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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Apr 14. 2016

상실의 기쁨

상실에 대처하는 현명한 이들의 자세

 실에 익숙해질 수는 없다. 상실의 경험이 여러 번 누적되면 학습 효과로 대처 방법을 조금 빨리 찾을 수 있게 될 뿐이다. 일상과 시간과 새로운 자극에 기대어 상실의 시간을 올곧게 흘려보내다 보면 애초에 잃었던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내게 온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까.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라는 문장을 곱씹던 적이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더라도 당신과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돌고 돌아 어느 한 지점에서 조우했다가 다시 어긋나기를 반복한다고 믿었다. 여전히 서로가 지닌 시간의 차원을 정의할 수는 없다고 믿지만, 역시나 상실 앞에서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른다. 상실의 시간은 지독하게 곧게 앞만 보고 흐르기에 돌이키거나 수정을 가하려고 하면 더 큰 상실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나 자신까지 상실해버리지 않으려면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굳이 따지자면 매정한 시간의 모습은 직선이다.



 또 한 번의 상실을 겪었다. 완성의 단계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테니 '겪고 있는' 중일 테지. 고작 서른 번의 봄도 살아보지 못한 내가 겪었던 모든 상실은 사소한 차이가 있을 뿐 그 모양새는 거의 비슷했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저 '슬픔'이겠지. 수년간의 뼈아픈 고민을 거쳐 포기한 오랜 꿈, 평생을 걸어도 부족하다 생각했던 사랑, 지금의 내가 나일 수 있게 해 준 아름다웠던 시절, 상대의 냉정의 무게에 침몰할 수밖에 없던 우정까지. 애착을 가지고 있던 대상을 자의든 타의든 내 삶에서 분리했을 때의 심정은 역시나 아픔일 테다. 지금의 내 몸 구석구석에도 그때의 당신들과 그것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을진대 어찌 아니 슬플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내 어딘가에 붙어 있는지라도 알면 눈 딱 감고 외마디 비명에 떼어버리고 말 텐데, 그것들은 여기저기에 교묘히 깃들어 있어 그 본거지를 찾을 수조차 없다.



 단번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는 지속적인 통증을 유발한다.



 통증은 지속적 일지는 모르나 그 정도는 점차 미약해진다. 한참을 가만 들여다보아도 더 이상 슬프지 않고, 살짝 만져보아도 단순한 촉감 그 이상은 아닌 것이 된다. 하지만 무감각이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그 상처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기만할 수도, 다른 날은 갑작스레 맞닥뜨린 어떤 불행에서 나를 구원해줄 수도 있다. 한동안 수면 아래 잠잠히 있다가 어떤 계기가 생기면 불쑥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들은 나의 선생으로, 방어기제로 그 모습을 시시때때로 바꿔가며 나의 삶을 동반해준다. 때로는 지독하게, 때로는 친절하게. 어떤 선생은 내게 뼈아픈 가르침을 주었고, 어떤 선생은 지극한 기쁨을, 어떤 선생은 냉정 해지는 법을 일러주었다. 하나의 세상이 무너질 때마다 나의 필기 노트는 두꺼워져 갔다.



 그래서, 상실은 기쁘다.



 어떤 상실도 나의 성장을 멈추지는 못했다. 오히려 상실의 통증을 직면하고 오롯이 견뎌낸 후에는 기쁨이 찾아왔다. 그 기쁨은 내가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조금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깨달음의 끝에 있었다. 물론 완전한 끝이란 있을 수 없다. 기쁘다가도 슬플 것이고, 절망이라고 확신할 때라도 희망을 발견할 테니까. 적어도 나는 그런 존재다. 지옥 불처럼 뜨거운 불구덩이와 그보다도 더 냉정할 수 없을 차가운 심연을 번갈아 오가며 담금질되어야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이 되는 나약한 사람. 애써 건설해놓은 하나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그 폐허 위에서 뒹굴어 봐야만 비로소 그 세상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어리석은 사람.



 나의 세상은 지속적으로 재건축 중이다.


 

 사실 상실이 기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상실은 근본적으로 슬픈 것이다. 그러나 직선의 시간을 타고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 슬픔의 모습이 절망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장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를지 모르나, 이내 또 다른 서로의 차원으로 돌아가게 될 테고, 내 안팎에서 우연히 선생들과 조우했을 때 나긋이 말해주면 그만이다. 그대들이 내게 무엇을 남기고 갔을지라도 나는 그대들의 가르침을 새기고, 결국 씩씩하게 자라났다고. 그대들이 난 자리의 나는 이전과는 묘하게 다를 거라고.




 비록 이 시간이 기약 없는 직선 위에 있다 하여도.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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