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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Jun 09. 2016

사랑해, 그리고 증오해

I hate that I love you



 런던의 친구 집에서 일주일간 퍼져있었다. 작고 작은, 창문 하나 없어 밤과 낮이 구분되지 않는 골방이었다. 런던의 살인적인 집값을 생각하면 그런 방이라도 구해서 몸 누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지만, 두 사람이 지내기에는 너무 작은 그 방에서 친구와 나는 곡예하듯 일주일간 방을 나눠 썼다. 친구는 내게 쉴 새 없이 한식을 갖다 주었다. 리빙룸도 방으로 개조해 렌트를 준 집이라 마땅히 밥을 먹을 식탁조차 없어 끼니때마다 내 캐리어를 눕혀 밥상으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불편하지만 않았던 것은 우리가 지금 함께 같은 나라에 있다는 위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5년 전 런던에서 한 학기를 지낼 때 함께 생활했던 우리가 동시에 유럽 땅에 있어 런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4개월이나 지냈던 곳이라 그런지 딱히 관광할 거리는 없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일랜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런던에 여행을 가서 추억의 장소들을 둘러보리라 생각을 했는데, 그 간 아일랜드에서 보낸 시간들이 워낙 밀도가 높았던 탓인지 그 모든 추억들이 다 덮어쓰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친구는 예의상 전시를 좀 보고, 카페에 들어가 멍을 때리고 쇼핑을 다녔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웠으나, 우리는 여기저기 외식을 하러 다녔다. 늘 다니던 터키 음식점을 들렀고, 뉴욕에서 넘어온 유명한 수제버거와 런던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랍스터를 먹으러 갔다. 참으로 호사스러운 일주일이었다. 오늘부턴 아마 라면으로 연명해야겠지. 




/




 밥을 먹다 무심코 받은 No caller ID의 전화에서 "양희야, 미안해."라는 서툰 한국말이 들렸다. 나는 시침을 떼고 "Who's speaking?"이라 되묻고 전화를 끊었다. 멍청한 나는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이후의 수많은 디테일과 사건들은 생략하기로 한다. "Bye Bye, My love and hatred." 나는 네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넌 나의 마지막 인사와 거의 동시에 내게 마지막 노래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I love you, I hate you> 너와 나의 5개월을 함축하는 두 문장. 사랑해, 그리고 증오해. 이번은 부디 마지막이길, 그 수많은 싸움과 묵살을 비웃기라도 하듯 조그만 자극에도 되살아나던 너와 나의 열정이 이번에는 제발 영영 죽어주길. 되살아나지 않길.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네. 부디 서로가 없는 세상에서 단단하게 살 수 있는 너와 나이길 바랄게. 




 사랑했어, 그리고 증오했어. 




/




 이제 아일랜드 생활이 3주 남짓 남았다. 12개월을 채우지 않고 10개월 만에 이곳을 떠나게 된다. 목요일이면 지긋지긋한 시골에서의 베이비시팅을 그만두고 시내로 이사를 나온다. 더블린 말고 진작 이 도시로 왔어야 했다고 생각할 만큼 내 맘에 쏙 드는 도시다. 이제 월말까지 3주 동안은 이 도시에서 혼자 살며 시험 공부를 하고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다닐 것이다. 역시 중요한 나날을 마무리할 때는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아일랜드에서의 10개월을 반추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을 할 것이다. 사랑과 증오에 지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게 될 것이다. 곧 돌아올 생일엔 스스로에게 어떤 선물을 줄 지도 지금부터 고민을 해봐야겠다. 




/



 수고가 많았다. 고생이 많았다. 이제 곧 아일랜드에서의 모든 것이 마무리가 될 것이다. 앞으로 2번만 짐을 싸고 이사를 하면 눈이 올 때쯤에는 한국에 돌아가게 될 것이고, 더 이상은 캐리어를 이고 지고 다니지 않아된다. 정말로, 정말로 수고가 많았다.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말자꾸나. 그저 마음속에 간직하다가 눈이 오는 서울에 도착하면 그때 이 모든 시간들을 해석해보자. 알지 않니, 이 시간 또한 언젠가 죽도록 그리워질 것이란 것을. 지금의 1분 1초가 이렇게 아쉬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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