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속 두 달 전
07.06.2023. Mittwoch
하루 종일 귀국 짐 싸기와 버리기를 반복했다.
한결 평온해지고 줄어가는 물건처럼 마음도 가벼워짐을 느꼈다.
5년 가까이 엄청난 양의 짐 싸기와 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이럴 때마다 독일 오기 전 아이들이 썼던 침대, 가구, 그릇들을 헐값에 처분한 것이 후회도 되고 또 그것이 내 마음 깊숙이 불안감과 불편함(편치 않은 마음)을 주어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 잡히곤 한다.
참, 미련하고 어리석다.
돌이킬 수 없고 이미 지난 것들에 연연하는 내가 한심스럽고 밉다.
그냥 이 감정도 자연스러운 사람의 감정이다.
그러니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채우기보단 갖고 있는 것에 감사와 생명을 불어넣기로 했다.
내게 놓인 상황을 좀 더 가볍게 만드는 과정은 내가 버티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 과정이었다.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부딪히며 무거운 마음의 짐을 잘 버리고 잘 포장하는 법을 익혀갔던 거 같다.
오래 동안 운동해서 생긴 견고한 근육처럼 내 마음도 처음 독일 왔을 때 보다 많이 단단하고 견고해졌다.
요즈음 거의 매일 둘째 아이와 배드민턴을 함께 친다.
아이가 원해서 나가는 거지만 이 시간이 나에게도 함께 한다는 것, 지금을 살아가는 강한 느낌을 주는 일과이다.
무엇보다 사춘기 아이에게 아주 조금의 도움이 된다는 것에 만족감을 준다.
소소한 일상 속 기쁨과 감사할 일을 나누고 전달하기를 아이와 배드민턴을 치면서 숨을 헐떡이며 대화를 나눈다.
움직이면서 하는 대화는 재미난 요소들이 많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해도 더 깔깔거리며 맛깔난 문장과 창의적인 언어로 얘기하게 된다.
나는 그런 대화가 너무 좋다.
밖으로 나가면 종종 뜻밖의 에피소드도 만나게 된다.
한 번은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나오다가 가느다란 울타리 위에 올라가 있는 오리를 보고 둘이 한참을 웃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바로 요놈이다. 아이와 나의 휴대폰 사진 속에 저장되어 있다. 일반적인 새의 발과는 달리 물갈퀴가 있어서 저기를 날아올라가긴 했을 텐데 쫙 펴진 발로 내려오질 못하고 안절부절못해하는 모습처럼 보여서 한 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그 모습을 지켜보느라 20분가량 영상도 찍었다. 아무튼 우리가 돌아서서 집으로 갈 때도 저 녀석은 요지부동이었다.
뭐 별거 아니고 사소한 일이다.
우리 둘은 이 사진 한 장으로 그날을 더 정확히 기억하고 서로 웃을 수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이 특별해지는 것도 순간이고 찰나이다.
나는 이런 찰나가 너무 좋다.
예쁘고 찬란한 순간순간의 추억부자가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