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가 으앙 하고 입을 벌리면 이가 없는 잇몸이 보인다. 먹다 못 삼킨 젖이 조금 고여서인지 하얀 이 뿌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 아마 반년 안에 하얀 젖니가 새싹처럼 올라올 것이다. 오물오물 젖을 빨던 잇몸이 이에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하면 서우는 아마 늙어서 이가 다 빠지지 않는 이상 다시는 잇몸으로 무언가를 먹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고 하는 말이 다르게 들리는 요즘이다.
이가 나기 시작하면 아내가 젖을 먹이는 풍경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지금도 입을 작게 벌리거나, 각도를 잘못 잡거나, 깊게 물지 못하면 아파하는데 나중에 이가 나서 유두를 잘근잘근 씹으면 얼마나 아플까. 물릴 젖꼭지가 없는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아픔이다. 가끔 서우가 크고, 강하고, 지속적으로 울 때 아빠 손가락 찬스를 쓸 때가 있다. 빠는 욕구가 아주 강한 시기라서 그런지 엄청 세게 빤다. 그렇게 물렸을 때 오물거리는 입술과 손가락에 와 닿는 잇몸과 휘감는 혀가 느껴진다. 오래 물리면 살짝 얼얼하고, 목욕탕에 오래 있을 때 손가락이 쭈글거리게 되는 느낌이 묘한데 나중에 이가 나면 어떨까 한다. 깨물면 아프겠지.
이가 나기 시작하면 무언가를 오물거리고 입에 넣고 물고 빨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물어보고, 씹어봐야 이와 잇몸이 간지럽거나 혹은 아픈 성장기를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서우는 서서히 잇몸으로 먹고살던 시절을 잊고, 이로 먹고사는 시절로 접어들 것이다. 잇몸은 혀 끝에 와 닿는 단단함, 엄마의 활짝 웃음, 칫솔로 이를 닦을 때 먼저 닿는 곳으로 이름을 바꿔갈 것이다.
젖니가 나고 또 몇 년 후 서우의 이는 하나 둘 덜렁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이에 실을 묶고 문고리에 연결하거나 손에 쥐어서, 문을 확 열거나 이마를 탁 쳐서 쏙 하고 이를 뺄 것이다. 벙벙하거나, 빠진 줄 모르거나, 오히려 이마가 더 아프거나 한 서우를 잠시 달래고는 아내와 서우와 함께 셋이 머리를 맞대고 뽑은 이를 서우 손바닥에 올려놓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고한 젖니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그때 살고 있는 집이 지붕이 있는 곳이면 지붕에 던져서 까치에게 헌 이 가져가서 새 이 갖다 주세요 부탁할 것이다. 지붕이 없으면 음... 어떻게 하지. 치과에 가겠지. 근데 그건 좀 재미없다. 아무튼 그렇게 하나, 둘 젖니가 빠진 자리에서 서우는 다시 잇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꾸만 혀를 집어넣고 넣었다 뺐다 해보는 통에 혀를 더 잘 쓰게 되는 덤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곧 영구치가 자라기 시작하면 다시 한동안은 잇몸이 거기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 것이다. 충치가 생겨 이를 뽑거나, 사랑니가 나서 뽑아야 하는 때를 빼고는 그럴 것이다.
요즘 보내는 하루하루가 꼭 잇몸 같다. 다시는 오지 않을 나와 아내와 서우의 잇몸 같은 시간이다. 글을 쓰는 지금, 불이 다 꺼지고 황색 스탠드 불빛이 옅은 방에서 모로 누워 있는 서우의 동글뱅이 뒤통수가 보인다. 서우는 소화가 잘 안되는지 가끔 끙끙거린다. 조금 더 잠이 깨면 팔을 휘적거리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며 용을 쓴다. 그러다 혼자 감당이 안되는지, 아니면 그러다 잠이 완전히 깨서인지 울기 시작한다. 아내와 나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다 안되면 젖을 물린다. 젖을 물리던 아내는 가슴을 드러낸 채 까무룩 잠이 들고, 엄마의 잠이 스며든 젖을 먹은 서우도 따라서 잠이 든다. 그러다 다시 잠이 깬 서우를 품에 폭 안고 토닥거린다. 잦아들 때 스르르 몸을 맡기는 느낌과, 잦아들지 않을 때 다리를 차고 팔을 휘두르는 느낌이 생생하다. 출근 전 잠든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는 시간과 공간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가만히 이 시간과 공간에 혀를 대어 본다. 서우는 점점 자라서 혼자 똥오줌을 가리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자기 방을 쓰고, 학교를 가고,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하고, (아마도) 자기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의 순간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보거나 요즘 찍은 사진들을 볼 때 그랬나 하고 신기해하거나 짐작할 뿐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를 사랑과 기쁨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서우 인생의 든든한 잇몸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너무 소중하다. 서우가 건강하고 밝은 사람으로 자라나는 뿌리가 되는 하루, 또 하루가 된다. 나중에 새로 채워질 우리 가족의 시간들도 아름답고 소중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자꾸만 이 시절을 떠올리며 혀로 잇몸을 대어볼 것만 같다. 다시는 오지 않을 말랑거리고 보들보들한 잇몸의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