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런던, 그리고 이 안에서의 줄다리기
이국의 도시에 시간 차를 두고 세 번이나 방문하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그것도 세 번 모두 방 세 한 번 들이지 않고. 2011년에 16주 동안 살았고, 지난달 초 친구 집에 놀러 가 일주일을 뭉개고 있었고, 이번엔 다시 몇 달을 머물 계획으로 이사를 왔다. 런던이라는 도시다. 런던을 속속들이 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벌써 세 번째이니 처음부터 내 집에 온 것처럼 편한 느낌이다. 적응할 것도 없이 그저 익숙하고, 달리 말하면 큰 설렘은 없다고 할까. 그러나 그것이 다행히도 지루한 느낌은 아닌데, 아마도 내게 이 도시에 대한 애정과 추억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박집에 매니저 자격으로 짐을 풀었다.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던 알바를 하게 되었다. 세상에 흥미로운 사람이 많은데, 나는 별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열정적인 사람이 아닌지라 한 번쯤은 사람이 복작이는 곳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대껴보고 싶었다. 숙식 제공이라는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메리트 보다도 이 곳의 정감 넘치고 아늑한 분위기, 그러나 철두철미하게 일을 해야 하고 그만큼 대우받는 느낌이 좋은 곳이다. 고작 이틀 밤을 지냈을 뿐이지만 아마 꽤나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창밖에서 영어가 들려온다. 아일랜드 악센트와는 아주 다르다. 고작 1시간 반을 비행해서 왔을 뿐인데 같은 영어라도 말의 높낮이와 음정이 다르니 세계는 결코 하나가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둥지였던 코크 시티는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가는 데 30분도 채 안 걸리지 않을 정도였는데, 여긴 뭐 그곳에 비하자면 아주 어마어마한 대도시. 스몰토크가 가능지 않은 거대하고 차가운 곳이라는 실감이 난다. 때때로 집 밖을 나오는 생활을 해야 할 텐데 용기 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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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는다. 너와 내가 정말로 다른 섬에 있다는 것. 이제 만날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미 넌 과거가 되었다는 것. 또 한 명의 사랑하는 이가 완전히 내 인생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 길목에서 등을 돌려 반대편으로 걷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데, 살면서 이 짓을 얼마나 더 해야 하나 생각만으로도 되다. 그러나 난 이제 잘 알지. 평생 하고도 모자랄 일이라는 거.
문득 길을 걷다 네 목덜미 냄새가 날 것도 같다.
또 한 타래의 박제된 추억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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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급작스레 '외항사 승무원'이라는 검색어를 쳐서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그러다 타투를 금지하는 외항사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나답게 살겠다고 10년 가까이 고민하던 타투를 고작 2주 전에 새겨놓고서는 승무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검색을 하고 앉아 있었다니, 정말 나 자신이 가소로웠다. 나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직업을 단지 해외에 나가서 살 수 있다는 이유로, 급여가 적당하다는 이유로 잠시나마 고려를 해보았던 내가 정말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긴 하구나 싶었다. 언젠가 '공무원 고시 준비' 혹은 '노량진'이라는 검색어를 치고 있을 내가 있게 될까 싶어 만일 그리 되면 나의 영혼이 완전히 사망했다는 신호로 여기고 그때는 장례 준비를 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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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더블린 호스텔에 짐을 풀 때 한 번, 스미스필드의 아파트에 집을 구했을 때 한 번, 코크 시골 마을로 이사 갈 때 한 번, 코크 시티에서 3주 정도 백수 놀음을 할 때 한 번, 그리고 세 번째 런던으로 다시 한 번. 벌써 5번째 이사를 마친 지금 6번째 이사는 한국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내 모습이 놀랍기도 하다. 물론 그것은 결코 영구적인 이사는 아닐 거라는 믿음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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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언지, 그중에 결핍된 것은 무언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생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은 무언지, 어떤 장애물과 싸워야 하는지,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어떤 것들을 취해야 할지도. 팽팽한 장력으로 나를 당기는 두 힘이 여전히 줄다리기를 하는 지금 그 사이에 선 내 모습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일는지는 모르나, 결코 힘 없이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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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있습니다. 여전히 훅- 하고 몰려오는데요, 이건 아무래도 혼자의 몫인 것 같습니다. 정 어려우면 SOS를 칠게요. 비둘기를 날려 보내거나 바닷가에 병을 띄워 보낼게요. 여긴 영국이니 부엉이도 괜찮을 것 같네요.