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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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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Nov 01. 2016

D-32

일찍이거나, 늦어지거나

11월이 왔다. 언제나 올까 싶던 12월을 딱 한 달 남겨놓은 11월이 왔다. 우리 부부는, 특히 아내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출산을 상상해본다. 감히 그 진짜 경험을 상상으로 알 수 있겠냐만은 조금씩은 준비라고 할 만한 것들을 하고 있다. 게다가 아내의 배는 막달이 가까워지자 하루가 다르게 배가 나온다. 만삭사진 찍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늘지 않아 걱정이던 몸무게도 늘고 있고, 배는 미사일처럼 솟기 시작했다. 실감나지 않을 수 없고,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출산 후 돌아보며 추억할만한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제는 성희네와 재진이형네서 받은 아기옷을 정리했다. 옷이 가득 담긴 박스들을 거실에 모아놓고 출산 직후 쓸 것과, 6개월 정도 지나서 쓸 것을 분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옷이 직후에 입고 나중에 입을 것인지 감이 안 잡힌다. 아기를 안는 시늉을 하며 팔에 걸쳐도 보고, 서로 물어보아도 모르겠다. 답은 인터넷에 ㅋ 70과 75와 80 사이즈의 차이를 알고 난 후 직후에 쓸 것들을 골라 먼저 빨고 나머지는 그때 가서 빨기로 했다. 하나하나 아기 옷을 꺼내어보며 이 옷을 입은 봄이를 상상한다. 꼬물거리는 팔다리, 감은 눈과 쩝쩝거리는 입. 


그저 하루종일 바라만 봐도 좋을까, 밤에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젖 먹는 짐승일까. 100일 정도 됐을 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던 지인들의 말을 되새기며, 실감나지 않는 육아의 치열한 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알린다. 진짜로? 정말이야? 외치며 아내와 더듬더듬 서로의 옷깃을 잡고 어둠 속을 헤쳐나가는 기분이다. 어떤 풍경일까. 어떤 밤과 낮일까. 어떤 냄새와 공기가 돌까. 내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아내는 어떤 사람이 될까. 


수없이 많은, 참고가 되면서도 되지 않는 이야기의 숲을 거닐며 차라리 저 육아의 문이 보이지 않길 바라면서도, 저 문 너머에 있는 수없이 많은, 직접 경험하고 싶으면서도 피하고 싶은 인생의 바다에 닿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는 정말로 조금씩 그 바다 냄새가 난다. 굽이를 돌고 하늘이 땅에 닿겠구나 싶은 곳에 바다가 있을 때 풍기는 그 바다 냄새가 난다. 희미한, 그러나 확실한 생명의 냄새가 난다. 나오긴 나올 모양이다. 나와야 한다. 이대로 두 달만 더 있으면 아내 배가 뻥 터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나와 아내, 봄이 세 가족이 원하는 때에 만날 수 있기를, 일찍이거나 늦어지거나 나오는 날이 바로 우리가 원한 때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언제든 어디서든 축복과 평화로움 속에 새 세상에 나오기를, '아기의 정신이 육체에 깃드는 시간'*을 곁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한 달여 남짓한 시간 꾹꾹 눌러가며 다짐한다. 


*인수, 인해 엄마 지원누나의 응원/격려의 글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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