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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트윤antyoon Feb 01. 2024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돌봄의 결말은 큰 슬픔이라는 것.

2024년 2번째 읽기록

By Jeong-Yoon Lee



1월에 20편이 넘는 영화를 보다 보니 책 읽을 시간(생각)이 확 줄었지만, 독서를 절대 미루지 못하게 해주신 이동진 평론가님의 1월 추천 책을 보고 교보문고로 달려가 바로 구했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카테고리가 생길 것 같다. 언급만 하시면 바로 베스트에 올라오니 책 읽기에 엄청난 영향력을 불러일으키시고 계신 거 같다. 이동진 평론가님 덕분에 다양한 작품과 영화 관련 지식들이 쌓여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책이 아름답다. 표지 그림부터 챕터 사이사이마다 엽서와 같은 예쁜 그림이 숨어있다. 시집을 읽는 거 같다가도 누군가의 일기장을 펴보는 거 같기도 하다. 초반엔 살짝 머리와 눈이 따로 놀아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점점 책에 빠져들수록 이 책을 2024년 초반에 읽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곧 설이잖아요! 가족을 만나기 전에 읽으면 더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족의 고마움, 미안함, 사랑, 서로에게 속해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니까. 더구나 나는 서울에 혼자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을 만나면 그 소속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거 같다.


책 제목처럼 이별(상실)과 새로운 사랑, 삶에 관한 이야기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그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경험했던 이별의 순간순간들과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엄마, 아빠의 순간들. 기억을 꺼내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꺼낼 수 있는 좋고 나쁜 기억이 많다는 건 정말 행복한 삶인 거 같다. 간혹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나의 어릴 적 소중한 기억을 곱씹게 되기도 하는데 대화가 끝나고 나면 아~ 나에게 이런 기억이 숨어져 있었다니. 그래서 그와 비슷한 기억들을 더듬어 다시 꺼냈다 넣어두게 되는 거 같다.


죽음에 대한 기억도 꺼내보게 하는 책이었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죽음의 기억은 무엇이 있었지? 초등학생 때 키웠던 강아지가 있었다.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를 닭까지 키워 아빠가 잡았는데 그 닭뼈를 먹고 그 강아지가 죽었다. 강아지를 패딩 안에 안고 동물 병원을 오가며 밤새 울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셨는데 선생님을 태운 차가 학교 운동장을 돌다가 빠져나갔던 추모현장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하나둘 떠올려 보니 나도 죽음과 관련된 기억이 적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때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말과 내가 뱉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 여러 고민을 해보게 되었던 거 같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나의 동생, 조카들에게 내가 죽기 전까지 그들이 죽기 전까지 어떤 말과 상황들이 오갈지 모르겠지만 후회가 남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Photo: Jeong-Yoon Lee @antyoon


문장 수집

너도 알겠지만, 가끔 상황이 나빠질 때가 있고 그런 다음엔 다시 좋아지는 법이지.

p. 011


너의 모든 이웃집에서 흑인들이 일을 한다 해도, 그 이웃집에 사는 흑인은 없다.


새로운 일은 어찌 됐든 행운이다.

p. 061


내가 책 속의 모든 단어를 큰 소리로 읽을 수 있고 전부 이해한다는 걸 보여 주었다. 엄마는 행복해하는 나를 보고 너무 기뻐서, 우리에게 돈이 전혀 없는데도 그 책을 사서 집으로 가져가도 된다고 말했다.

p. 073


아무도 총을 맞지 않았다. 아무도 쥐잡이뱀에게 물리거나 황소에게 받히지 않았다. 명백히 위험에 처해 있었음에도 우리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나는 몇 년이 흐른 뒤에야 그때 내가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p. 099


어머니는 데이지 꽃을 결혼식 부케로 들었다. 그래서 그 꽃이 필 때면 나는 늘 그 햇살 같은 얼굴에서 어머니 평생의 기쁨을 생각한다.

p. 100


우리가 장애라고 부르는 것을 그들은 축복으로 여겼다. 신은 그들 공동체로 하여금 그런 희귀한 보물을 돌보게 했고, 그들은 예술에서도 그런 믿음이 가치를 지니도록 공을 들였다.

p. 101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 가요.

p. 110


참된 야생에 무지한 사람이 자연에 관해 글을 쓰려면 신경 소모가 많다. 하지만 무지의 이면은 놀라움이고, 나는 놀라움에 능숙한다.

p. 111


생각해 보면 내가 원했던 건 일종의 마침표였던 것 같다. 자연이 자기 곁에 있는 것들만을 써서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낼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추정하고 결론 짓는 것 말이다.

p. 113


장소를 옮겨 내 몸이 야외의 더 큰 몸짓으로 확장되는 걸 느끼니 기분이 좋았다. 보폭이 성큼성큼 커지고 폐가 공기를 마음껏 받아들이는 걸 느끼니 크나큰 안도감이 들었다.

p. 159


넌 언제든 집에 올 수 있어, 얘 야.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설령 네가 개자식과 결혼한다 해도, 넌 언제든 그 녀석을 떠나 집으로 올 수 있어.

p. 170


1984년 연결 상태가 좋지 않던 유선 전화를 통해 들은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그 말은 추운 필라델피아에 있던 나의 향수병 걸린 마음에 와닿았다.

p. 171


뭔가를 아는 것의 문제는 그걸 모를 수가 없다는 점이다.

p. 174


어떤 일이 부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것도 아닐 때 자연에 개입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p. 175


가장 좋은 엄마는 행복한 엄마예요. 의사가 말했다. 젖병으로 분유를 먹이세요.

p. 195


아이는 자꾸 거짓말을 하고 싶게 만드는, 영원히 거짓말을 하고 싶게 만드는 질문을 했다. 내가 죽을까요?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게 될까요?

p. 202


체념의 이면은 분노였고, 분노는 때때로 내 분열된 삶의 균열들 속에서 자기가 갈 길을 발견했다.

p. 208


너의 집에는 아이싱을 먹지 않으려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아이의 생일이다. 그 아이는 항상 아이는 아닐 것이고, 너는 항상 그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 주지는 못할 것이다.

p. 245


돌봄의 결말은 큰 슬픔이라는 것.

p. 267


어떤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나는 늘 앎과 알지 못함의 사이에 난 틈에, 정보와 이해력 사이에 난 틈에 버려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다.


지식과 본능이 다툼을 벌이면 늘 본능이 승리한다.

p. 288


그 친구가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 친구의 생각만큼이나 추했다. 그리고 어쨌든 그 친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p. 292-293


이런 식으로 나는 세상이 계속된다는 걸 배웠다. 대체 할 수 없는 생명이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방 창밖에서 축하를 받으며 확 타오르고 있었다.

p. 310


가족 안에서 살면서 내가 뭔가 배웠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속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p. 321




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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