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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아쿠아 Aug 14. 2023

몽마르트로 가는 길

나의 30대와 걸었다.

입추가 지난 지 5일째 된 일요일이다.

 

아침에 작은 2인용 무쇠 솥 냄비에 불려 놓았던 서리태 콩 한 줌과 잡곡을 넣어 백만 년 만에 솥밥을 지었다.

독일 생활 내내 한 번도 솥밥을 해 먹은 적이 없었다.

딸아이가 방에서 나오면서 “엄마, 너무 좋은 냄새다. “하며 다가왔다. 나는 세상 그 어떤 고가의 향보다 오늘 아침엔 가장 럭셔리한 향기지 라며 답했다.

평소 이런 농담을 많이 해서인지 딸아이는 “응.‘ 한마디였다. ㅁ

역시 솥밥의 위력이란 대단하다.


옛날 나의 엄마가 내가 좋아라 하는 흰 강낭콩 넣은 고슬고슬한 솥밥과 총각김치와 계란찜, 된장찌개를 차려 주셨다. 그때의 맛과 향이 코끝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갑자기 코끝이 찡했다.

독일서 온후 일주일 되던 날 시골 엄마 집으로 갔다.

엄마가 이제 우리 딸 먼 타지에서 안 살고 이렇게 얼굴 보니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며 웃음 띈 얼굴로 나와 아이들을 반기셨다.


점심 상을 차리시면서 나이가 들어 이제 너무 힘들고 귀찮아져서 전기밥솥에 밥을 한다며 몇 년 만인데 미안하다며 수저와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으며 말하던 게 생각났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에 속수무책인 우리는 때론 지난 시간에 갇혀 눈물을 훔칠 때가 있지 않은가?


오늘이 그랬다. 지난 시간에 나를 보낸 날.

구수한 누룽지까지 맛있게 먹고 딸아이에게 “우리, 추억의 몽마르트르 산책 가자.” 하며 제안했다.

사춘기인 15살 딸아이가 흔쾌히 따라나서주는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풀벌레 소리가 양쪽 귀에 서라운드 입체 음향으로 들려왔다.

천천히 걸었다.

나의 30대와 함께 그때의 날씨와 감정이 다 느껴졌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와서 살면서 갔던 몽마르트르의 산책로를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몽마르트르 공원은 원래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진 야산이었는데  지난 2000년 도시 공사를 실행함에 따라 서울특별시와 협의를 통해 주민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몽마르트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 프랑스 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프랑스의 유명한 지명으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공원에서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한불 축제가 개최되는데 프랑스 빵과 치즈, 와인, 소시지를 먹으며 아이들과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라이브 공연에 손뼉 치며 밤하늘에 수놓았던 불꽃 감상에 젖어있었던 35살의 내가 딱 저기에 앉아 있다.


딸아이의 오른쪽 뺨에는 페이스 페인팅으로 반짝이고 ‘엄마. 저쪽에 뚱뚱한 토끼가 있어,“ 하며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다.


축제 중간중간에 아는 지인들 얼굴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넨다.

공원 구석구석 내가 있다. 바쁘다며 나에게 두 딸을 맡긴 언니덕에 딸 넷을 데리고 이곳에 돗자리를 깔고 종이 접기와 색칠 놀이, 공놀이를 함께 열심히 해주었던 37살의 내가 커다란 나무 밑에 있다.


돌이켜 보니 참 모질고 억누르며 40대를 살아왔다.

그래서 나의 30대가 무척이나 그리웠나 보다

나의 마지막 40대를 또 이곳에서 마주할 날이 있다면 그때는 좀 많이 울 거 같다. 그때는 꼭 혼자 와야지라고 다짐했다.

분명히 울게 뻔하니까.

구름 걸터앉은 나무 아래 벤치에 잠시 앉아 보았다.

분명 최선을 다했던 나의 마음에 나의 30대를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다시 마주할 날을 기대하며 나의 30대와 헤어졌다.


나의 마음에 화답하고 활기차게 보냈던 그리웠던 나의 30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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