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육성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으아으아응~, 베레렙, 부르릅 부~, 꺄아리라고 하면 나는 어이구, 그래 맞아, 얼씨구, 오아오아웅, 까아웅까아라고 답한다. 그러면 다시 으응아응, 우잉꺄~ 눈썹을 씰룩이며 진지하게 표현한다. 신나거나, 아쉽거나, 다른 걸 해달라거나, 심심하다거나, 계속 해달라거나 내 마음대로 짐작하며 반응한다. 옹알이에 반응해주면 할수록 서서히 말하는 실력이 는다고 들어서 일단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맞장구친다. 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앞에 두고 꺄르르 까꿍, 오구오구 하는 걸 보면 내가 괜히 민망하고 부끄러웠는데 역시 내 아이라 그런 건지, 실전에 강한 타입인지.
오늘은 서우 왼쪽 콧구멍 속에 코딱지가 보여서 빼주고 싶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재채기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니까 기다려도 된다 했다. 나는 코딱지가 사라지고 나서 느낄 시원함과 상쾌함을 서우가 느꼈으면 좋겠어서 마침 모빌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즉흥적으로 코딱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코딱지를 빼주세요, 빼고 나면 너무나 시원해요. 이런 세상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코딱지 콧구멍 코딱지 콧구멍 예~"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보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참지 못하고 면봉에 식염수를 적셔 결국 코딱지를 빼냈다. 콧구멍 길이만 한 아주 커다란 놈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러워 코딱지를 바로 버리지 않고 한쪽에 뒀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에게 자랑하니 그랬어? 나도 코딱지 빼준 적 있어.라고 해서 김샜다. 흥...
그러고 나서 다시 서우와 놀다가 볼에 쪼오오옥 소리가 나게 뽀뽀를 했다. 그랬더니 헤헤 육성으로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나는 가까스로 심장 마비를 피하고 곧바로 다시 소리 내어 뽀뽀했다. 서우는 다시 헤헤 웃었다. 이제까지 표정으로만 웃곤 했는데 소리 내어 웃다니. 엄청난 발견을 한 것이 기뻐서 아내에게 자랑했다. 아들을 육성으로 웃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그게 뭐냐고 묻는 아내에게 안 알려주지 약 올리다가 이따 보여줄게 라며 기세 좋게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쪼오오옥 했는데 아들이 시큰둥했다. 당황해서 계속하니 나중에는 얼굴을 찡그려서 상처받았다. 아내는 나를 이해해줬지만 억울했다. 흥... 아들놈.
한창 놀고 졸린 아들을 안았다. 지난번 글을 쓸 때와 달리 이제 아들은 내가 안아주는 방식을 좋아한다. 서우가 이제 호기심이 폭발할 시점이고, 상체를 세워 안아주는 자세가 세상 구경하기 좋아서 그렇다고 한다. 아빠의 시대가 돌아왔다. 며칠 전만 해도 구경까지만 하고 졸리면 외할머니 슬링 찬스나 엄마 슬링+짐볼 찬스를 썼는데, 이제는 내 품에 안겨있다가 잠들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며 바깥을 보다 한쪽 볼을 팔에 기대고 침을 흘린다. 그러다 살짝 양감이 느껴져 거울로 아들을 보면 눈을 감고 있다. 이내 커어 커어 콧소리를 내며 잠든 아들을 자리에 눕히고 한껏 뿌듯해하며 나도 누웠다. 아내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오늘 하루 아들과 충분히, 충실하게 보냈다. 100일 행사가 지난 주였다는 게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본격적이다. 출근한 날은 퇴근하는 대로, 주말에는 일어나는 대로 아들과 아내와 함께 지낸다. 100일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아들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세워 안으면 쇄골까지만 오던 아이는 이제 어깨너머를 본다. 수유할 때 엄마 몸통을 넘지 않던 아이의 다리는 이제 바닥에 닿을 만큼 길어졌다. 하루하루 커가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지나고 보면 부쩍 자라 있다. 그렇게 자라는 동안 애쓰고 노력해온 아들의 매 순간이, 아내의 길고 긴 밤이,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배려와 헌신이 옹알이와 헤헤 웃는 소리와 세워 잠드는 것에 녹아있다.
이 모든 것을 지난 주 100일을 기점으로 가족들과 기념했었다. 아내와, 장인 장모님과, 외삼촌과, 아빠 엄마와, 동생 예비신부와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하고 산책하고 사진 찍으며 행사 치르듯, 잔치 벌이듯 시간을 보냈다. 그 날 아침 일어나 삼신할머니께 드릴 정화수를 뜨러 장인어른과 함께 약수터에 갔다. 물을 받으며, 서우와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00일간 무탈하게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기도했다. 집에 와 삼신상을 차리고 두 번 절할 때 다시 기도했다.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00일간 무탈하게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이 100일 하루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106일인 오늘, 글을 쓰는 지금, 기어다니기 시작할 나중의 어느 날에도 100일에 가졌던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길, 아들의 코딱지 하나에 기뻐하고 웃음 하나에 세상이 환해지고 쿠르릉 똥 싸는 소리에 손뼉 치며 좋아하는 지금의 마음을 닦아나가길. 단 한 번뿐인 106일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