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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우리 Jun 06. 2024

오늘의 학원

부모님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고민, 사랑, 상처 이야기




 성인이 학생들을 만나는 경로는 다양하다. 가정, 학교, 학원, 종교 등등. 나는 확신한다. 어떤 집단이 있든, 학생들이 가장 편안하게, 가볍지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학원이다. 부모들은 모르는 자녀들의 세상. 그 작은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꿈을 키우고, 사랑을 하고, 절망을 경험하며 결국 성장한다.




 대형학원은 물론 얘기가 다르다. 난 1:1 수업 혹은 소수정예 그룹과외로 수업을 진행한다. 성적과 규칙 이전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라포 형성이다. 학생이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강사를 좋아하면, 그걸로 그 과목 점수는 오른다고 본다. 성적 향상엔 주체적 학습이 가장 능률이 높은데, 시작하는 그 순간의 발돋움이 어렵다. 그것을 라포가 해결해준다. 그리고 라포가 아주 잘 형성되면, 아이들은 아주 많은 이야기를 고백하기 시작한다.




  "쌤.."

 중학교 3학년 예지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쌤 담배 피워봤어요?"

난 올게 왔구나, 하는 표정을 감춘다. 사춘기 아이들을 오래 만나다 보면, 모범적인 아이이든, 품행불량인 아이이든 상관없이 이렇게 금기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받는 시기가 있다.

 "펴 봤지. 호기심으로. 어렸을 때 몇 번."

긴급상황이다.  적당히 공감해 주면서 적정 선을 그어주는 대답을 해야 한다.

 "쌤, 제 친구가 담배 피워요. 전자 담배요."

 "어머, 전자 담배를 어떻게 구해? 편의점에서 미성년자는 못 사는데."

 "구매대행이 있어요."

이런 못된 어른들 같으니. 나이 먹고 미성년자 담배 심부름이나 해주면서 돈이나 받아먹다니. 그 코 묻은 돈을....  나쁜 놈들!




 예지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쌤. 저 어제 처음으로 담배 피워봤어요."

이럴 땐, 과한 반응은 금물이다. 적당히 놀라면서, 적당히 걱정하면서, 적당히 힙하게.

 "오.. 그 친구 거? 펴 보니까 어땠어?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

여기까지 오면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쌤 청포도. 청포도 맛이요!! "

하고 웃는 예지를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 예지는 키도 작고 눈도 작고 아직 아가처럼 생긴 외모다. 정말 귀엽다. 손도 엄청 작아서 늘 저 작은 손으로 빽빽이 필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수업 시간을 변경할 때나 문제집 하나 고를 때도 꼭 "엄마한테 물어볼게요."라고 하는 아이인데..... 청포도 맛 담배라니.




 아마 예지는 어제 청포도 맛 담배를 피웠을 때부터 지금까지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짓눌려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걸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걸 아직은 모를 테지. 스스로 하면 안 되는 것을 했다는 그 묘한 쾌감 섞인 불안함을 떨쳐낼 수 없어서 밤 새 답답했을 테다. 그러다 답답함이 흘러넘쳐서 부모님에게도 학교 선생님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작은 일탈을 내게 고해성사한 것이다. 그리고 죄를 사하여주길 바라면서. 알고 있다. 정말 손 쓸 틈 없이 삐뚤어질 아이들은 이런 고백을 내게 하지 않는다. 구수한 담배 냄새 풍기면서 책상 앞에 앉아있지.




 "예지야. 담배는 피우면 언젠가는 꼭 끊게 돼 있어. 무조건. 담배 끊으려고 돈 쓰고 시간 쓰고. 그런 거 아깝잖아. 이제 그 친구가 담배 줘도 피우는 건 하지 말자. 알았지? 한 번 피워봤으니까, 이제는 하지 않기로 쌤이랑 약속할까?"

본인의 일탈에 대해 탓하지 않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러니 이제는 그러지 말자.라고 말한 나를 보며 예지는 오히려 방방 뛰며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다시는 피우지 않을 거라고 솔직히 진짜 담배 별로였다고 그렇게 이야기한다. 마음속에 생긴 죄책감을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고백하고 그 짐을 털어놓고 싶었을 예지. 예지는 그렇게 인생에서 또 하나의 경험을 하게 됐다. 청포도 맛 경험.




 이런 일을 처음 겪은 20대 초반의 나는 무척 당황하고 고민했다. 숙취로 과외를 취소하는 고등학생도 있었고 흔히들 말하는 담배빵, 칼빵을 보여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임용고시에 합격한 공교육 교사였다면 벌점을 주고 반성문을 쓰게 하고 훈육을 했을 것이다. 내가 부모였다면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약속을 받아냈을 것이고. 그런데 난, 학원 강사다. 그런 고민 속에서 35살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마음속 나만의 정답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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