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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아쿠아 Jul 04. 2023

나의 우주와 행성

나의 행성들은 멈추었다

내가 믿었던 우주에서는 별 이변 없이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과도 같았다. 만약 이변이 있으면 아주 위험하니 말이다.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변이 생길 거란 예측도 불안감도 없었던 결혼생활이었다. 딸 둘을 낳고 꽤 만족스럽게 살았다.

유명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에 아이들은 레벨테스트를 보며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그것이 그 당시에 내 우주에서 잘 공전하는 행성과도 같았다.

정말 들어가기도 힘들고 높은 레벨의 심화반은 모든 엄마들이 부러워하는 클래스였다.

그반을 가기 위해 특별과외를 받고 엄청난 양의 문제를 풀고 시험에 응시해도 몇 번씩 떨어져서 속이 타는 엄마들을 보며 내심 나는 우쭐해 있었다.

심지어 그런 특별과외 한번 안 받고 심화반 성적이 나온 딸아이가 세상 최고 이쁜 딸이었다.


수학학원이 있는 건물 1층 카페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온화하고 절대로 큰 소리 안 낼 거 같은 의사 선생님( 딸아이와 같은 학교 같은 반 아이의 엄마) 이 아이에게 소리치고 듣기 힘든 말을 쏟아내고 있는 걸 들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찡그린 얼굴, 과외 스케줄과 채점받은 시험지 확인을 하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그 무리 속에 있었고 나의 모습이 그들을 보면서 투영되고 가슴이 답답해 오기 시작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잘 공전한다고 믿었던 행성이 그때 멈추었다.

잘 가꿔진 멋진 집을 월세로 내놓고 유학원을 알아보고 짐정리를 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독일로 아이 둘을 데리고 오는 과정이 속전속결로 되어버렸다.

독일 프랑크프루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꿈에도 몰랐다.

완전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유학원은 내게 엄청난 사기를 쳤다.

독일에서 시작된 첫날부터 계약을 한 집의 컨디션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고 사기꾼에게 돈을 이미 날린 상태였어서 손쓸 방법이 없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집계약, 해지문제로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들 교통카드며 학교문제도 수많은 메일 쓰기를 반복하며 답변을 기다리는 것도 인내심의 바닥 치기가 일쑤였다.

의사소통이 물론 가장 큰 문제여서 한국 분들의 도움을 불가피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정말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게 쉽지 않고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한국사람들끼리 더 상처 주고 돈으로 만 바라보는 시각이 이곳에서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내 주변의 한국에서의 지인들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4년 반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해결하는 과정 속에 아이들의 사춘기로 감당하기 힘든 정서적 고통이 나를 집어삼켰다.

학업에도 큰딸은 아예 놓아 버렸다.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종일 침대에서만 지냈다. 그 시간이 2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둘째 딸아이는 다행히 독일 학교에 빠른 적웅과 학업에도 별문제 없을 정도로 독일어 습득이 빨랐다.

그 아이가 한국나이로 중학교 2학년인데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한번 겪은 것도 있고 큰아이와는 다른 성향이어서 물고 뜯고 하는 과정은 없다. 그것도 너무 감사하다.

반대로 큰딸은 어두웠던 동굴에서 이제 나온 듯하다.

죽고 싶다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하던 아이는 친구들과의 활발한 교류, 물리적으로 10학년의 입시시작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우선 내가 지옥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가 첫 번째 이유이다. 끝없는 잔소리와 아이들의 학업 성적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완벽히 멈추진 못했지만 웬만한 것들은 허용해 주고  어떤 결정이든 스스로에게 답을 찾으라고 하고 있다.

독일어에 가장 능통한 둘째 아이는 어리지만 행정적인 일을 처리할 때 데리고 다니고 전화로 하는 일도 많이 맡기게 되었다. 물론 기쁘게만 하지는 않았다. 어른이고 엄마인 내가 해야 할 일을 시키니 가끔은 화를 내는 일도 있다.

나에게 많은 힘을 주고 격려해 준 고마운 존재인 아이다. 나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울 때가 많아서 부끄러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 전에 다녀왔던 이태리 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선물해 주었고 두 딸이 많이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던 멋진 시간이었다.


각자의 색깔로 우리는 버티고 이겨내고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잘 살아내고 있다.

힘듦을 눈치챘을 때, 그 과정을 지나치지 않으려 할 때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는 결국 극복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그 용기를 배웠다.


다시 나의 행성들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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