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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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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May 14. 2017

함께여서 좋아

서우와의 첫 여행기-part2

태반을 묻는것 역시 중요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셋이서 함께 떠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함께라는 말은 얼핏 들으면 따뜻하고 화기애애한 것이 떠오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아주 힘들고 괴로운 것도 함께 떠오른다. 말은 좋은데 실천은 어려운, 하면 좋은데 제대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게 '함께'가 아닐까 한다.


함께 하면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없다. 상대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만족하는 것과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이해와 오해가 난무하고 화합과 갈등이 한데 섞인다. 쉽지 않고 마냥 좋지만은 않다.


서우와 여행을 떠나는 것 역시 그랬다. 서우는 자동차 외에 버스나 지하철, 기차를 타본 적이 없었다. 마을 버스를 타고 기차를 갈아타서 약 1시간 넘게 내려가는 길이 서우에게 어떨지 짐작되지 않았다. 사적인 공간이 없는 대중교통에서 서우가 똥을 쌌는데 바로 갈아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거나, 배고프거나 무언가 불편해서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리고 식구들 집 말고 다른 곳에서 자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챙겨가야 할 짐이 늘었다. 기저귀, 턱받이, 옷, 장난감, 포대기, 아기띠, 속싸개, 이불 등등. 온천욕을 할 경우 남자팀, 여자팀이 나누어서 누군가는 서우를 보고 있어야 했다.


만약에 아내와 내가 단 둘이서만 여행을 갔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거나 어렵지 않을 것들이 새롭게 생겼다. 결혼 후 총각에서 남편으로 이름이 바뀌며 여행의 모양이 달라졌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총각 때 다니던 여행의 장소, 컨셉, 시간, 음식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달라지거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서우와 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아내는 다 큰 어른이고 스스로 결정하거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서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가는 곳으로 간다.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함께 간다고 하지만 데리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아들을 모시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기도 했다. 불편하거나 힘들 수 있는 것을 미리 헤아려서 준비하고, 무언가를 하기 전에 설명해주고, 밥도 먼저 챙기고 잠도 먼저 챙긴다. 효도관광이다.


그런데 또 서우는 우리가 모시(려 노력하)는 마음이 무색하게 마을버스도 잘 타고, 처음 타는 기차에서 젖도 먹고, 똥도 싸고, 낯선 곳에 누워 기저귀를 갈아도 방긋방긋 웃었다. 기차를 타고 바로 외할아버지 차를 30분 정도 더 탈 때 징징하긴 했지만 차에서 내려서는 또 활짝 웃었다. 이렇게 보면 서우가 나와 아내에게 효도관광을 시켜준 셈이다.


무엇보다 서우와 함께 잘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 덕이 컸다. 장인어른은 예산 인근을 이동할 때 우리의 발이 되어주셨고, 서우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함께 놀아주셨다. 장모님은 도착하자마자 소고기를 구워주셨고 자꾸 쉬라고 하고 또 자라고 하시며 평화롭고 느긋한 예산을 만끽하게 해주셨다. 처남은 기타와 노래로 여행의 맛을 더해주었고, 서우에게 불러주는 노래로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세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했던 여행은 불안과 설레임이 함께 했지만, 짧고 긴 1박 2일을 지내며 불안은 조금씩 사라지고 풍성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세 가족이 또 다른 세 가족과 만나 여섯 가족이 함께 좋은 시간을 만들어갔다. 여행은 즐거우려고 간다는 것을 잊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고 또 믿는 사람들이어서 그랬구나 싶다.


나중에 서우가 더 자라면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는 또 달라질 것이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는 더 챙겨야 할 것을 귀찮아하는 것과, 과거의 편안함을 그리워하는 것과, 아내와 둘만의 또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아쉬움이 떠오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번 여행에서 서우와 가족들이 내게 준 밝은 웃음과, 온화한 정서와, 따뜻한 밥과, 시원한 방과, 즐거운 노래가 떠오를 것이다. 언제나 이 모든 것이 함께이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라는 걸, 이것이 내 삶이고 지금의 내 현재라는 걸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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