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UK Oct 06. 2024

나의 이상한 습관, 인간관계 정리

​​​​내가 연례 행사처럼 매년 반복적으로 하는 나만의 습관을 하나 알려주려고 한다.


어쩌면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만의 습관이 아닐수도 있겠다.

​​​​​​​​​​

​​

​​​​​​​​​​​​

---begin

난 매년 학기초가 되면 연락처를 정리한다.

연락처 뿐만 아니라 메세지, 카카오톡, 사진 등을 정리한다.

워낙 정리를 좋아하니까 그런거 아니냐 싶겠지만,

이건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1년 동안 새로 사귄 친구들이 분명 있을거다.

또는 동기라든가 선후배라든가 동료라든가 상사라든가 연애상대라든가...

나는 지금까지 ‘학교’라는 틀에 있었으니 생기고 싶지 않아도 언제나 항상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동급생 친구.

좋은 인연도 분명 많았지만 나쁜 인연도 존재했다. 가끔은 잊고 싶은 악연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항상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었다. 1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학년이 바뀌어 학급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어쩌면 사는 곳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 1년동안은 어떻게 부딪힐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연락처를 지우거나 차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3월이 되면 나는 항상 폰에 있는 연락처를 지우고, 혹은 차단을 하거나, 카카오톡도 저장하지 않은채 지웠다가 다시 깔고, 메세지 기록이나 연락 기록을 지웠다.

사실 이런거 전혀 신경 안쓰는 부류의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메일 몇천개가 쌓여있어도 읽지 않고, 카톡 표시가 999+가 되어도 읽지 않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난 이런 사람들이 부럽다.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나는 정리되지 않은 이메일함을 참지 못하고 누군가 디엠을 보내면 답장을 하기 귀찮더라도 하트라도 눌러준다. 빨간색으로 뜬 그것을 참기가 힘들다. 카톡을 지웠다가 다시 까는 이유도 이 이유가 크다.





또 다른 이유는,

인간관계 정리이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것에 잘 속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어느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도 잘 몰랐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다.

엄마 말을 빌려 쓰자면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德 ;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덕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나는 도와줄 수 있는데 잘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손해를 보더라도 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걸 내어준다. 밤 세워 쓴 노트 필기도, 나만 알고 있는 꿀팁도, 시험 족보도, 숙제도, 심지어는 내 개인적인 것들도.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아니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고 있는 건데 알려주는게 뭐 어려운건가? 나만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이득을 보는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런 나의 성격 때문에 나는 사람을 잘 잊지 못한다.

특히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 내가 의지하고 따르던 사람들.

예를 들어, 7살 어린이집 다닐 때 나를 아껴주셨던 선생님, 초등학교때 좋아하던 친구,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

그런데 모든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못 한다. 거의 모든 인연은 헤어지고 잊혀진다. 상대방은 나를 그렇게 크게 가깝게 느끼지 못했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아끼지 않았다면 분명 잊혀질 것이다. 그래서 연락이 뜸해질 것이고, 어쩌면 만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나도 누군가를 꺼려하듯이 상대방도 그런거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아~ 인연이 아니었구나 하고 뒤돌아가면 된다.

나도 처음에는 참 쉽지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너무 어려웠다. 너무 힘들었다.

이 세상의 스트레스 반 이상은 인간관계에서 온다는 말이 있듯이. 끊고 맺음을 잘 하기에는 난 아직 어렸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연락처를 지우는 일이었다.

사진을 지우고, 메신저를 지우고, 모든 흔적을 지운다.

무슨 남친도 아니고 친구 관계에 너무 진지한거 아니냐고 반응한다면 넌 나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거라고 생각한다. 제목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나만의 이상한 습관이다.

그렇게 모든걸 지우고 나면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이 친구에게 진심이었는지.

진심이었기 때문에 지우고 나서 뒤돌아설때는 딱 그만큼만 지나면 완전히 잊을 수 있다.

그제야 나는 웃는다.

---end.

습관 얘기하다가 인간관계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사실 습관 얘기는 어그로고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적고 싶었다.

나는 이 습관이 중, 고딩이라 필요없는 연락처를 지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학생이 되어도 정확히 3월이 되어서 연락처를 지우고 카톡을 초기화시키는 걸 보고 평생 갈 것 같은 습관이자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서 길게 설명해봤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이 있다면 얘기해주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사람에게 진심이라는 건 네가 덕이 있기 때문이라고.

​​​​​​​​

인간관계는 참 힘들다.

그래도 나는 모든 인연을 소중히 하고 싶다.

그 인연의 끝이 좋지 않더라도, 어떤 인연이 찾아와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년에 지워질 연락처에는 네가 없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P들 사이에 있는 J의 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