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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Jun 11. 2016

나잇값을 하고 싶어졌다

10개월의 방랑을 정리하며 

 사랑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그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관통하고 있거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더욱이. 과연 청춘은 또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처럼 홀로 세상에 내동댕이 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더욱이. 이렇게 또 허무하다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또 글을 쓸 수밖에. 


 

 한국 나이로 스물여덟, 내일이면 만으로 스물일곱이 된다. 첫 여행을 떠났던 스물하나에는 우연히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나면 모두가 언니, 오빠였다. 그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 되니 여행이 고생스러울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러던 내가 이제 외국에 나오면 나를 '언니' 혹은 '누나'라 부르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이토록 미숙하고, 매일 같이 '과연 청춘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하는 쓸모없는 고민을 즐겨하는데 말이다. 속은 아직 스물 그때 그대로 한치도 성숙해지지 못했는데, 이렇게 표피만 늙어간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쉽겠으나, 왠지 모르게 이제 나는 나잇값을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청춘은 너무나 뜨거워서, 이제 그 온도를 조금 낮추고 싶은 것이다.



 이 곳 아일랜드에 온 지도 9개월 하고도 3주째.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내 맘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생존을 위해, 실수로, 그게 최선이어서. 나는 갖가지 이유로 많은 중요한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을 마주할 때마다 늘 치열하게 오랜 시간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 선택들이 나를 배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과 연애, 거주지 모든 것이 왠지 내 맘 같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썼고, 스스로를 담금질했지만 노력의 대가로 얻는 평화와 불로소득의 평화는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내 내 안의 아이를 붙잡고 조곤조곤 타일러야만 했다. 괜찮을 것이다. 잘 하고 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하고.

 


 구질구질한 연애를 하게 되었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사람들과도 데이트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아이처럼 유치한 사람과 마음을 엮었다. 열정, 사랑, 증오, 무시, 또다시 열정과 사랑을 무한히 반복하는 세상 제일 지긋지긋한 관계를 하나 갖게 되었고, 사실 나는 아직도 이 모든 지리멸렬함이 언제쯤에나 끝이 나게 될지 알 수 없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사랑은 역시나 비이성적인 것이어서, 그 사람이 아무리 아이 같고 완벽하지 않다 해도 그 모든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의 완벽함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결핍과 미숙함마저 감싸고 싶을 때 비로소 사랑의 한 단계를 넘어서게 되니까. 허나, 비이성적인 끌림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들, 미숙한 사랑의 대가는 너무나 큰 것이어서 지난 반 년 동안은 늘 긴장 속에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을 보며 '대체 저렇게 가학적인 관계를 끌고 나가는 이유가 뭘까?'하고 내심 한심해하던 내가 꼭 같은 행동을 해오고 있기에 과연 내 일이 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생각하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구나, 하고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겪고 배운다. 



 카르마라는 것이 과연 있구나. 나는 지금 아마도 내가 이제껏 과분히 누려온 것들을 다 갚아나가는 중이로구나 싶은 것이다. 이 카르마를 언제까지 갚아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머무는 자리를 옮길 때마다 어서 뛰쳐나가고 싶어 날짜를 헤아려 보며 손가락을 꼽는 이 생활을 언제쯤에나 그만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고, 그 유토피아에서 가장 멀다고 느끼는 곳이 내게 있어서는 한국이지만, 지금 맘 같아서는 오늘 밤 자다 일어나면 서울의 내 방 침대에서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짐을 싸는 일도, 그 짐을 옮기는 일도, 버스와 택시와 비행기를 타는 일도 다 지겨우니 손을 한 번 번쩍 들고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게 끝나 있으면 좋겠다. 



 영원히 방랑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날도 있었고, 안정된 삶에 지루함을 느끼며 어디로든 떠나고 싶던 날도 있었다. 다시는 혼자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절대로 비행기를 타지 않던 날도 있었고, 나답지 않게 짐 싸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오늘 같은 날도 있다. 이렇게 항상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한 것이 청춘이라면, 나는 여전히 너무나도 청춘의 한가운데 있고, 온도를 낮추는 방법을 조금은 배워야 한다. 너무 뜨거우면 내 안의 불에 내가 데일 수 있을 테니까. 누군가 다가와 내 마음을 열어젖히고 얼음물을 한 양동이 부어준다면 좋겠지만 그런 쉬운 방법이 이루어질 리 없고, 아마도 매일매일 조금씩 부채질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여름날 잠든 내 옆에 가만 앉아 부채질을 해주시던 나의 어린 시절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방랑에 지친 내가 가만 누워 잠을 자고 있으면 내 안의 어른이 일어나 스스로를 가만 내려다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야겠지. 


 

 이제 막 3번째 이사를 마쳤고, 4번째 이사까지 3주 남짓 남았다. 3주 동안 스스로에게 잘 부탁한다. 잘 버텨주길, 매 순간 아름다움을 찾아내고야 마는 성미가 발휘되길, 스스로에게 부채질을 해주는 동안 팔이 아프다고 그만두지 않길. 아직은 갈 길이 머니까, 멀리 가려면 금세 지쳐서는 안 되니까. 돌아갈 곳이 있어 방랑 중이지만, 결국 나는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이 방랑이 언제쯤에야 끝이 날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아직 알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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