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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Aug 28. 2016

런던의 가을은
이렇게 다시 내게로

2011년과 2016년 두 번의 가을을 맞으며 

외출에서 돌아왔다. 거리에 수두룩히 떨어져 있던 것들이 낙엽이 맞았다면, 조금은 이른 시각에 목격한 붉은 태양의 빛이 노을이 맞았다면, 요 며칠 지속해서 맡고 있는 공기의 청아함이 나의 착각이 아니라면, 이것은 분명 가을이다. 시각, 청각, 촉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섬세하게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2011년 9월 3일, 아닌가, 1일이었던가. 나는 그때 처음 런던에 발을 디뎠다. 함께 떠나온 한국 학생들 사이에 섞여 현지 코디네이터의 인솔에 따라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고, 재미도 없고 수준에 맞지도 않았던 이런저런 수업을 들었고, 나를 받아준 회사 사람들이 나를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느끼지 않게끔 눈치껏 자리를 지키는 인턴의 본분도 다했다. 이것이 나의 공식적이고도 시덥지 않은 16주간의 생활이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외로움에 골몰하며 감정을 최대치로 느끼는 활동을 아주 열심히 했다. 뭐가 문제였는지 수업이 끝나면 매번 동지들을 따돌리고 혼자 도망을 와서는 템즈강변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런던과 홈스테이 집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는 16주 동안 문자 그대로 단 한 곡만 반복해서 들었으며,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오랜 사랑과 새로운 사랑이 바톤 터치를 하던 시기였으며, 문화생활, 여행 등 유럽 생활의 이점을 누리며 내 세계를 확장시키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나는 지속해서 극한의 감정을 느꼈다. 그건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고독이 아니라, 매 순간 고군분투하며 견뎌내야만 하는 외로움이었다.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붉게 변해가는 런던 시내를 지켜보며 에릭 클랩튼 버전의 Autumn leaves를  종종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단지 가을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낙엽에 관한 노래를 들었던가.) 런던에 다녀온 이후 몇 년간은 가을만 되면 자동적으로 런던의 가을이 그리워지곤 했다. 그때의 그 냄새, 습도, 소리 등 모든 감각이 범람했다. 때로는 그 당시의 고통들이 떠올라 아득해지기도 했으나, 대체로는 따뜻하고 그윽한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현재, 나는 다시 한번 런던에서의 가을을 맞이하려는 초입에 서있다. 흥미롭다. 이렇게 긴 시간 차를 두고 같은 이국의 도시에서 같은 계절을 다시 맞이 해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는데. 5년 후 지금의 나는 다시 이곳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으며, 심지어는 굉장히 긍정적인 자극을 받으며 발전 중이다. 만나온 이들은 모두 아름다우며, 독특하고, 훌륭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질 않고, 늘 새롭고 더 깊은 차원으로 진입해 내 세계를 확장시킨다. 혼자라는 생각이 자주 들지 않는 감사한 장소에 머물고 있다.



물론 그동안의 나는 한국에서, 아일랜드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지독하게 아팠던 순간도, 황홀해 녹아버릴 것 같던 순간도, 권태에 찌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마음을 엮고 나와 시간을 보내주던 이들이 있었으며, 그들 일부는 나를 떠났고, 또 내가 떠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나를 응원해 준다. 



다만 이번 가을은 그때보다는 조금 아늑했으면, 조금은 따뜻했으면 한다. 모든 곳에서 도망쳐 스스로를 보살피기 바쁘던 자폐적인 내가 아니라, 이젠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배려할 수 있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빅벤을 지날 때마다 각기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최상의 아름다운 표정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한 마음이 드는 나이기를 소망한다. 스스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지닌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던 내가 아니라, 수도 없이 들고 나는 이별이 범람하는 이 유명한 관광지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역사와 특질을 궁금해할 수 있는 나이기를 소망한다. 온 세상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이 멋진 도시의 가을이 이번 해에는 조금 더 포근했으면 한다. 아주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고, 느끼고, 감사해야지. 비록 내 안에 들었다가 난 사람들이 이미 나를 다 잊어버린 것 같다 해도, 여전히 잊히는 일에 적응할 수 없다 해도. 5년의 시간이 나를 얼마나 자라게 해주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라도 그 사람들을 위해 축복을 빌어 주어야지. 올해도 나는 발갛고 노랗게 변해가는 나무 아래 앉아 있을 테지만, 분명 느끼는 바는 조금은 다를 거라고. 



뭐, 사실 다르지 않대도, 끝내 그대들의 축복을 빌어주지 못한대도 사실 상관은 없다고.

나는 마저 아름다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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