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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아쿠아 Jul 07. 2023

세관 창고에 2년

이제 조금 살 거 같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수화물 짐을 빼는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23킬로짜리 딱 맞추어 꽉 채운 부피 큰 이민가방만 6개를 여자 혼자 낑낑대며 카트에 실어대니 말이다.

큰아이의 고등학교 서류를 입국한날 반드시 제출해야 돼서 공항 내 출입국관리 오피스에 가서 출입국사질증명서를 발급받고 바루 짐을 따로 보내고 나는 아이가 6학년 1학기까지 다닌 초등학교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제적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바로 근처 동사무소에 들려 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고 서류봉투에 빼곡히 여러 장의 서류들을 넣고 업무마감시간 안에 도착하기 위해 미친 듯이 마음 조리며 달려가서 간신히 제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돌아오는 길부터는 옴 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1년여 살아야 하는 임시거처를 예전 살던 집 근처로 얻었다. 딱 맘에 드는 집은 아니지만 구석구석 청소를 마치고 무엇부터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2년 동안 세관에 있던 짐을 먼저 받기로 했다. 처음 독일로 갈 때와 상황이 바뀌어서 어쩔 수 없이 먼저 짐을 보내고 우리는 꼭 필요한 물건(밥통, 그릇)과 옷가지만 챙겨서 이사를 세 번을 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세관창고에 2년 동안 맡기게 되었다.

5.5 큐빅이 넘는 짐이였다.

이사하고 힘든 독일 생활을 하면서 아주 가끔씩 옷이나 가구가 손상되지 않았을까? 분실되진 않았을까? 걱정을 하곤 했다.

귀국하고 이틀째날 드디어 짐을 받았다. 우려와 달리 처음 짐을 패킹했을 때와 똑같은 상태여서 놀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박스 모아서 내가 직접 다 포장을 했다. 옷사이사이에 습지 한 장씩을 깔고 유리나 파손위험이 있는 것들도 나름 머리 써서 잘도  포장했었다. 독일은 포장이사도 없고 직접 패킹하거나 한국분들이 포장이사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잘하는 곳은 거리가 너무 멀고 다른 곳은 다 망가지거나 박스가 다 터져서 배송 오는 일이 많다고 구텐탁 코리아사이트에 많은 리뷰를 보고 나는 혼자 다 했다. 한국에서의 나는 생각지도 못한 나의 변화였다.

60개가 넘는 박스를 받고 너무 감사하고 좋았다. 뭔가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짐 운반 기사분이 독일서 보낸 짐들 중 가장 박스당 무게가 가볍고 포장도 너무 잘되어있어서 놀랐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살짝 설레는 맘으로 분명 새것이 아닌 오래전부터 쓰던 물건들인데도 나는 선물 포장 뜯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많은 짐 중 가장 부피가 컸던 1인용 소파 2개와 러그를 깔고 정리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인형, 문구류, 소품을 보며 잃어버린 것을 찾은 기쁨과 아련함이 함께 나에게로 왔다.


엄청난 양의 아이들 사진을 2년 전  재활용 앨범여러권를 사서 하나하나 붙이고 아가아가였을 때 그린그림과 손편지도 함께 넣었다.

그 앨범을 2년 뒤 보니 그때 내가 얼마나 어릴 적 아이들을 그리워했는지 얼마나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애썼는지 느껴졌다. 며칠 동안 앨범 정리하는 동안 흘렸던 눈물도 앨범을 묶는 리본끈끝자락에 맺혀 있었다.


2년 만에 찾은 나의 추억, 나의 보물, 나의 시간을 지금 즐기려고 한다. 천천히 짐 정리하는 동안 내내 말이다.


한국이 좋다.

누군가 나를 안아주지 않아도 나를 감싸주어서 좋다.

너무 더워도 좋다.

지금은 내가 머물렀던 동네의 나무도 빵집의 빵 냄새도 좋다. 길 모퉁이에서

달큰하게 찐 옥수수를 파는 아저씨도 조금 더 늙은 신 거 같지만 그대로 계셔서 좋다.


이제 조금 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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