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우일기

태반을 묻으며

서우와의 첫 여행기-part 1

by 개미

어제와 오늘 이틀간 아내, 서우와 함께 덕산-예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강원도로 가려고 했던 일정을 아이와 우리 부부 모두에게 무리가 될 것 같아 예산으로 바꿨다. 예산에는 장인, 장모님이 땅과 집을 갖고 계셔서 자연 그대로를 맛볼 수 있는 별장 같은 곳이다. 덕산은 16세기부터 관리되어 온 온천 원탕이 있는 곳으로, 물이 아주 좋다 하여 행선지로 정했다.

그리고 서우가 태어나고 나서 자연적으로 떨어질 때까지 두었던 태반을 보관했는데, 이번에 예산 집에 있는 나무에 묻기로 했다. 엄마 뱃속에서의 9달, 태어나서 10일을 함께 했던 소중하고 고마운 태반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여기에 더해 아내와 내가 각각 쓴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함께 묻었다. 몇 년 뒤가 될 지 모를 어느 날 서우와 함께 다시 이 곳을 찾아 읽어보려 한다. 서우가 편지의 내용을 언제쯤 자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등학교 입학 즈음으로 일단 정했다. 물론 때가 되었다 싶으면 더 당길 수도 있겠다.

아래 편지 내용은 서우의 몫이자, 166일 된 아들 아빠의 작은 마음 씀씀이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나중에 서우 만나도 비밀로 해주길 부탁드린다. ㅎㅎ


서우야. 안녕. 아빠야. 지금은 새벽 1시 40분이고 몇 시간 뒤 엄마와 너 우리 세 가족은 첫 여행을 떠난다. 기차타고 덕산 온천으로 간다. 아직 만 6개월이 채 안된 너를 데리고 가는 길이 어떨지 몰라 짐을 백팩 2개와 작은 캐리어 하나를 가져간다. 다음 번에는 더 줄일 수 있으려나 ^^

오늘 화요일은 사실 5월 2일 평일이다. 어제 근로자의 날에 이어서 내일은 부처님 오신 날, 금요일은 어린이날, 다음 주 화요일은 대통령 선거날 등등 좀처럼 접하기 힘든, 휴일이 잔뜩 몰려있는 주간이다. 어디 좋은 곳으로 갈까 하다가 너 힘들 것 같아서 가까운 곳으로 간다. 사실 엄마 아빠도 초보 엄마 초보 아빠라 우리도 힘들 거 같아서 그랬다 ㅎㅎ

덕산에 가면 미리 예산 내려가 계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외삼촌과 함께 우리를 마중 나오실 거야. 아직 어려서 온천욕을 못하는 너를 남자팀, 여자팀으로 나눠 번갈아가며 돌보고 어른들은 온천욕을 할 예정이다. 피로가 싹 풀리기를 바라고 있지 ㅎㅎ

내일 기차탈 걸 알아서인지 너는 오늘 유난히 잠이 없구나. 아니면 이가 막 나려 해서인지 자꾸만 아빠 손가락을 잇몸으로 질겅질겅 물었는데 나는 왠지 이가 나고 있는 것만 같아 기뻤다. 아니면 오늘따라 이상 고온으로 28도까지 치솟은 여름날씨에 더워서 칭얼거린 걸수도 있겠고.

오늘 하루만 해도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네가 이 편지를 읽은 날도 크고 작은 일들이 많겠지. 어떤 일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고, 또 어떤 일은 전혀 생각조차 나지 않을 거야. 다만 이 편지가 지금껏 살아온 너의 인생에 작은 점 하나 찍어주었으면, 이 편지로 오늘 하루가 기억할만한 날이 되었으면 욕심을 부려본다.

요즘 아빠의 하루는 너로 시작해서 너로 끝난다. 매일 아침 일어나 눈 마주치면 활짝 웃고, 엄마 아빠 밥 먹을 때 유모차에서 기다려주고, 아빠 품에서 쌕쌕 잠드는 너를 매우 사랑한다. 하루 또 하루 사랑한다. 지금의 사랑과 이 편지를 읽을 때의 사랑이 같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여전히 널 사랑한다.

언제나 건강하고, 밝고, 티 없는 아이로, 청년으로, 성인으로 나아가는 중이길. 혹여 건강하지 않아도, 밝지 않아도, 세상살이에 찌들어 있어도 밝은 곳,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길. 응원하고 또 기도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

2017년 5월 2일 아빠 씀


DSC06191.JPG 2016.11.19 밤 11:45 봄이 탄생(탯줄 연결) / 2016.11.29 아침 8:10 탯줄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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