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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로 면접 붙는 이야기

오타쿠가 뻔뻔하면 제법 멋진 명언을 던집니다

by Han

"기자가 되면 뭐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저는, 적당한 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 면접을 보고 있었습니다.


"딱히 언론인의 꿈은 없고,

만화 판에서 일할 생각이기도 하고

성적에 맞췄을 때 지원 가능한 대학이어서

지원했습니다!"


라고 지원하면 떨어질 것 같아서

자기소개서에서는 '기자'를 노린다는

전혀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써냈었죠.


그것도 제법 정의감이 가득찬

멋진 언론인의 이야기를 풀어내서

저를 바라보는 면접관들의 시선은

19살의 저보다 반짝였습니다.


"어..."


면접자에게 주어지는 아주 짧은 시간

저는 긴장해서 준비했던 대답을 까먹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은 나는데

그걸 입으로 내뱉으면

버벅거릴 것이 자명했죠.


"사람 한 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우나, 특정한 방향으로 아주 조금은 기울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까진 못되더라도, 주변의 이야기 정도는 분명 기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기자가 된다면 적어도 제 주변에서 발생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옳다고 밎는 방향으로 조금씩 기울여 언젠가는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이 답변은 어떨까요?


면접관들의 마음을

기울릴 수 있었을까요?


감사하게도 전 이 면접을 통해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심지어 면접관이었던 교수님에게

입학 후 칭찬까지 받을 수 있었답니다.


"학생의 말이 참 기억에 남았다."

라고 말이죠.


하하... 여기서 고백합니다.


교수님!

멘트는!

면접 전날 본!

'카부키모노가타리' 4화에서 발췌했습니다...


대충 흑백 사진에 글쓰면 명언 같다


세상엔 명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문장으로 사람의 감정을 바꾸고

동기를 불어넣는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언은 3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것 같은데요.

먼저, 사용된 단어의 논리성,

두 번째는 화자에 대한 신뢰성,

마지막으로 주변 상황과의 정합성.

이 삼박자가 모두 맞을 때

우리는 명언을 명언으로 받아들이고,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 콘텐츠를 좋아하는

책, 영화, 드라마, 만화 덕후들은

가히 무적인 것 같은데요.


정말 많은 이야기를 소비하다보면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대사 하나 둘 정도는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멋진 대사가 없는 이야기는 없으니까요.


회사도 붙었는데요?


아무튼 대학 면접을 그렇게 붙고

저는 즐거운 대학 생활과

처참한 군생활,

정신 없던 휴학 생활을 지나

드디어 회사라는 또 다른

인생 챕터의 문을 두들기게 됩니다.


그리고 물론 면접을 봤는데요.

이번에는 대학 시절보다

덜 긴장하고, 더 준비했지만

이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자신의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게 있어요?"


3명의 면접자가 있는 공간에서

마지막 순번으로 대답을 준비하던 저는

문득 뇌리에 만화의 한 장면이 스쳐 갔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름보다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달려, 제 발자국이 지나온 길에 남은 그을인 자국, 그 자국들을 제 인생의 증거로 삼고 싶습니다."


끄아악!

생각하면 이보다 오글거리는 표현은 없지만

앞에 있는 면접관 분의 표정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붙었다!'


아 물론 이 멘트의 경우

소라치 히데아키 작가의

[은혼] 속 대사를 조금 비꼰 것입니다.


좋아하는 건 뻔뻔해도 되는구나


사실 고등학생 때까진

제가 만화를 좋아한다는 걸

숨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서브컬쳐가 많이 양지로

올라오지도 않았었고,


오타쿠!

라고 하면 반에서

놀림받기도 쉬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화를 통해

진짜 경쟁력있는 결과를 만드니

생각이 180도 뒤집혔어요.


그 이후로는 어딜 가도 당당히

"덕질은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반드시!"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당당하자라는 이야기를 마무리로

'블루 자이언트' 속 대사를 가져왔습니다.


"어설프니까, 형편없으니까 연습을 하고.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와 닿는 소리를 낸다. 이 사람들 음악에 위안을 얻을 날이 오지 않은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데요? 어설픈게, 뭐가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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