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주에만 오면 자꾸만 누군가를 애도하게 된다
경주에 왔다.
1.
경주에 다시 방문하리라는 마음을 먹은 건 아주 오래 전부터였다. 그러나 계획은 번번이 이행되지 않았고, 특히나 마지막 약속은 무참하고 처참하게, 그리고 비극적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고작 이게 뭐라고 한이 맺혔는지 나는 결국 출국 준비에 한창 바쁠 시기인 지금 3박 4일이나 시간을 내어 5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질리도록 구경을 하고 질리도록 먹고 가리라 생각했는데 부지런하지 못한 성격과 고된 날씨 탓에 다음에 다시 올 법한 아쉬움 정도는 남기고 돌아간다. 내일 아침 집으로 바로 가는 대신에 엄마에게로 돌아간다. 달고 부드러운 것은 냠냠 잘 드시는 할머니에게 경주 미소빵을 안겨드려야지. "공부야 한국에서도 하면 되지 엄마 혼자 두고 가냐!", "한국에서 돈 벌어서 시집이나 가지!"라고 애정 어린 호통을 치시는 할머니에게 "아이고, 나를 두 번 죽이셔" 하며 자리를 떴던 게 월요일 밤이다. 할머니는 모르시겠지. 어떤 약속들이 깨어졌고, 내 마음 또한 얼마나 많이 깨어졌는지를.
이틀 동안은 친구와 함께였다. 우리는 함께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의 경주를 부지런히 걸어 다녔고, 버스를 타고 논길을 달려야 겨우 찾을 수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엄청난 서비스를 받고 최고의 음식을 먹으며 대체 아직 한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거냐며 눈물을 흘렸다. 고즈넉한 정자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김밥을 입에 욱여넣었고, 마치 사대부 아씨가 된 기분이 들게 하는 전통 찻집에 곱게 앉아 차를 마셨다. 도란도란 서로의 동무가 되어주며 함께 이틀을 보낸 뒤 친구는 서울로 돌아갔다. 이십 대 초반 함께 했던 전주 여행 이후 나와의 두 번째 여행을 마친 그녀, 그녀도 나처럼 즐거웠길.
그리고 오늘 나는 이불 킥 거리 하나를 얻었다. 후회는 없다. 행동한 뒤 후회하는 것이 손 놓고 있다가 후회하는 것보다 100만 배쯤은 낫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다. 잔인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다 내가 자초한 일이라 생각한다. 잘했어.
2.
5년 전 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경주에 왔다. 당시에 나는 지독히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랑을 감당 못해 배수진을 치고 고백을 해버렸다. 그는 답을 미룬 채 한 달의 말미를 달라며 외국 일정을 소화하러 갔다. 한 달 뒤 그가 돌아와 대답을 들려준 다음 날, 나는 몇 주 전 미리 짜 놓은 계획에 따라 경주로 떠났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마침 타이밍 좋게 실연 여행이 되고 말았다.
당시에는 게스트하우스 문화가 많이 자리잡지 않았던 때였다. 그 어떤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기차를 타고 떠났던 나는 기차역에 내려 일단 보이는 모텔에 들어갔다. 8만 원이라니. 20대 초반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마침내 휘적휘적 길을 걷다가 게스트하우스 간판을 발견해 방이 있는지 물었다. 중년의 사장님은 내게 외국인인지 물었다. 그럴 리가 있나. 누가 봐도 한국인처럼 생긴 내가 한국말로 물어봤는데. 사장님은 약간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듯 내게 방을 주셨다. 알고 보니 그곳은 외국인 전용이었다는 것을 체크아웃을 하며 알게 되었다. 혼자 터덜터덜 걸어와서 잘 곳이 있는지 묻는 어린 여학생이었던 내가 불쌍해 보이셨나 보다.
다른 외국인 숙박객들과 함께 맥주도 마시고 놀러도 다니라며 나를 신경 써 주시던 사장님은 나의 마음을 알 턱이 없으셨을 것이다. 나는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은커녕 그 누구와도 말을 섞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홀로 1인실을 쓰며 나는 처음 느끼는 실연의 느낌을 감당 못하고 꺼이꺼이 울었다. 당시에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고통스러운 느낌에 오열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여웠던 스물둘의 나였다. 실연 여행이라니 말이야.
나는 당시에 친하게 지냈던 선배와 자주 전화 통화를 하곤 했다. 지역번호 054가 뜨면 '아, 전화 왔네.' 하고 반갑게 전화를 받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애초에 여행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그저 황망히 휘적휘적 길을 걷다 간판의 지역 번호가 054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빵을 한 상자 사들고, 선배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채 무작정 그곳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선배는 나와 잠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나의 서프라이즈 방문에 굉장히 기뻐해 주었다. 반가운 잠깐의 면회를 마치고 바다를 보러 가는 버스를 탔다. 선배는 내게 전화를 걸어 거듭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다. 왠지 내가 더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방문에 난생처음 면회를 받아봤다는 선배보다도 내가 더 큰 위안을 받아버렸다. 내가 경주에 도착한 날, 떠나던 날 모두 비가 왔는데 유독 그 날만 날이 맑았던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3.
나를 슬픔에 빠트린 그도 나중에 경주에 갔다는 고백을 했다. 혼자 가서는 내가 이야기했던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걸어 숙박이 가능한지 물었다고 했다. 거절을 당했단다. 첫 경주 방문 이후 2년 뒤, 그와 나는 영영 못 볼 사이가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게스트하우스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요즘은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생겼을 테니 허름했던 그곳은 아마 폐업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좋은 여행이었다. 5년 전에는 경주가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인지 알 수 없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보인다. 무덤이 많아서일까, 나는 이 도시에 오면 자꾸만 누군가를 애도하게 된다. 나는 아마 다음에도 슬픈 일을 겪으면 경주에 올 것 같다. 무참히 깨어진 약속과 기대와 그로 인한 슬픔을 기념하는 도시, 당신들을 애도하는 나만의 방법, 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