. 학교를 3년 터울로 가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다른 시간에 일어나고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동생은 춤과 노래, 운동을 열심히 했다. 동생과 내가 보던 10대의 풍경은 아마 많이 달랐을 것이고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생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살기에도 바쁘고 또 내 인생만 사는 것이 좋았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나는 동생의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같이 만나 밥을 먹지는 않아도 용돈을 꼭 줬다.  그다음에는 언젠가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삶을 알리고 내 삶에서 동생이 어떤 의미인지를 전하고 형 노릇을 하며 생색을 내고 싶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내게 있어서 동생의 의미, 형의 의미가 달라져왔기 때문이다.


군대에 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단절이 되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처음 겪는 일이었고 어쩔 줄 몰라하던 부모님을 기억한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 울었고 아빠는 어쩔 줄 몰라 씩씩했다. 그리고 동생은 우는 엄마를 달래며 내게 눈짓했다. 알게 모르게 내가 짊어지고 있던 큰 아들의 책임감을 동생이 덜어갔다.


이때 한동안 잊고 지내던 동생의 존재를 새삼 알게 됐다. 데면데면하던 10대와 나 혼자 잘난 맛에 살던 20대 초반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동생이 아주 잠시나마 시야에 들어왔다. 든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내 역할이 없어진다는 불안과 질투도 나고 그랬다. 물론 그땐 정확히 몰랐다. 시간이 흘러 내가 스리랑카에 가고, 우동사로 나가고 하는 사이 동생과의 거리는 줄었다 늘었고 우리는 여전히 데면데면했지만 서로 간 느끼는 정 비슷한 무엇이 생겼다.


어제도 그랬다. 동생은 여자친구와 함께 왔고 엄마, 아빠가 같이 왔다. 세 커플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고 편하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의 잔기침을 하다 화장실을 간 사이 나머지 다섯 명은 일제히 잔기침을 왜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했다. 동생이 돌아왔고 걱정과 방법을 이야기해줬다. 예전 같으면 아 됐어라고 했을 동생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이 참 좋았다.


2.

사실 어제 식사를 한 곳은 2년 전 아내와 함께 5명이 저녁을 먹은 곳이었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인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가까이 봐도 불과 작년에 엄마 아빠와 우리 부부가 먹을 때면 침묵 속에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그러던 우리가 이제는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엄마와 아빠가 투닥거리는 것도 살벌한 기가 빠지고 귀여워졌다.


사실 엄마, 아빠도 며느리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어떻게  할지 몰랐을 것이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처음 해보는데다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됐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제사나 명정 등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긴장이 풀린 자리에 여유가 들어선 것이 아닐까 한다.


자칫하면 굳어져 딱딱하거나, 과하게 꾸며 오글거릴 수 있는 자리를 나와 아내, 엄마와 아빠가 각자 나름대로 합을 맞추며 이런 관계를 만들어왔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내가 무척 고마웠다. 이 순간이 참 좋았다.


3.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오늘 효상이형 결혼식에 가서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모두를 만나고, 반갑고, 약속이 있고, 집이 가깝거나 멀었다. 언젠가 날을 잡아서 만나자고 하고 집에 초대하마 이야기해도 살다보면 생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과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만큼 아쉽겠지 하는 예상보다 덜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자취방을 잡고 밤새 노닥거리며 이야기하던 밤이 그립다. 그렇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간다. 그래서 이야기의 세밀한 부분, 찰나의 미묘한 감정을 나누는 것 말고 편한 웃음, 가벼운 인사, 어깨를 두드리는 것 등으로 사람들과 만난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사람들에게 전하며 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새겨본다. 그리고 이야기의 세밀한 부분, 찰나의 미묘한 감정을 가장 친한 나의 친구 아내와 함께 나눈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이 순간이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에 달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