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라 하시니 웃어야겠죠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차려먹고 외출을 했다. 11시가 되어야 깜깜해지는 요즘처럼 낮이 긴 때, 코크에서는 Midsummer festival이 열린다.
힙스터들이 출몰하는 아트 센터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해둔 티켓들을 픽업하고, 그 안에 있는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아이스 라떼를 사 먹고, 공부를 좀 하는 척하다가 페스티벌 야외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길을 나섰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어폰을 끼고 안내자의 인솔을 따라 코크 시내를 누볐다. 웬일인지 나는 예약 메일을 받지 못해 음성 파일이 없었고, 마치 듣기 시험을 치는 듯한 기분으로 개 탈을 쓴 자원봉사자들이 핸드폰으로 틀어주는 음성 파일에 귀를 기울이며 30분가량을 걷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프로그램은 1916년도 Easter Rising에 대한 내용이었으며, 마지막 종착지인 피츠제럴드 파크에 도착했을 때는 자원봉사자인 줄로만 알았던 개 탈을 쓴 무용수들이 약 30분가량 전위적인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잔디에 앉아 북소리를 들으며 춤을 감상했고, 공원에 놀러 나왔다가 얻어걸린 관객들도 함께 저녁의 망중한을 즐겼다.
공원에서부터 시내 쪽으로 걸어오는데 슬슬 배가 고팠다. 죽었다 깨나도 집에 들어가 밥을 해 먹거나, 평소처럼 늦게까지 영업하는 스타벅스에서 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비록 사 먹는 밥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정성껏 해다 바치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추천해 준, 처음 들어간 식당에는 자리가 없었기에 항상 가보고 싶었던 큰 펍에 가 아이리쉬 스튜와 스타우트 한 잔을 시켜 넉넉하게 식사를 했다. 스타우트 한 잔을 다 먹었더니 슬슬 알딸딸하니 아직 날도 밝아서 밥을 다 먹었는데도 여전히 죽었다 깨나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 강가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정말 문자 그대로 혼자인 시내에서의 생활이 외로워서, 어제 하루 종일 문자를 주고받았던 너와의 지긋지긋한 지난날들이 생각나서, 뜻대로 되지 않았던 아일랜드에서의 내 계획들에 그냥 좀 화가 나서 음악을 들으며, 인상을 좀 쓰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내게 일방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혼자 둬 주실래요?"했지만 계속 말을 하기에 이어폰을 빼고 들어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우린 다 살 수 있어. 네가 지금 음악을 듣는 핸드폰, 이어폰, 음식, 집 등등 다 살 수 있지만 미소는 돈으로 못 사."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더니 "너의 미소를 보니 좋네."하며 유유히 자리를 떴다.
"We cannnot buy smile. It's good to see you smile."
그냥 이 상황이 우습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렇게 마저 앉아 글을 쓴다. '나는 뭐 우울할 때 인상도 못 쓰나.' '오지랖이 온 아일랜드를 덮겠다.' 싶으면서도, 모르는 남이 다가와 내 웃는 모습을 찾아주려 하는 게 내심 고맙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웃으라 하시면 웃어야겠죠.
그렇다. 나는 너무나도 취약한 인간. 쉽사리 깨어지고 마는 인간. 그러나, 그나마 정신력으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아주 약하지만은 않은 인간. 기분이 처져도 좋은 구경을 시키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바람을 쐬어주는 스스로의 보호자. 이 보호는 평생을 두고 완수해야 할 것이고, 요즘처럼 쓸쓸할 때는 더욱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웃지 않는다고 생판 모르는 아저씨가 잔소리를 한다 해도. 그나마도 감사히 여겨야겠지.
"It's good to see you 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