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미 Jul 21. 2017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것들

[영화리뷰] 이민자(A better life) / 크리스 웨이츠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면서 싹튼다.

다른 마을 사람이든, 소문이든, 여행자든, 기차든, 편지든, TV든, 인터넷이든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 상상하게 되고
상상하면 갈망하게 된다.
직접 만지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싶어진다.
그것은 

라는 질문이 없어도 쉽게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싶은 
알 수 없는 힘과 열망을 끌어올린다.

그것은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
상상과는 다른 실상을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돌이킬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 되어 우리 모두를 휩쓸어간다.

그러나 그 세계는 도도한 만큼 쉽게 다다르기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그 세계의 좋은 곳에 다다르기는 정말 어렵다.
이를테면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트럭을 타고 일터로 이동하며 창 밖으로 보이는 
바베큐 파티를 하는 이웃들,
식당에서 잘 먹고 얼큰하게 취해 우발적으로 싸우는 사람들,
번쩍거리는 차에 기대어 하릴없이 빈둥거리거나 혹은 건수를 모의하는 건달들,
이제 막 퇴근하는지 환한 오렌지 불빛이 하나씩 꺼지는 길 모퉁이 가게
또는
높은 야자수에 올라 본 석양이 대지를 끌어안기 시작하는 가슴 먹먹한 풍경,
모든 것이 평화롭고 부족한 것 없어보이는 건물과 도시의 모습
이런 것들이 바로 더 나은 삶이며 이루고 싶은 삶이 양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다.
또 그것은 
남편 몰래 1만2천달러라는 거금을 마련해 준 여동생의 마음이자
자신과 아들의 현재이자 미래인 트럭을 훔쳐가는 남자를 붙잡기 위해
사력을 다해 내려오는 도중 휘발유처럼 사라지고 말 
덧없는 마음의 울렁거림이다.
나는 여전히 트럭을 타고 일터에 나가야만 하며
매일같이 일을 찾아 전전긍긍해야만 하고
돈을 주고 정정당당히 산 차를 암시장에서 도로 훔쳐야만 하고
인생 최초의 활극이 성공적으로 끝나 아들과도 훈훈한 관계를 회복하기도 전에
경찰에 붙잡혀 불법이민자로 감옥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게도 소중한 차를 훔쳐간 사람을 차마 때리지 못하면서
관객과 아버지를 대신해 그를 때리는 아들을 때리는 
성실하고 정직하고 완고할 정도로 윤리적인 남자에게
더 나은 세계, 더 좋은 세계는 결코 온정적이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더 나은 삶이란
단지 살아갈 이유를 붙들어 맬 구실일지도 모른다.
성공하고 더 나은 집에 살고 풍족해지는 것,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아들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학교에 가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이런 아들을 낳은 것 모두 
더 나은 삶과 동의어이며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강해질 수 있다.
그것만이 내가 갈 수 있는 길,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아니라 아들이 있는 곳이 나의 집이고 살아야만 하는 곳이다.
그 세계가 자신을 이민자라고 낙인을 찍고
사흘간 꼬박 사막을 건너가야만 하는 험한 길이라도
let's go home
이라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갈망이란
한 꺼풀 뒤집으면
자기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이다.
꿋꿋이 나아가는 둔중한 삶의 발걸음이다.
그것이 비록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똑같이 걷는 걸음일지라도,
천민 자본주의의 규칙이 떠미는 노예적 삶의 방식일지라도,
사람들은 오늘도 사막을 건너고
하루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자식들을 위해 끊임없이 일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삶의 이유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아 살아가는 이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서글픈가. 
또 얼마나 엄숙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