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야 저기 너 있다
아내가 미리 신청해 둔 만삭사진 촬영을 갔다. 꽤 오래전에 신청한 거였고 무료였다. 요즘에는 만삭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고, 아이가 나온 이후 50일, 100일, 200일 등 후속사진을 패키지 상품으로 권유하는 사업모델을 활용하는 듯했다. 아내는 메이크업과 헤어를 해준다고 해서 편하게 갔고, 남편은 따로 해주는 건 없다고 했지만 나도 편하게 갔다.
먼저 메이크업을 했다. 화장하고 머리할 때 같이 있어도 되고 따로 쉬고 있어도 된다고 했는데 일단 구경하고 싶다며 따라갔다. 메이크업 실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나는 한쪽에 앉아 구경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물끄러미 화장하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뚫어져라 쳐다봤는지 실장님이 '아기 아빠가 나중에 메이크업 해주려나봐요' 하셨다. 그래도 여전히 따로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계속 아내의 얼굴을 봤다.
메이크업은 정말 섬세한 작업이었다. 한 가지 화장품을 바를 때만 해도 저게 어떤 효과가 있나 싶었는데 바르고, 찍고, 두드리는 사이 VSCO 앱으로 사진 보정하듯 얼굴빛이 환해지고 눈이 커져갔다. 특히 속눈썹을 붙일 때가 압권이었는데 그 가느다란 걸 하나하나 붙이는 모습에 내가 괜히 답답해졌다. 저걸 언제 붙이고 있나... 난 손이 떨리고 속이 터져서 메이크업은 못하겠구나 싶었다. 입술에 바를 립스틱 색을 고르는데 2가지를 제안해주었고, 내가 고른 것과 실장님이 고른 게 일치해서 기뻤다. 평소에 아내 옷을 골라주면 다른 사람들 반응이 좋았는데 화장품도 그렇다는 걸 알고 우쭐해졌다.
메이크업이 끝나고 본 풀메이크업의 아내 모습이 낯설었다. 결혼식 이후 1년 반만이다. 눈이 커졌다고 좋아하는 모습이 좋았다. 이어서 사진작가님이 드레스를 갖고 오셨다. 여러 드레스 중 괜찮다 싶은 것들을 하나씩 입어보고 최종적으로 2개를 골랐다. 하나는 어깨끈이 달린 흰색 드레스, 다른 하나는 검은색 니트 원피스. 흰색 드레스는 나무와 풀이 있는 배경으로 찍었고, 검은 니트 원피스는 지하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아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사진작가님의 디카 디스플레이를 볼 것 없이 내가 폰으로 찍은 모습으로 충분히 좋았다. 배가 둥그렇게 나온 아내의 라인이 터진 플래시가 잦아들며 뇌리에 새겨졌다.
봄이가 세상에 나와서 이 사진들을 봤을 때 네가 저기 저 둥그런 뱃속에 있었노라 말해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봄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질문을 할까. 나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답을 해줄까. 이런 순간들을 예비하기 위해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구나 싶다. 없으면 없는 대로 좋지만, 있으면 더 풍성한 순간이 되겠구나, 일상의 이벤트가 주는 힘이 있구나 한다. 사진은 그 순간 하나만이 아니라 앞뒤 맥락이 함께 담겨있어서 예전 사진을 볼 때면 그 시절의 장소, 냄새, 기분, 사연들이 주렁주렁 함께 튀어나오겠구나 한다. 만삭 사진을 찍고 나니 봄이가 세상에 나온 뒤 자주, 틈틈이 사진을 찍어둬야겠다 싶다. 우리 세 가족의 역사를 하나씩 담아가야겠다.
오늘은 10월 18일. 봄이 출산 예정일 D-46. 임신 만 8개월 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