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우일기

아빠가 재워주는 거 싫어

좋은 건 좋아

by 개미

서우는 매일 자란다. 이제는 밤에 한 번 정도만 깨서 엄마 아빠에게 소중한 수면 시간을 주고, 일어나서는 으앙 우는 대신 끄응거리며 기지개를 있는 힘껏 켜고 푸아 한숨을 내쉰다. 얼굴을 비춰서 말을 걸면 방긋방긋 웃어준다. 표현하는 방법이 늘었고 방법이 늘어난 만큼 여유가 생겼다. 배가 고프든, 잠이 오든, 기저귀가 젖었든, 덥든 아무튼 일단 울고 보는 대신 옹알이로 의사표현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손을 좀 더 잘 다뤄서 손등에 혀를 할짝거리던 걸 검지 손가락을 펴서 입에 넣고 쪽쪽 빤다. 젖을 먹는 동안 엄마 옷이나 머리카락을 꼭 잡는다. 매일 기특하고 이쁘다.


서우가 매일 자라며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는 사이 나는 정체되어 있다. 특히 서우에게 가장 민감하고 힘든 것 중 하나인 재우기에서 그렇다. 처가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다른 식구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재우기 방법을 개발했다. 장인어른은 다양한 이야기와 자장가를 들려주며 이동 속도, 조명 밝기를 세심히 조절해서 재우시고, 아내는 팔에 안거나 슬링으로 안아서 자장가를 부르고 공갈을 물려 재운다. 장모님은 명실상부한 서우 재우기 분야의 No.1이다. 누구도 어쩌지 못할 만큼 짜증이 났을 때도 장모님 슬링 한 번이면 서우는 꼴딱 잠이 든다. 이제는 서로의 강점을 흡수해서 재우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재우는 타이밍만 오면 작아진다. 다른 사람의 자세를 흉내 내거나 나름대로 다른 방식으로 안아도 서우는 운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막 운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서운하다.


신생아 때 서우는 곧잘 내 품에서 잠들곤 했다. 나는 주로 왼손과 왼팔로 서우의 엉덩이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목 뒤를 감싸 안아 내 몸에 붙였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란 이후에 서우는 이 방식을 더는 좋아하지 않았다. 깨어 있을 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트림하기 좋은 자세이나, 잠이 들기에는 좀 불편한 자세인가 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다른 식구들이 하는 것처럼 한 팔로 어깨와 목을 가로질러 받치고, 다른 팔로 엉덩이와 허리를 감싸 안으면 막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나는 이게 불편해?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때?라고 하며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결국 다른 식구들이 와서 서우를 대신 재웠다.


그러자 매번 아이를 재우려 할 때 초조했다. 내가 달래다 안되면 다른 식구들이 와서 서우를 데려가는 게 싫었다. 아빠 노릇을 못하는 것 같고, 자존심이 상했다. 혼자서도 달랠 수 있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도움받아야 하나며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내가 아이를 재우려 하는 동안 다른 식구들은 내가 언제 도움을 요청하나 기다리고 있다고. 계속 우는 거 보면 둘 다 힘들 텐데 언제 들어가서 도와줘야 하나 눈치를 보고 있다고. 그리고 선생님께 여쭤보니 왜 아이를 모르모트처럼 실험하고 있냐고, 분명히 아기가 바라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을 거라고 하셨다 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내 충격을 덮으려 했다. 그러나 덮이지 않았다. 나는 도움을 청하는 걸 일종의 구걸로 여기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아이가 우는 것보다 중요했다. 스스로 해낼 수 없는 나의 존재감은 미미하다고 믿고 있었다. 놀 때는 잘 노는데 잘 때만 그런 거야라며, 좋을 때 잘 지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달래지지 않는 아이를 탓하며, 막무가내의 내 고집을 감쌌다.


이어진 아내의 말은 더 충격이었다. 부탁을 하고 다른 쪽으로 식구들을 도우면 되는 거 아니냐, 설거지를 하든지 장모님 어깨를 주물러주든지, 그러면 모두가 행복한 것 아니냐. 그 말을 듣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식구들이 모두 함께 육아에 동참하는 가운데 나는 나의 역할을 이러저러한 것으로 정해두었다. 그 역할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독립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누군가 아이를 보면 누군가는 밥을 하고, 누가 빨래를 하면 누군가는 재활용을 하고, 누가 기저귀를 갈면 누군가는 엉덩이 씻길 일을 준비했다. 모든 것이 주고받는 것으로 돌아가는데 나 혼자 성을 쌓고 있었다.


이 모든 행동들이 나도 모르게, 그런 줄 모르고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은 모두 빤히 보고 있는 일이다. 트라우마라고 해도 좋을 이런 행동들, 이상하지만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그런 행동들을 서우는 자라며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겪게 될 것이다. 그때 서우는 아빠에게 어떤 이름표를 달아놓을까? 대체로 무난하다가 어떤 일에는 집요하게 강요하는 아빠, 자기 식대로 하는 아빠이지 않을까?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끌어안고서는 인상 팍팍 쓰며 가족들 눈치 보이게 하는 불통의 아빠?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처럼 본인이 불편할 때 확실히 의사 표현해주는 게 너무나 고맙다.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것.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있는 것. 뛰어난 것도, 부족한 것도 있는 것. 그게 인간다운 것이라는 걸 아들과 아내와 가족을 통해 배워간다. 그리고 나 스스로 나의 부족하고 못난 부분을 감싸주는 것, 그런 나도 사랑하고 받아주는 것이 출발이라는 걸 배워간다.


이제는 식구들에게 부탁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늦은 밤 아이가 졸려 보챌 때, 안방 문 밖에서 장모님을 부르는 게 왜 그리도 힘들던지. 설거지 제가 할게요, 안마해드릴게요 꺼내는 일이 왜 그리도 어색하고 쑥스러운지. 그렇지만 하나씩 해나간다. 해보며 좋은 걸 알아가고, 힘들고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는 나를 보아 간다. 아빠가 재워주는 걸 싫어하는 서우를 존중해간다. 거기에서부터 다른 길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KakaoTalk_20170219_121909386.jpg 첫 아기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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