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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May 08. 2016

서칭 포 슈가맨

어떤 것들은 환상의 영역에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기 어린 한 시절, 우리 모두는 스타를 동경했다. 노래깨나 한다는 소년은 가수가 되기를, 종종 예쁘장하다는 칭찬을 받는 소녀라면 배우가 되기를 원했다. 나의 경우에는 기깔나게 영화 잘 만드는 시네아스트가 되고 싶었다. 베를린과 칸과 베니스를 오가는 비행기 마일리지로 세계일주라도 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고맙게도 이런 허영은 보통 사춘기를 기점으로 그 수명을 다 하기 마련이다. 제 스스로가 소름 끼치도록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제 열정에 제가 타 죽을 것 같은 시기를 잘 견디면 이렇게 스스로를 '보통 사람'이라 칭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열정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제 풀에 지쳐버리는 것이다. 로드리게즈의 십 대와 이십 대 초반의 시절은 어땠을까. 밥 딜런 같은 음유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싶었을까, 그저 범인으로 살아가며 제 생에 충실하고 싶었을까.



 <서칭 포 슈가맨>의 관객은 영화 초반부터 제작자들과 함께 로드리게즈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로드무비에 합승하게 된다. '이렇게 끝내주는 곡들을 만들고 제 나라 미국에서는 음반 한 장도 못 팔았단 말이지. 근데 남아공에선 조용필 뺨친다는 말이지. 근데 세상에나, 무대 위에서 자살했단 말이지. 어머, 죽음도 비운도 비운의 락스타답네.'라는 경탄을 멈추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살아있을까, 그의 진짜 이름은 뭘까, 누가 그의 음반 판매 수익금을 야금야금 부정 취득하고 있을까, 왜 미국인들은 그의 노래에 귀기울이지 않았을까… 라는 수많은 의문 또한 함께. 정말 그렇다. 영화 곳곳에서 울리는 그의 멜로디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가사는 심금을 울린다. 이 노래들이 미국에서 외면당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제작진은 미국과 유럽, 남아공을 바쁘게 오가며 그의 행적을 쫓는다. 많은 양의 자료를 분석하고, 많은 이들을 인터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존을 밝히기 위한 시도들이 좌절되고, 모두들 이 여정을 거의 포기할 때쯤 시기적절하게 그의 딸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떤 것들은 환상의 영역에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면서.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거의 관객을 경악시킨다. (스포일러 포함) 사실 그는 디트로이트에서 40년을 살아왔으며, 자신이 남아공에서 그토록 인기가 있었는지도 몰랐고, 뒤늦게 남아공에 가서 수많은 매진 콘서트를 열었으며, 심지어 제 음악을 인정받은 후에도 음악 대신 임금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아공의 선구자는 사실 미국의 육체 노동자였다는 차갑고도 뜨거운 진실.



 누군가는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왜 그렇지 않나. 멋쟁이 락스타의 간지는 보통 '자살'로 완성되기 마련이니까. 커트 코베인과 엘리엇 스미스가 그러했듯, 뮤지션의 자살은 그의 음악과 이름에 더 없을 아우라를 제공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대에서의 분신자살 따위 보다 이 남자 로드리게즈의 삶이 아우라 그 자체라는 메시지를 건넨다. 사실이다. 이젠 중장년이 된 그가 검은 코트의 깃을 세우고 디트로이트의 눈 쌓인 거리를 걸을 때, 우리는 성실한 삶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인지를 깨닫고 진실한 감동을 받게 된다. 그 감동은 세속적 기준에 합하는 성공보다도 성실한 삶 자체가 되려 상위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역시나 나는 짧고 굵게 살아간 예술가들보다 제 생에 성실하고 충실했던 거장들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



 세상의 그 어떤 예술이 삶보다 우위에 위치할 수 있을까. 나 역시도 '영화 아니면 죽어버릴 테야', '명작 하나 내놓고 요절해야지'라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하던 십 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겨우 몇 년을 더 살아봤을 뿐인데도, 생이라는 것이 이토록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고, 나의 재능 없음을 알아채버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꾸준히 열심히 살아내며 영화 한 편, 음반 한 장, 전시회 한 번 더 세상에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보통 사람을 가장한 예술가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내겐 로드리게즈가 그랬다. 그는 욕심내지 않았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을 살아왔다. 40년을 한 자리에서 살았고, 매일 일했고, 딸들을 키웠고, 때때로 기타를 쳤다. 그리고 그는 이내 구름 위에서 내려와 다시 디트로이 땅을 밟았다. 그의 노래는 위대했지만, 그의 삶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영화의 후반부, 남아공에서의 첫 콘서트 실황을 보면 관객과 가수가 얼마나 깊게 소통하는지, 관객들이 그의 존재 자체에 얼마나 큰 희열을 느끼는지를 알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순간을 한 번은 마주하고 싶다. 보통 사람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그렇게 나의 독자와 마주하는 뜨거운 순간을 체험한다면 더 바랄 일이 없을 것 같다. 누가 로드리게즈를 그렇게 훌륭한 노래를 만든 음유시인이라 생각했겠나. 먼지와 페인트를 뒤집어쓴 일꾼에 불과했을 그를 그 누가 위대한 음악가라고 생각했겠냐는 말이다. 로드리게즈는 말한다. 지금 거기 당신들 모두가 예술가이고, 거장이고,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그러니 내 노래를 들으며 내일 하루도 신나게 일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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